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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의길 칼럼] “아이 빌리브…김건희!”

등록 2021-12-27 16:07수정 2021-12-28 20:24

더 큰 문제가 여전히 남았다. 부인의 연설이 ‘체커스 연설’이 아니라 ‘렛츠 고 브랜든’처럼, ‘아이 빌리브…김건희’라는 ‘밈’이 된 이유를 아직도 잘 모른다는 것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부인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가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허위 이력’ 관련 사과를 하기 위해 단상에 오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부인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가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허위 이력’ 관련 사과를 하기 위해 단상에 오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정의길 | 선임기자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렛츠 고 브랜든’(가자, 브랜든)이라는 구호로 욕을 보고 있다.

브랜드 브라운이라는 자동차 경주 우승자가 인터뷰를 할 때 마침 주변에서 바이든을 외설스럽게 욕하는 군중들의 구호가 커지자, 팬들이 ‘렛츠 고 브랜든’이라고 외쳤다. 당황한 기자도 이 구호를 외쳤으나, 이는 바이든을 욕하는 구호에 묻혀 방송에 전달됐다. 이때부터 ‘렛츠 고 브랜든’은 바이든을 욕하는 상징적 구호로 변해버렸다.

지난 23일 바이든 대통령 부부가 크리스마스를 맞아 화상전화로 국민들과 대화할 때 한 시민이 ‘렛츠 고 브랜든’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바이든은 얼떨결에 이를 따라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바이든으로서는 억울하지만, ’렛츠 고 브랜든’은 그에 대한 문화코드, 즉 ‘밈’이 되어버렸다.

미디어가 정치인의 대중 소통의 주요 도구가 된 뒤부터 정치인을 둘러싼 감성과 상징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은 변덕스럽다. 현대 정치에 그 첫 사례는 리처드 닉슨일 것이다.

“내가 여러분들에게 말해야 할 또 한가지는…우리가 선물 하나를 받았다는 것이다. 텍사스의 한 사람이 라디오에서 우리 두 딸이 강아지를 갖고 싶어한다는 (아내) 팻의 말을 듣고는…선물을 보내왔다…그가 멀리 텍사스에서 보내 준 것은 요람에 든 작은 얼룩박이 강아지였다…6살 난 작은 딸 트리샤는 체커스라고 이름지었다…우리 아이들도 이 강아지를 사랑해서, 나는 지금 그들이 그 강아지에 대해 뭐라고 말하던간에 우리가 그 강아지를 계속 갖기를 원한다고 말하고자 한다.”

1952년 9월23일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공화당 대통령 후보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에 출마한 닉슨은 선거 판세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연설을 했다. 그는 아이젠하워의 선거를 망칠 스캔들에 직면하고 있었다. 그의 정치비용을 조달하려고 만든 후원 펀드가 이해충돌의 소지가 있다는 의혹이었다. 닉슨의 러닝메이트를 취소하라는 요구가 공화당 진영에서도 커졌다.

아이젠하워와 닉슨은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공개연설이 이 문제를 더 이슈화할 것이라는 반대도 있었으나, 선대위는 거금을 들여 텔레비전 방영권을 사들여서 연설을 결행했다. 닉슨은 이 펀드의 자금이 자신의 정치활동 비용으로만 사용되는 등 이해충돌의 소지가 없다는 것을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자세히 밝혔다. 또 자신이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수성가하고, 정치인으로 성공한 뒤에도 아내와 함께 한달에 80달러짜리 월세를 살면서 절약해 집을 마련했고, 아내의 코트가 밍크가 아닌 모직이라는 등 자신들의 재산 내역을 세세히 밝히고, 마지막으로 체커스라는 강아지 선물을 언급하며 딸들에 대한 아빠의 절절한 애정을 표현했다.

그의 연설은 부잣집 출신인 애들레이 스티븐슨 민주당 대선 후보와 대비돼 서민적인 남편과 아버지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이 연설로 닉슨의 스캔들이 불식된 것은 물론이고, 아이제하워와 닉슨의 백악관행을 굳혔다. 당시로서는 최대 시청자인 600만명이 지켜봤고, 텔레비전을 활용한 본격적인 선거운동의 사례였다.

26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아내 김건희씨가 자신의 ‘허위 이력’에 대해 해명과 사과를 했다. 남편에 대한 미안함이 태반이었다. 닉슨처럼 문제되는 사안에 대한 소명보다는 감성적인 접근만 한 것이다. 당장 인터넷에서는 ‘영상 러브레터’냐는 비아냥이 쏟아져나왔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 신승훈의 노래 ‘아이 빌리브’를 배경으로 한 주인공의 내레이션을 패러디한 영상이 하루 새 조회 수 100만을 넘어 연설의 원본처럼 떠돌고 있다.

‘체커스 연설’로 명명된 닉슨 연설의 성공은 선물 받은 강아지를 이용해 딸에 대한 애정을 표시한 감성 전략 때문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에 앞서 닉슨이 먼저 자신의 스캔들에 대해 세세하고 자신감 있게 해명한 것이 핵심이다. 체커스라는 강아지 사례는 그 연설을 달콤하게 포장한 당의정일뿐이었다. 이 연설을 위해 아이젠하워 선거대책위와 닉슨은 두달이나 준비를 하고, 닉슨은 아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들의 사생활을 공개했다. 그 결과, 체커스는 요즘 말로 하면 문화코드인 ‘밈’ 되어, 닉슨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결정적 요인이 된 것이다.

당시 미국 대선에서는 조연에도 못 미치는 부통령 후보 문제가 불거진 것에 대해 본말전도라는 비판이 있었다. 하지만 닉슨은 당시 매카시즘 선풍을 사실상 주도하고, 민주당 정부의 부패를 신랄히 공격하며 정치인으로 성공했다. 닉슨 자체가 장기집권한 민주당에 맞서는 ‘공정과 정의의 상징’이었다. 윤 후보도 문재인 정부를 상대로 한 ‘공정과 정의의 검사’로 대선 후보가 됐으니, 부인의 의혹에 억울해서는 안 된다.

더 큰 문제가 여전히 남았다. 부인의 연설이 체커스 연설이 아니라 ‘렛츠 고 브랜든’처럼, ‘아이 빌리브…김건희’라는 밈이 된 이유를 그들이 아직도 잘 모른다는 것이다.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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