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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중대재해법은 보디캠이다

등록 2022-04-10 18:03수정 2022-04-11 02:08

[한겨레 프리즘]
산업재해, 산재, 끼임사, 현장노동자 / 게티이미지 제공
산업재해, 산재, 끼임사, 현장노동자 / 게티이미지 제공

하어영 | 전국팀장

7 대 29.

달라졌다. 지난 1월27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이 시행되고 4월8일까지 <한겨레> 전국부에서 생산된 기사를 셈했다. 1년 전 4배를 넘어선다. 사망 사건만이다. 사건 뒤 사법 처리를 담은 기사, 인명 피해가 적거나 없었던 기사 등을 더하면 5배 이상이다. 다른 부서(경제부, 사회부, 사회정책부, 정치부 등) 기사까지 더하면 그보다 더 늘어난다. 숫자는 말한다. 달라졌다.

지난 4월8일 오후 6시14분. 금요일 신문사 앞도 고갯마루까지 퇴근 차량이 꼬리를 문다. 휴대전화가 울린 건 그때다. “사천시청 벌목작업 중 사망재해”, 발신자는 전정윤 사회정책부장이다. “지자체 1호 사건 같다는데 아직 정확한 확인이 안됨”이라는 메시지가 실시간으로 날아든다. 경남 담당 최상원 기자에게 전화를 건다. 수화기 너머에선 “그러잖아도, 보고 있어요”라는 목소리가 긴박하다. ‘사천시청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 벌목작업 중 숨져’라는 기사가 ‘사천시청, 50명 이상 사업장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라는 부제목으로 나오기까지는 30분 남짓. 두 부서 기자 서너명이 퇴근을 미룬 협업은 ‘당연한’ 것일까. 고백하자면 지난해엔 아니었다. ‘누더기’, ‘반쪽’이라고 손가락질받던 중대재해법이 변화를 만들었다. 기자들이 움직인다.

중대재해법에 달라진 건 언론만이 아니다. 기업마다 시에스오(CSO·최고안전책임자)가 생기고, 안전점검이 강화됐다. 50인 미만 사업장 유예 등을 고려하더라도 현장도 달라졌다. 십수년 경력 현장노동자 이씨에게 중대재해법은 ‘보디캠’(몸에 붙인 카메라)이다. “법 어쩌고 하면서 캠을 차고 작업을 하라니 어디 짱박혀서 담배 한대 피울 수가 없”다. 징집된 늙은 군인처럼 몸에 익은 ‘요령’들은 이제 쓸모가 없다. “그 양반(사주) 잡혀가는 것 막겠다고 아주 노골적이야”라는 말엔 날이 바짝 섰다. 보디캠만이 아니다. 폐회로텔레비전도 수십개가 더 달렸다. 새로 설치된 안전난간, 깐깐해진 안전관리지침…. 볼멘소리가 계속된다. 보디캠은 인권침해 같다고 편을 들어본다. 그가 쏟아내던 말수를 줄이더니 헛기침을 한다. 짐짓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현장에서 사람 죽어 나가는 것 봤어요?” 그는 산재 사고 목격자다. “보디캠이 사람 죽는 것보다 낫지”라며 다시 헛기침을 한다. “불편하긴 하지만…, 할 만하다”며 서둘러 현장으로 나선다. 사무직 김 과장에게 중대재해법은 ‘배로 늘어난 계약서 업무’다. 몇달 전만 해도 간단히 비용 처리 하면 끝이었는데, ‘만일을 대비해’ 빠짐없이 계약서에 남겨야 한다. ‘품의’와 ‘결재’가 더해진다. 평소보다 최소 주 단위로 일정이 미뤄진다. 일만 는 게 아니다. 부서장 독촉도 심해진다. 때론 ‘사고 났을 때 나만 살자고 이런다’는 생각이 불쑥 올라온다. 그때 민망함은 어디에 말하기도 어렵다. “요즘은 서류에 ‘신호수’라는 단어가 눈에 보여. 무심코 지나치던 것들인데.” 김 과장은 조심스럽게 “조금은 변했나 싶다”고 한다.

132 대 116. 달라졌다고 할 수 있을까. 지난해와 올해 2~3월 노동운동단체 ‘노동건강연대’에서 셈한 산업재해로 숨진 노동자 숫자다. 고용노동부 집계는 아직이다. 노동건강연대는 매달 언론 기사에서 ‘숨져’, ‘사망’, ‘노동자’, ‘작업자’ 등 키워드로 산재 사망 사고를 골라낸다. 132와 116 안에는 떨어져서, 깔려서, 끼여서, 물에 빠져서, 무너져서, 화재·폭발로, 과로로, 물체에 맞아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숨진 노동자의 개별적인 죽음들이 담겨 있다. 그리고 ‘-16’. 지난해와 올해 두달을 견줘 줄어든 죽음의 수다. 보디캠을 차는 이씨가, 계약서에 치인 김 과장이 법과 만나 만든 숫자일까. 산술적으로는 올해 -100에 육박할 텐데, 희망을 말하는 이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 틈이다. 경영책임자의 심기(“잠재적 범죄자 취급”)와 기업 수익(“경영 위축”)을 담은 목소리가 튀어나온 건. 그렇게 법은 다시 갈림길에 섰다.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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