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에서 보리치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 이상으로 중요하게 바라봐야 할 게 제헌의회의 구성이다. 그동안 기성정당 기득권구조, 금권정치, 지역 토호 등 실력자들의 연고 등이 작용하는 대의제 아래 배제되었던 무소속, 여성, 원주민 다수가 제헌의회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홍세화 장발장은행장·‘소박한 자유인’ 대표
“칠레가 라틴아메리카에서 신자유주의의 요람이었다면 또한 그 무덤이 될 것이다.”
지난해 12월, 칠레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56%를 획득하여 당선된 가브리엘 보리치가 좌파연합 후보로 선출되었을 때의 발언이다. 그는 칠레에서 대통령 피선거권을 가질 수 있는 최저 나이 35살에 출마해 국가수반에 오르게 되었다. 상대방인 55살의 극우파 정치인이며 독재자 피노체트의 추종자인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는 우파와 기득권 세력의 지지로 1차 투표(투표율 47%)에서 보리치 후보보다 2%포인트 많은 득표(27.9%)로 1위를 차지했으나 투표율 55%를 넘긴 결선투표에서 고배를 마셨다. 접전이 예상되었는데 큰 표 차이를 보였다. 유엔개발계획의 한 정치학자는 청년층과 도시 서민층이 적극적으로 보리치 후보에게 표를 준 것으로 보인다고 <르몽드> 기자에게 전했다. 특히 젊은 여성들은 성폭력에 의한 임신중절도 범죄화하겠다는 카스트 후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당선이 확정된 날 저녁, 승리의 기쁨을 함께 누리려고 운집한 군중 앞에서 보리치는 사적연금제 폐지-공적연금 체제로 전환, 전국민 건강보험, 환경보호, 여성 지위 신장 등을 다시금 강조하면서 복지국가로의 길을 약속했다. 칠레 최남단 지역의 크로아티아 이민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일찍부터 학생운동에 참여했고 27살에 하원의원에 당선되었다. 결선투표를 앞두고 중도파의 표를 얻기 위해 발언 수위를 조절했던 그는 소년 시절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불가능에 도전하자”라는 체 게바라의 말을 자기 방에 붙여놓았다고 한다.
칠레는 한국과 함께 오이시디 국가 중에서 가장 불평등한 국가에 속한다. 부유층 10%가 전체 부의 60% 가까이 차지하고 있는 반면, 하위 50% 즉 인구 절반이 전체 부의 10%도 차지하지 못한 점이나 조세부담률이 20% 수준에 머물러 복지 후진국이라는 점에서 두 나라는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분단체제 아래 한국이 전반적으로 우경화된 사회라는 점을 고려하면, 독재체제 이후의 정치적 궤적에서도 두 국가는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1973년에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조종과 지원에 힘입어 아옌데의 사회주의 정권을 전복시키고 권력을 장악한 피노체트는 밀턴 프리드먼의 제자들인 ‘시카고 보이스’(Chicago Boys)의 조언을 받아들여 칠레를 신자유주의의 실험장이 되도록 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를 수정할 수 없도록 헌법도 개정했다. 보리치 당선자로 하여금 칠레를 ‘신자유주의의 요람’이라고 말하게 한 배경이다. 1988년 피노체트가 실각한 뒤 오늘까지 30여년 동안 중도좌파와 우파가 교대로 정권을 잡았으나 불평등을 자양분으로 하면서 성장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기조는 바뀌지 않았다. 칠레에서도 부익부 빈익빈은 관철되었고 사회는 양극화되었다. 한국은 87년 여름 항쟁으로 전두환 철권통치를 종식시켰으나 대통령 직선제를 획득하는 데 그쳤다. 이른바 ‘87년 체제’라고 부르는 30여년 동안 수구적 보수세력과 자유주의 보수세력이 교대로 정권을 잡았으나 특히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로 강제된 신자유주의 체제는 요지부동이었고 부동산 폭등과 함께 최악의 불평등지수를 보이는 것은 최근 발표된 세계 불평등보고서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불평등의 세습구조가 공고해지고 있는 것이다.
촛불 항쟁은 한때의 신기루였나. ‘2기 촛불 정권’이니 ‘촛불 혁명 완수’니 하는 소리가 들린다.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는 권능을 충분히 가졌음에도 한 게 거의 없이 오만, 무능, 내로남불로 일관했는데 무엇의 2기고 무엇을 완수하겠다는 건가. 잠시라도 산업재해 위험 비정규직 노동자의 자리에 서보기를! 기후정의 과제를 완수하면서 세습구조화되는 불평등을 극복해야 할 대전환의 시대를 맞고 있다. 촛불 항쟁 당시 헌법 개정 제안이 수없이 나왔고 시민의회 구성 요구도 있었다. 촛불의 그 기운들, 대전환의 시대를 준비할 만한 사회변혁의 역량이 문재인 정권으로 수렴되면서 소멸된 반면에, 소멸되어 마땅했던 수구적 기운이 힘차게 소생할 태세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촛불, 다른 촛불이지 그런 게 아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인민은 사건을 통해 역사를 진전시킨다고 했다. 반세기 전 수만명의 시민이 고문, 학살, 처형되었고 망명을 해야 했던 칠레는 오늘 한국과 전혀 다른 길로 들어섰다. 그 직접적 계기는 2019년 10월의 지하철 요금 30페소 인상이었다. 30페소에 지나지 않지만 불평등이라는 이름의 인화물질에 불을 지핀 것과 같았다. 학생들이 트위터 등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시위를 조직했고 노동조합이 총파업을 결의하고 시위에 가담했으며 시민들이 동참했다. 학생운동, 여성운동, 원주민 권익 운동 등 다양한 운동이 전개되던 참에 사회적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위기에 처한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병력을 동원했다. 36명이 죽임을 당했고 1만여명이 부상당했고 2천명의 청년이 구속되었다. 그러나 칠레 인민은 굴복하지 않았다. 결국 피녜라 대통령은 비상사태를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제 정당이 ‘사회적 평화와 신헌법 제정을 위한 협약’에 합의함으로써 인민 봉기는 일단락을 지었다.
오늘날 칠레에서 보리치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 이상으로 중요하게 바라봐야 할 게 제헌의회의 구성이다. 국민 10% 이상의 의견 수렴 과정과 헌법 개정을 거친 뒤, 새 헌법 제정에 대한 찬성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78%가 찬성해, 155명의 제헌의회 의원이 비례대표제로 선출되었다. 남녀동수 원칙이 적용되어 여 77, 남78명으로 구성되었고, 10개 원주민(총인구의 9.6%)에게 17명의 의원이 할당되었다. 의장에는 마푸체족 원주민 엘리사 롱콘이 선출되었다. 그동안 기성정당 기득권구조, 금권정치, 지역 토호 등 실력자들의 연고 등이 작용하는 대의제 아래 배제되었던 무소속, 여성, 원주민 다수가 제헌의회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의결 조건이 3분의 2 이상이어서 새 헌법의 조항마다 의원 104명의 동의가 필요한데, 분석가에 따르면 우파정당 연합은 37석으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3분의 1(52석)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무소속이 48명인데 대부분이 학생운동가 출신이나 여성 활동가들이어서 그들 편에 서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새 헌법은 금년 하반기에 국민투표에 부쳐질 예정이다. 새로운 방식으로 선출된 제헌의회가 제정한 새로운 헌법 질서 아래 새로운 정치 질서가 새로운 대통령과 함께 펼쳐질 참이다. 칠레의 어느 좌파 정치인의 말처럼 “희망과 회의의 사이에서”. 그 또한 솔직한 심정으로 ‘회의’를 말했겠지만, 대전환의 시대에 꼭 필요한 도전이고 실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