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이후에도 방만 바뀐 채 감동 없는 대선 경쟁을 봐야 하는 데는 시민사회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잘못도 크다. 주권자가 가져왔어야 하는 권력을 너무 많이 정치권에 위임했다. 2021년 겨울, 절망하기에 우린 아직 할 일이 많다.
2016년의 마지막날 서울 광화문광장을 가득 메운 촛불 시민들. 5년 전 불의한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촛불은 끝내 혁명이 되지 못했다. 이정우 선임기자
이진순 | 재단법인 와글 이사장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그 방의 벽에는 싸우라 싸우라 싸우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어둠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김수영, <그 방을 생각하며> 중에서)
이 우울한 겨울, 나는 방만 바뀐 어둠 속에서 4·19의 좌절을 한탄한 김수영의 시를 떠올린다. 4·19는 혁명이 되지 못했다. 민주당 장면 내각은 혁명을 집행하기보다는 수습하는 데 골몰했고 미온적 개혁과 연이은 실정으로 민심을 잃었다. 실망하고 분노한 국민들은 파격적인 박정희 쿠데타 세력을 새로운 구원투수로 환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쿠데타 직후, 지식인을 대변하던 잡지 <사상계>나 서울대 학생회마저 박정희 군부를 ‘구악을 뿌리 뽑을’ ‘혁명정부’로 환영하고 지지한 것은 4·19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승만 하야 이후 갈 길을 찾지 못한 4·19의 전철을 밟기라도 하는 것일까? 5년 전 불의한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촛불은 끝내 혁명이 되지 못했다. 이런 점에서 우리와 비슷한 시기 출발했으나 빠른 속도로 개혁을 제도화하고 있는 대만의 사례는 우리에게 따끔한 각성의 계기를 제공한다. 올해 2월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2020 민주주의 지수’ 보고서에서 대만은 11위로, 일본(21위)과 한국(23위)을 제치고 아시아 국가 중 선두를 차지했다.
대만은 오랫동안 국민당의 권위주의적 통치를 받아왔다. 1996년 처음으로 총통 직선제가 도입되었고 2000년 민진당으로의 첫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민진당 정부는 2003년 국민투표법을 제정했는데, 국민투표가 대만 독립의 법적 절차로 이용될 것을 우려한 중국의 노골적 위협과 국민당의 완강한 반대로, 많은 것을 접고 통과시킨 절충안이었다.
2016년 민진당의 차이잉원 총통이 당선된 이후, 해바라기 운동의 주역인 학생과 시민들은 “국민에게 권력을 돌려달라”고 주장하며 국민투표의 문턱을 낮추기 위한 개정 작업에 총력을 기울였다. 2018년 통과된 국민투표법 개정안은, 선거 연령을 20살에서 18살로 낮추고 국민발안을 위한 서명인 수를 유권자의 5%에서 1.5%로 대폭 하향했다. 50% 투표 50% 찬성이 돼야 통과되던 것에서, 찬성이 반대보다 높고 그 비율이 전체 유권자의 25% 이상이면 통과될 수 있도록 요건도 완화했다. 2018년 <워싱턴 포스트>에 실린 칼럼 ‘대만은 민주주의를 혁명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에서 쑤옌투 교수는 “민주적 자치에 대한 시민의 직접적 역할을 제한해왔던 새장을 깨뜨린 것”이라며 국민투표법 개정의 의미를 높이 평가했다.
2018년 대만 국민투표에는 동성혼과 탈원전 정책을 비롯해서 10건의 제안이 부쳐졌다. 이 가운데 민진당 정부가 추진하던 ‘2025년까지 원전 완전퇴출을 위한 법안’은 부결되었다. 이를 두고 한국의 보수 언론에서는 대만의 탈원전 정책이 좌초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국민투표 안건 가운데 ‘석탄 화력발전소 건설 중단’과 ‘매년 1% 생산량 감축’안은 가결되었고 ‘2025년까지’ 탈원전을 완료한다는 전기법 개정안만 부결된 것이다.
지난 12월18일 또 한차례 대만의 주요 정책에 대한 국민투표가 있었다. 4건의 제안 모두 차이잉원 정부의 손을 들어주는 결과가 나왔다. 이 가운데는 야당인 국민당이 올린 ‘룽먼원전건설 재개’안도 있었다. 룽먼원전 1, 2호기는 각각 98%와 91%까지 공정이 진척되었는데도 국민들은 건설 재개에 반대하며 탈원전을 지지했다.
국민투표는 때로 개혁 정책에 역행하는 결과를 낼 수도 있고, 정략적으로 이용될 수도 있다. 그러나 대만 시민들은 단기적 승패에 연연하지 않고 직접 주요 정책을 검토하고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법률을 개정하고 주권의 범위를 넓혔다. 국민투표를 통해 직업 정치인과 전문가, 산업적 이해당사자들의 야합과 로비로 막혀 있던 개혁의 물꼬가 열리고 국민들은 더 현명한 판단을 위한 정보와 토론을 더 많이 접하게 된다. 그렇게 민주주의는 진화한다.
한국은 87년 개헌 이후 한번도 국민투표를 한 적이 없다. 현행 국민투표법에서 투표권자 연령은 여전히 19살이고 재외국민 투표도 허용되지 않는다. 헌법재판소가 2014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지만, 국민투표법은 여전히 권위주의 시절의 모습 그대로 20세기 유물처럼 남아 있다. 촛불 이후에도 방만 바뀐 채 감동 없는 대선 경쟁을 봐야 하는 데는 시민사회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잘못도 크다. 주권자가 가져왔어야 하는 권력을 너무 많이 정치권에 위임했다. 2021년 겨울, 절망하기에 우린 아직 할 일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