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충류인 도마뱀 가운데는 알 대신 새끼를 낳는 종류가 꽤 있다. 사진은 오스트레일리아에 사는 태생 도마뱀인 점박이스킹크(spotted skink)다. 찰스 포스터(Charles Foster) 제공
강석기 | 과학칼럼니스트
우리나라 대표 독사인 살모사(殺母蛇)의 한자를 풀어쓰면 ‘어미를 죽이는 뱀’이다. 어미 몸에서 새끼 뱀이 나오는 걸 본 사람이 어미가 새끼의 먹이가 되기 위해 새끼의 독에 기꺼이 제 몸을 희생하는 것으로 착각해 붙인 이름일까. 아무튼 뱀에게서 알 대신 새끼가 나오니 신기한 일이기는 하다.
엄밀히 말해 살모사는 난태생(卵胎生)으로 어미 몸 안의 알에서 부화한 뒤 새끼가 나온다. 그런데 몇몇 파충류는 자궁에서 자란 새끼를 낳는다. 심지어 어류인 상어 가운데도 알이 아니라 새끼를 낳는 태생(胎生) 종이 있다. 반면 포유류도 오리너구리처럼 난생인 종이 있다.
최근 학술지 ‘분자생물학 진화’ 사이트에 척추동물의 태생 진화에 관한 논문이 실렸다. 원래 난생인 초기 척추동물이 분화하며 여러 계열에서 태생이 진화했는데, 이 과정에 참여한 유전자들의 조합이 다 달랐다는 내용이다. 아무래도 알보다는 새끼가 생존 가능성이 크므로 이런 방향으로 선택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런데 몸속에서 태아를 키우는 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하고 노폐물을 제거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할 뿐 아니라 어미 입장에서 반은 남인 태아(염색체 절반은 부계이므로)에 면역거부 반응을 일으키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신을 하면 관련된 여러 유전자의 발현 패턴이 바뀌어야 한다. 혈관을 생성하는 유전자의 스위치는 켜지고 면역세포를 자극하는 유전자는 꺼지는 식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대 연구자들은 태생 도마뱀 3종과 태생 상어 1종, 태생 포유류 2종을 대상으로 임신과 관련한 몸의 변화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분석해 비교했다. 수렴진화, 즉 기능의 관점에서는 같은 방향(태생)으로 진화하므로 여기에 동원되는 유전자도 같은 종류일 것으로 예상했는데, 놀랍게도 종마다 유전자들의 구성이 꽤 달랐다. 게놈에는 하는 일이 비슷한 유전자들이 여럿 있으므로 종마다 선택된 조합이 다른 것이다. 종이를 자른 것은 똑같지만 그 과정에서 칼을 쓴 경우도, 가위를 쓴 경우도 있더란 얘기다.
논문을 읽다 보니 문득 양서류와 조류에 태생은 없는지 궁금해졌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양서류는 몇몇 도롱뇽이 태생이지만, 1만여종 조류 가운데는 태생이 없단다. 척추동물 가운데 유독 조류가 난생만을 고집하는 셈이다. 몸이 가벼워야 하는 새들로서는 배 속에서 태아를 키우는 게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타조나 닭처럼 나는 걸 포기한 조류도 태생으로 진화할 기회는 없었던 것 같다.
수년 전 조류독감 유행으로 산란계 수천만마리가 살처분돼 달걀값이 급등해 달걀을 수입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사료 곡물값이 오르면서 다시 달걀값이 치솟고 있다. 하루에 삶은 달걀 한두개를 꼭 먹는 나로서는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그래도 닭이 태생을 진화시키지 않은 덕분에 맛 좋고 영양도 많은 달걀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위안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