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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박찬수 칼럼] 윤석열 대통령은 대체 뭘 하려는 것일까

등록 2022-05-04 16:03수정 2022-05-05 02:09

1973년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은 영화 <후보자>는 젊고 이상적인 변호사(로버트 레드포드)가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한 뒤 중심을 잃고 선거전문가에게 기대서 승리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로버트 레드포드는 당선 확정 직후, 결정적 도움을 준 선거전문가에게 이렇게 묻는다. “이제 뭘 해야 하지?” 내주 출범하는 새 정부를 보면서 “도대체 뭘 하려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국민들이 갖는다면, 안타깝고 불안한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2일 오후 경기 용인시 처인구 중앙시장을 방문해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2일 오후 경기 용인시 처인구 중앙시장을 방문해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찬수 | 대기자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2일 경기 용인시 중앙시장을 방문해 ‘어퍼컷 세리머니’로 시민들에게 인사하는 사진은 상징적이다. 아직도 윤 당선자는 선거 유세 때의 심정으로 국정을 마주하고 있는 것일까. 선거 때는 정치적 제스처나 거친 언사가 때론 도움이 된다. 대통령 당선 뒤엔 다르다. 대통령의 성공엔 취임 직후 첫 100일이 중요하고, 첫 100일의 성공은 인수위 시절의 치밀한 준비에 기반한다는 걸 깨닫지 못하는 징표와도 같다.

2008년 11월4일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당선자는 사흘 뒤 첫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에는 오로지 하나의 정부와 하나의 대통령만이 있습니다. 내년 1월20일까지 그것은 공화당 정부입니다.” 오바마는 77일의 정권이양 기간 동안 권력을 행사하려 하지 않았다. 워싱턴이 아닌 고향 시카고에 머물며, 오로지 내각 인선과 취임 직후 추진할 정책 목록을 작성하는 데 집중했다. 그렇게 국민 앞에 내놓은 첫 인선은 꽤 성공적이었다. 민주당 경선에서 경쟁한 힐러리 클린턴을 국무장관에 기용하고,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을 수행 중인 조지 부시 전임 행정부의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을 유임시켰다. 국민 마음을 움직이는 ‘통합’의 가치는 구호가 아닌 이런 실천을 통해서 분명하게 각인되는 법이다.

윤석열 인수위는 어떤가. 인수위 기간 윤 당선자는 지역민심 청취 겸 당선 인사 명목으로 전국을 돌았다. 지방선거 개입 논란은 차치하고라도, 책임은 없고 권력은 쏠리는 당선자 시절을 만끽하려는 모습으로 비친다. 하지만 트레이드마크인 ‘ 어퍼컷 세리머니 ’ 는 더이상 국민 신뢰를 끌어올리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취임 이후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 삶을 얼마나 나아지게 했는지 결과로서 평가될 것이다.

새 정부의 고민을 느낄 수 없는 대표적인 게 첫 내각 인선이다. 김영삼 대통령이 “인사는 만사”라고 늘 말했던 건, 인사가 곧 대국민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인사를 통해서 대통령이 무엇을 하고자 하고 어떤 길을 가려는지 국민과 공직사회에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의 첫 인사에서 새로운 변화를 읽어내기란 쉽지 않다. 윤 당선자가 내세웠던 ‘공정과 정의’ 가치를 구현한 후보자가 단 한사람이라도 있을까 싶다.

장관 한번 하려다가 가족 전체가 예리한 칼날에 난도질 당하는 게 당연시되는 시대다. 이런 상황에서 좋은 인재를 발탁하기 어렵다는 건 나름 이해할 구석이 있다. 그래도 과거엔 18개 부처 장관 후보자 가운데 한둘 또는 두셋 정도는 ’참신하다’거나 ’뭔가 달라지겠구나’라는 감동과 기대를 심어주곤 했다. 새 정부에선 그런 인선을 눈씻고 찾을래야 찾기 어렵다. 국무총리는 공직의 뜻을 완전히 접고 로펌에서 고액 자문료를 받으며 여생을 편안히 즐기려던 말 잘듣는 고령의 전직 관료를 다시 불러낸 것 외에 다른 메시지를 찾기 힘들다. 김인철 교육부총리 후보자가 자진 사퇴했지만, 이것이 끝이 아님을 국민의힘 국회의원들도 내심 안다.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를 비롯한 모든 후보자가 특혜와 찬스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취임 이후 첫 100일의 중요성을 부각한 건 1930년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었다. 대공황 시기에 취임한 루스벨트는 초기 메시지와 정책이 국민 지지를 끌어내고 국가 역량을 재배치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는 걸 깨달은 첫 정치인이었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코로나로 소득과 자산 격차가 더 벌어지고, 세계적 경기침체의 빨간 불은 번쩍인다. 미-중 대립과 우크라이나 전쟁, 북한의 핵 증강 의지는 동북아와 한반도 안정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런 시기에 한국은 어떻게 활로를 모색해 나갈지, 새 정부의 인선과 정책에서 믿음직한 해법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떠나는 대통령과의 갈등은 감정을 건드리는 사안이긴 하나,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윤석열의 진정한 승부는 문재인과의 싸움이 아닌, 산적한 과제를 취임 직후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1973년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은 영화 <후보자>는 젊고 이상적인 변호사(로버트 레드포드)가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한 뒤 중심을 잃고 선거전문가에게 기대서 승리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로버트 레드포드는 당선 확정 직후, 결정적 도움을 준 선거전문가에게 이렇게 묻는다. “이제 뭘 해야 하지?” 내주 출범하는 새 정부를 보면서 “도대체 뭘 하려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국민들이 갖는다면, 안타깝고 불안한 일이다.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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