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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논썰] 기어이 ‘검찰 공화국’? 캐비닛 수사와 사퇴압박에서 읽는 징후

등록 2022-04-02 08:59수정 2022-04-13 23:00

3년 묵은 사건 꺼내 현 정권 겨냥한 검찰
검찰총장·공수처장 사퇴 압박하는 국민의힘
검찰권 강화하는 윤 당선자 공약도 강행 뜻

검찰총장이 대통령 직행한 특수한 상황
정권-검찰, 인적·제도적 단절 더 철저히 하고
당선자·가족 관련 수사 결과 국민 납득시켜야

[논썰] 기어이 ‘검찰 공화국’? 캐비닛 수사와 사퇴압박에서 읽는 징후
[논썰] 기어이 ‘검찰 공화국’? 캐비닛 수사와 사퇴압박에서 읽는 징후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통령에 당선된 뒤 역시나 ‘검찰’이 논란의 중심에 서고 있습니다.

서울동부지검은 이른바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지난 3월25일과 28일 산업부와 산하 공공기관 8곳을 대대적으로 압수수색했습니다. 의혹의 핵심은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 산업부가 탈원전 정책에 반대하는 산하 기관장의 사직을 압박했다는 것인데요, 이미 2019년 1월에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이 검찰에 고발한 사건입니다. 3년이나 캐비닛 속에 묵혀둔 사건을 대통령선거가 끝나자마자 끄집어내 문재인 정부를 겨냥하는 모양새입니다.

[논썰] 기어이 ‘검찰 공화국’? 캐비닛 수사와 사퇴압박에서 읽는 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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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이 사건과 유사한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 확정판결이 지난 1월 말에 나왔기 때문에 법리 검토를 거쳐 본격 수사에 나섰다고 합니다. 하지만 석연치 않은 설명입니다. 환경부 사건은 2019년 4월 기소가 이뤄졌습니다. 산업부 사건도 비슷한 시기에 고발이 이뤄진 만큼 범죄 혐의가 있다면 수사·기소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환경부 사건은 이후 1·2심에서 유죄 판결도 나왔습니다. 법리적으로 기소가 어려웠던 것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무엇보다 이미 기소가 이뤄진 유사한 사건의 대법원 확정판결을 기다려 수사에 착수하는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논썰] 기어이 ‘검찰 공화국’? 캐비닛 수사와 사퇴압박에서 읽는 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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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여러 해석과 관측이 분분한데요. 그동안 정권의 눈치를 보며 수사를 미루다 정권 교체가 굳어지자 수사에 나선 것이라거나, 윤 당선자의 검찰권 강화 공약이 논란이 되는 가운데 검찰의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라거나, 새 정권과 코드를 맞추려는 의도라는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어느 경우든 검찰 수사에 ‘정치적 배경’이 깔려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런 일입니다. 윤 당선자는 선거운동 기간에 ‘집권하면 전 정권 적폐청산 수사를 할 것이냐’는 질문에 “해야죠. 해야죠. (수사가) 돼야죠”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 말이 수사 가이드라인이 돼 벌써부터 검찰이 움직이는 건 아닌지 궁금합니다.

‘캐비닛 속 사건 꺼내라’는 국민의힘…우려되는 정권-검찰 유착

이번 수사의 성격과 향방은 더 지켜봐야겠지만, 이것 말고도 ‘검찰의 정치화’를 걱정하게 하는 일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3월29일 “검찰과 경찰은 지난 5년간 눈치 보며 뭉개고 꼬리 자르고 캐비닛에 넣었던 온갖 비리 수사들을 하루빨리 정상 수사해서 합당한 처벌을 하도록 진상 규명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관련된 대장동 의혹을 포함해 5개 사건을 일일이 열거했습니다. 검경을 향해 현 정부를 겨냥한 기획수사를 주문한 셈입니다. 곧 정권을 쥐게 될 정당의 원내대표로서 매우 부적절한 언급입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튿날 “(김 원내대표의 발언은) 문재인 정부 수사를 공개적으로 지시한 것과 다르지 않다”며 “(윤 당선자의) 임기 시작을 사정정국, 보복수사로 시작하겠다는 선언”이라고 비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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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3월15일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김오수 검찰총장은 자신의 거취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며 법으로 보장된 임기가 1년 이상 남은 검찰총장의 사퇴를 압박했습니다. 윤석열 당선자 쪽의 핵심 관계자, 이른바 ‘윤핵관’의 한 명인 권 의원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검찰총장 임기제의 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발언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윤 당선자의 인식을 반영한 것이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합니다. 게다가 3월30일 인수위는 공수처와의 간담회에서 김진욱 공수처장의 사퇴까지 압박했습니다. 인수위 정무사법행정분과 간사인 이용호 국민의힘 의원은 “김 처장의 거취에 대해 입장 표명을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국민적 여론이 있다고 (공수처에) 말했다”고 밝혔습니다. 임기가 보장된 수사기관장에게 잇따라 사퇴를 종용한 것입니다. 수사기관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은 안중에도 없는 듯합니다. 검찰을 견제하는 역할을 해야 할 공수처까지 무력화하려는 게 아닌지도 의심되는 행태입니다.

[논썰] 기어이 ‘검찰 공화국’? 캐비닛 수사와 사퇴압박에서 읽는 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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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썰] 기어이 ‘검찰 공화국’? 캐비닛 수사와 사퇴압박에서 읽는 징후
[논썰] 기어이 ‘검찰 공화국’? 캐비닛 수사와 사퇴압박에서 읽는 징후
여기에 검찰권을 유례없이 강화하는 윤 당선자의 검찰 공약도 여전히 논란거리입니다. 인수위는 3월29일 법무부 업무보고에서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와 검찰의 독립적 예산편성권 부여, 직접 수사범위 확대 등 공약을 그대로 추진할 뜻을 재확인했습니다. 윤 당선자는 검찰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앞서 살펴본 김기현 원내대표나 권성동 의원의 태도를 보면 오히려 정권의 검찰 장악이나 유착관계가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검찰권 강화 공약도 어차피 정권이 장악할 검찰에 힘을 실어주려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듭니다.

정권 교체기에 돌출한 검찰의 현 정권 수사, 집권당이 될 국민의힘 인사들의 검찰 관련 발언들, 검찰권 강화 공약…. 이런 일들이 유독 이목을 집중시키는 이유는 바로 윤석열 당선자가 검찰총장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검찰총장이 대통령으로 직행한 특수한 상황에서 검찰의 움직임은 실질적이든 외형적이든 정치적 의미를 더 강하게 띨 수밖에 없습니다. 정권과 검찰의 관계도 더욱 민감한 사안이 됐습니다. 검찰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이라는 기존의 원칙을 한층 더 가다듬을 필요가 커진 것입니다.

새 정권과 검찰의 관계 설정, 어떻게 해야 하나?

그렇다면 앞으로 새 정권과 검찰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 나가야 할까요? 몇가지를 짚어보겠습니다.

첫째, 인적 단절입니다. 윤 당선자가 검찰에 있을 때 측근 그룹이었던 검사들이 검찰 요직을 차지해서는 안됩니다. 오랜 기간 맺어온 끈끈한 관계로 볼 때 대통령의 편에 서서 정치적 수사를 주도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논썰] 기어이 ‘검찰 공화국’? 캐비닛 수사와 사퇴압박에서 읽는 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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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당선자는 검찰총장 시절 최측근인 한동훈 검사장을 대상으로 진행되던 ‘검언유착 의혹’ 수사에 부당 개입하려다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을 초래한 바 있습니다. 윤 당선자는 당시 감찰·수사를 방해한 혐의로 징계까지 받았고 법원도 이 징계가 정당하다고 판결했습니다. 두 사람이 공사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윤 당선자는 선거운동 당시, 당선될 경우 측근인 한동훈 검사장을 검찰 요직에 중용할 것임을 시사했습니다. 이것이 현실화할 경우 ‘대통령→측근 검찰 간부→일선 검찰’로 이어지는 ‘동일체의 피라미드’가 작동하지 않으리라 보장할수 있을까요? 윤 당선자는 과거 정권에서 대통령이 검찰에 개입하는 통로였던 민정수석실을 없애 검찰의 독립성을 보장하겠다고 하지만, 측근이 검찰 요직에 중용되는 순간 의미가 없어집니다. 오히려 검찰이 민정수석이라는 우회로 없이 대통령과 직접 접촉하거나 이심전심으로 대통령의 뜻을 관철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어용 검찰’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측근이라는 분들이 사표를 냈으면 좋겠다. ‘우리는 더 이상 대통령 윤석열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야 검찰이 산다. 요직을 차지하며 검찰을 통제하면 대한민국 검찰은 그 순간 끝이다. 윤 당선인이 과연 이런 모습을 원할까? 검찰이 권력의 시녀였다는 국민적 비아냥을 당하도록 내버려 둬야 할까? 윤 당선인과 과거 윤석열 사람이었던 몇몇 검사의 손에 달려있다. 어찌보면 검찰을 제자리에 세우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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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는 검찰 관련 제도 개혁을 지속하는 것입니다. 검찰권을 강화할 게 아니라 반대로 검찰에 대한 견제 장치를 강화해야 합니다.

이에 대해선 두 달 전 윤 당선자가 검찰권 강화 공약을 내놨을 때 71회 <논썰>(‘구둣발 무례’ ‘셀프 수사권’, 윤석열 특권의식과 검찰공화국)에서 자세히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요약하면, 선출되지 않은 관료집단에 맡겨진 수사·기소권이라는 막강한 권력은 여러 기관에 분산시켜 서로 견제하게 해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민주적 통제 아래 두는 게 우리 헌법과 민주주의 원리에 맞다는 것입니다.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 검찰의 독립적 예산편성권 부여, 직접 수사범위 확대 등 윤 당선자의 공약은 이런 원칙과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것입니다.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라고 제 식구 챙기듯 검찰의 힘만 키워주는 것은 윤 당선자가 국가 전체와 시대 정신을 살피는 지도자의 안목이 부족함을 드러낼 뿐입니다.

끝으로 세번째는 현안 수사에서 검찰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것입니다.

[논썰] 기어이 ‘검찰 공화국’? 캐비닛 수사와 사퇴압박에서 읽는 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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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당선자는 검찰총장 때 ‘살아있는 권력 수사’라는 명분으로 현 정권을 겨냥한 수사에 집중했습니다. 그런 수사를 정치적 자산으로 삼아 검찰총장을 중도 사퇴하고 정치에 뛰어들었습니다. 이는 그 자체로 검찰의 생명과도 같은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는 일이었습니다. 검찰이 이런 전철을 되밟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럴 가능성도 별로 없겠지만, 검찰이 윤 당선자를 특별히 겨냥해 정치적 기획수사를 해서는 안됩니다. 그렇지만 부정부패에 대한 객관적이고 엄정한 수사는 여전히 필요하고, 이는 누구도 부인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윤 당선자도 예외가 돼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윤 당선자의 대장동 사업 불법대출 봐주기 수사 의혹, 부인 김건희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 등 윤 당선자와 가족 관련 의혹들이 이미 여럿 제기됐고 수사가 진행 중입니다. 이들 사건을 검찰이 제대로 수사해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수사 결과를 내놔야 합니다.

그러려면 윤 당선자부터 검찰에 ‘살아있는 권력 수사’를 주문하고, 이것이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국민들과 검찰이 신뢰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앞서 언급한 ‘인적 단절’이 필요하고, 비선을 통한 검찰 장악이나 수사 개입을 막는 구체적인 조처가 나오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검찰 역시 윤 당선자를 ‘제 식구’로 여기지 않는다는, 그래서 검찰의 고질병인 ‘제 식구 감싸기’가 적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분명한 의지를 보여줘야 합니다.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 수사처럼 전격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로 윤 당선자와 가족 관련 사건을 수사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권력의 시녀→정치집단화→검찰 독재?

마무리하겠습니다. 수사·기소권은 정치적 중립을 전제로 국민이 검찰에 위임한 막강한 권력입니다. 윤석열 당선자는 이를 이용해 정치적 입지를 다진 끝에 대통령 자리에까지 오르게 됐습니다. 과거 정치권력과 결탁해 ‘시녀 노릇’을 하며 권력을 나눠갖던 ‘정치 검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검찰 자체가 정치권력을 배출하는 ‘정치집단화’한 것입니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정치권력을 잡은 전직 검찰총장과 검찰이 한통속이 돼 검찰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상황이 된다면, 검찰의 정치적 중립은 뿌리째 뽑혀버리고 가장 강력한 공권력이 특정 정치세력의 전유물로 전락하고 맙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검찰 공화국’ ‘검찰 독재’라고 부를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그런 단계로 나아가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에 다다라 있습니다. 새 정권과 검찰의 관계를 철저히 감시해야 할 이유입니다.

기획·출연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

연출·편집 조소영 피디

도움 채반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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