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편집인의 눈] 이승윤 | 중앙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지난 2월 아프가니스탄 난민 가족들이 울산 동구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신문을 통해 읽었다. 그들이 입은 다양한 색깔의 겉옷은 우리와 다르지 않았고,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와 아빠의 다부진 표정이나, 설렘과 긴장이 서려 있는 아이들의 커다란 눈망울이 클로즈업되었을 때 그들과 우리는 무척 닮았다고 느꼈다. 아프간 아이들이 삼삼오오 손을 잡고 처음 등교하던 날, 다양한 보도와 인터뷰가 있었다. 그 풍경 가운데 이들을 반겨주는 울산 주민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의 모습이 잠시 스쳐서 보였다. 머나먼 곳에서 한국의 남쪽 동네에 난민들이 오기까지, 사실은 얼마나 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연대의 손길이 있었을까 궁금했다. 하지만 훌륭한 공직자 몇명이 모습을 드러냈을 뿐, 이들의 이야기는 더는 들리지 않았다.
몇해 전, 조선업 하청노동자의 불안정성에 관해 연구하기 위해 울산에 머무른 적이 있다. 자문을 받기 위해 수소문해 만나게 된 활동가에 대한 기억이 오롯이 떠오른다. 깜깜해진 저녁 사무실 앞에서 그를 기다리는데, 멀리서 서서히 보이는 자그마한 체구와 안개꽃 같은 편안한 인상이 내가 상상한 것과 달랐다. 그를 따라 오래된 건물의 계단을 올라 장판이 깔린 사무실 바닥에 앉으니, 수십개의 산재 기록이 폴더별로 나뉘어 빼곡하게 한쪽 벽을 차지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름이 드러나지 않은 수십명의 후원금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그가 입을 여니, 연구자인 내가 논문이나 기사로는 결코 알 수 없었던 노동자의 일터와 삶에 대한 입체적인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하얗고 소녀 같은 얼굴이 “이게 하청의 하청, 또 하청인데요, 노동자에게 빨대를 꼽고 다 빨아먹은 다음 아프면 버려요”라고 결연하게 말할 때, 나는 엉뚱하게도 그의 삶이 궁금했다. 그가 보고 기록해둔 우리 사회의 누락된 풍경이 보고 싶었고, 그가 바꿔나간 많은 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어떤 이의 자녀에 대한 검찰 수사가 우리 사회 주요한 의제로 다뤄지더니 곧이어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논란이 ‘사태’로 연일 보도되면서 온 청년들이 공정에 목숨을 건 집단으로 묘사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 다른 한쪽에서는 새벽 시간에 쉴 새 없이 물류센터 안을 뛰어다니며 일하던 청년이 세상을 떠났다. 모두가 잠든 시간 재빠르게 오가며 일하는 이들은 ‘스파이더’(거미)로 불린다는 이야기를 그의 어머니에게서 들었다.
명문대 입시나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국제 논문을 ‘부모 찬스’로 작성했는지 등은 아득하게 먼 나라 얘기인 수많은 청년들도 바로 옆에서 살아가고 있다. 비닐하우스에서 동사했던 이주노동 청년, 부두에서 학비를 벌기 위해 일하다 300㎏짜리 쇳덩이에 깔려 세상을 떠난 어린 청년 노동자, 요트 바닥의 따개비를 제거하다가 익사한 실습생 청년, 그리고 수없이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의 섬세하고도 구체적인 이야기가 듣고 싶다. 이들과 손잡고 고민을 나누었던 농민, 노동자, 평범한 시민들의 존재도 확인하고 싶다.
자사고와 특목고의 폐지나 존치 여부가 일반고와 특성화고, 장애인학교 등에 진학하는 훨씬 더 많은 학생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취재해달라. 연금개혁이 필요하다면, 60살이 넘어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여성 노동자의 노후와 그 가족의 삶이 어떠한지 이야기해달라. 원전을 유지 또는 폐기한다면, 그 지역 마을과 동네 주민들의 삶에는 어떤 이야기가 만들어지는지 알고 싶다. ‘검수완박’이 실현되지 않는다면 회사원, 배달노동자, 아르바이트생, 주부, 청년들의 삶이 어떻게 고통받게 되는지 보여달라.
냉소와 낙담이 권유되는 시대라지만, 지금보다 정의롭고 행복할 수 있는 대안적 사회로 가는 길이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만들어지고 있다. 온 사방 천지에 있지만, 너무 작은 물길이라 서로에게 그 신호가 닿지 않고 있을 뿐. 이들이 <한겨레>를 통해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확인할 수 있길 바란다. 평범한 사람들의 경험과 이야기가 정리된 언어로 해석되고 모여야 비로소 연대의 동력이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바다로 가는 길을 만들고 있고, 그곳에서 만날 수 있다는 신호를 확인하고 싶다.
앞으로 1년간 <한겨레> 시민편집인이라는 무거운 책임을 지게 됐다. 1988년 창간호를 다시 읽어보았다. 보통시민들의 열망으로 만들어진 한겨레의 꿈을 소환해보시라 말씀드리고 싶다. 숨어 있는 99%의 풍경과 보이지 않는 절대다수의 누락된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요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