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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기현의 ‘몫’] 치매여도 일하며 살 수 있을까

등록 2022-04-10 14:24수정 2022-04-11 02:07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조기현 ㅣ 작가

‘초로기’라는 말은 ‘노년기에 접어드는 초기’라는 뜻이다. 왜 중장년기가 아니라 초로기일까? 처음 이 단어를 접했을 때 들었던 질문이었다. 마치 현재가 미래에 저당 잡힌 느낌이다. 내가 이 단어를 알게 된 건 아버지에게 ‘초로기 치매’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인지는 점점 저하됐는데, 비교적 젊은 신체는 체력이 남아돌았다. 아버지는 계속 일하고 싶어 했다. 나도 아버지가 일을 하면서 사회와 좀 더 연결되길 바랐다. 인지가 저하되더라도 하루치 일을 해냈다는 보람을 느끼고, 임금을 받고, 사람들과 상호작용 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듯했다.

아버지는 스스로 소일거리라도 찾아서 해보려고 했지만 인지가 저하되니 자주 다쳤다. 자활기업이나 공공근로를 찾아봤지만,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사회참여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 노인 치매 당사자를 위해 프로그램을 맞추다보니, 젊은 아버지가 참여할 만한 프로그램이 마땅치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버지의 신체가 노쇠해지길 기다리는 것밖에 없어 보였다.

젊어서 시작된 치매는 예외적인 걸까? 뭔가 더 해보려고 하지만 아무것도 해볼 수 없는 건 아버지만이 겪는 문제일까? 2019년 전체 치매 상병자 중 65살 미만은 10.7%를 차지한다.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초로기 치매 당사자는 한창 일할 나이에 치매로 직장을 잃기도 하고, 그로 인해 빈곤에 빠질 위험도 크다. 치매가 일찍 시작됐기에 돌봄을 받는 시기는 길어진다. 그럼에도 노인의 치매에 비해 상태가 심각하지 않으니 관심이 적다. 최근 두 지방자치단체는 주목해야 하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시흥시치매안심센터는 ‘초로기 치매환자 지역공동체 일자리’를 시행 중이다. 치매로 실직하고, 의료비 부담이 커지고, 재정적 어려움에 시달리는 상황을 해결하고자 한다. 올해 1월말에 참여자 모집을 마쳤고, 현재 3명의 초로기 치매 당사자가 참여한다. 주요 업무는 치매 관련 영화 상영과 인식 개선 교육 지원이다. 무엇보다 일일 프로그램을 넘어 ‘일자리 사업’으로 접근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근무시간은 주30시간 이내로, 임금은 최저시급인 9160원에 일일 간식비 5000원이 포함된다. 월급으로 150만원 내외를 손에 쥘 수 있는 셈이다.

인천광역시치매센터는 ‘가치함께 사진관’을 열었다. 올해 11월까지 매월 마지막주 화요일에만 열리는 귀한 사진관이다. 과거 사진사였던 초로기 치매 당사자가 사진을 찍는다. 5명의 초로기 치매 당사자들 또한 사진을 찍고 출력하고 액자를 짜는 전 과정에 손을 보탠다. 인천광역시치매센터는 작년부터 치매친화영화관을 표방한 ‘가치함께 시네마’ 상영회에 일일 직원으로 초로기 치매 당사자를 고용했다. 주요 업무는 티켓 배부, 열 체크, 환기 및 소독이었다. 그 외에도 부설로 운영하는 뇌건강학교 북카페에서 음료를 만들고 청소하는 업무를 보기도 하고, 마당에 함께 나무와 꽃을 심기도 한다.

두 지자체의 시도가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드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정부는 작년부터 초로기 치매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제4차 치매관리종합계획(2021~2025)에는 초로기 치매 당사자를 위한 ‘공공근로 프로그램 개발’이 담겨 있다. 두 지자체의 시도는 초로기 치매 당사자를 위해 어떤 노동을 만들 수 있는지 기준을 제시한다. 치매 영화 상영, 인식 개선 교육을 지원하는 일은 자신이 하는 노동의 결과에서 소외되지 않는다. 공동체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대부분 치매 당사자들은 과거에 직업이 있었다. 몸이 기억하는 과거의 일을 활용해볼 수 있다. 이런 기준을 바탕으로 여러 ‘노동’을 상상해보자. 이제 치매 돌봄뿐 아니라 치매 노동을 보장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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