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19일의 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던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TV 토론을 극구 기피했다. 공직선거법이 ‘3차례 이상’으로 규정한 법정토론은 피할 수 없었지만, 방송사가 요청한 후보 합동토론회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서 무산시켰다. 대선미디어연대가 ‘대선 후보 토론 기피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의 토론회를 열어 성토할 정도였다.
당시 이명박 후보가 TV 토론에 적극 임했다면 선거에서 불리했을까? 송종길·박상호·한동준이 쓴 ‘2007년 대통령선거 기간 중 TV 토론이 유권자의 정치인 이미지와 투표행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정치커뮤니케이션연구> 19호)라는 논문을 보면, 그렇지도 않았던 것 같다. 유권자들을 상대로 이명박·정동영·이회창·문국현·이인제 후보의 TV 토론 전후 ‘리더십, 친근감, 능력, 매력, 신뢰감’ 변화를 조사해보니, 이명박 후보는 1차 토론 뒤 리더십, 매력, 신뢰감이 상승했고 2차, 3차 토론 뒤에는 5가지 항목 모두 평가가 좋아졌다. 2차, 3차 토론 뒤 이미지가 좋아진 건 이명박·문국현 후보뿐이었다. 이명박 후보의 TV 토론 기피는 이런 결과를 예상 못 한 ‘부자 몸조심’이었던 것 같다.
이때를 분기점으로 우리나라 대선에서 TV 토론은 주변으로 밀려났다. 1997년 대선 때 57차례, 2002년 대선 때 27차례 이뤄진 TV 토론이 11차례로 줄어들었다. 2012년 대선 때는 박근혜 후보의 기피로 3차례만 열리고 말았다. ‘박근혜 탄핵’으로 급히 치러진 2017년 대선 때도 유력 후보들의 소극적 태도로 6차례만 했다.
20대 대선을 앞두고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TV 토론을 기피하고 있다. 그는 “토론을 하게 되면 결국은 싸움밖에 안 나온다”며 ‘국민 입장에서 봤을 때, (검증에) 그렇게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TV 토론은 상대와의 토론 과정을 유권자에게 보여주며 자신을 홍보하는 기회인데, 유권자의 판단력에 대한 불신을 드러낸 말이다. 비판이 일자 윤 후보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토론 상대로 삼을 수 없는 범죄자’라는 황당한 이유를 댔다. 지지율이 앞선 처지가 아니니 TV 토론 기피가 ‘부자 몸조심’은 아닐 테고, 자신의 본모습이 생중계로 드러나는 데 대한 ‘불안’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토론 거부의 강도가 불안의 크기와 비례하는 것 같다.
정남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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