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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홍위병 대신 ‘백위병’…상하이 ‘방역 문화대혁명’ / 박민희

등록 2022-04-19 15:27수정 2022-04-20 02:51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상하이에서 2600만명이 한달 가까이 집안에 갇힌 채 ‘식량난’을 호소하는 장면은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중국의 오늘날을 은유하는 판타지 영화처럼 보인다.

중국은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2020년 4월8일 코로나19의 발원지인 우한 봉쇄가 끝난 뒤, 중국 정부는 ‘역동적 제로 코로나’(動態淸零) 정책을 발표했다. 쇄국에 가까운 국경통제와 감염자가 1명이라도 발견되면 주변 지역을 완전히 봉쇄해 감염원을 차단하는 방식이다. ‘제로 코로나’에는 다른 나라는 모방하기 어려운 두가지 요소가 있었다. 시진핑 시대 들어 중국 당국은 말단 행정조직인 사구(社區)의 주민 통제 기능을 대폭 강화했고,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정교한 감시 시스템을 구축했다. 역사상 유례 없이 강력한 이 사회통제 시스템이 초강력 방역을 가능하게 했다. 시진핑 주석은 ‘방역 인민전쟁의 승리’를 자신의 주요 업적으로 선언했고, 코로나 방역은 보건의 문제가 아닌, 통치의 문제가 되었다. 제로 코로나는 ‘중국의 일당통치가 서방의 민주보다 우월하다’는 지표로서, 시진핑과 공산당의 권력, 사회 통제, 공세적 대외 정책을 떠받치고 있다. ‘위드 코로나’로의 전환을 제안한 방역 전문가들은 거센 비판에 떠밀려 자아비판에 나서야 했다.

하지만 상하이 시민들은 침묵을 거부한다. 당국이 상하이의 누적 오미크론 확진자가 32만명이 넘지만 사망자는 10명이라고 발표한 반면, 시민들은 ‘오미크론이 아니라 봉쇄 때문에 사람이 죽고 있다’며, 지금까지 120명이 넘는 사망자 명단을 모아 온라인에 기록했다. ‘상하이의 사망자’ ‘상하이인의 인내는 극에 달했다’는 글은 암치료를 받은 환자가 응급상황으로 병원에 갔지만 핵산 검사를 새로 해야한다는 요구 때문에 결과를 기다리다 목숨을 잃은 사연, 고립된 채 자살하는 노인들, 과도한 방역 업무로 자살한 보건담당 공무원 등의 사연을 상세하게 알렸다. 상하이의 유명 연출가인 후쉐양은 14일 ‘봄날은 너에게 이토록 깊은 사랑인데’라는 글에서 “변이된 바이러스 문화대혁명”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탄했다. “정부가 권력을 남용해 당과 인민의 대립을 일으키고, 모순적이고 과학적 근거가 없는 저급한 정책이 실행되고, 경제는 내리막길을 걷고 민생은 힘겨워졌고(...) 운동식으로 일을 처리해 질문과 반대의 목소리를 쓸어버렸다.” 상하이 시민들은 흰 방역복을 입은 경찰과 보안요원들의 강압적 태도를 문혁의 홍위병에 빗대 ‘백위병’이라 비판하고 있다.

최고지도자의 장기집권을 위해 ‘중국식 방역이 최고’라는 승리 선언에서 물러설 수는 없다는 권력의 논리가 중국인들을 ‘방역 문화대혁명’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 상하이 시민들의 목소리가 변화의 틈을 만들 수 있을까.

박민희 논설위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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