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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동자동이라는 미래

등록 2022-05-11 14:56수정 2022-05-12 02:37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추진주민모임'이 지난해 11월29일 서울 용산구 한국토지공사 수도권주택공급특별본부 앞에서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지구지정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추진주민모임'이 지난해 11월29일 서울 용산구 한국토지공사 수도권주택공급특별본부 앞에서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지구지정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상읽기] 조문영 |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지난주 토요일 아침, 서울역 맞은편 동자동 쪽방촌은 어버이날 행사로 분주했다.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는 해제됐지만, 주민 다수가 질병과 장애로 면역력이 약해진 상황을 고려해 잔치를 여는 대신 집집마다 돌며 인사를 나누기로 했다. 배달부 구실을 할 학생들이 일찌감치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협동회) 사무실에 모였다. 주민들이 손수 뜨개질한 카네이션, 떡과 음료를 구역별로 나눠 담았다. 나와 학생 넷이 속한 팀은 협동회 이사 정대철씨를 따라나섰다. 좁고 가파른 계단 양옆으로 생각지 못한 자리에 집이 있고, 사람이 살았다. 대부분 홀로 사는 어르신들은 웃옷을 챙겨 입고 나와 학생들을 반갑게 맞았다. 다들 정대철씨 이웃이니 자연스럽기도 했다. 몇년 전 처음 만났을 때 낯가림이 심했던 정씨는 협동회 활동에 참여하면서 부쩍 달라졌다. 준비한 선물을 모두 건넨 뒤 돌아와 소감을 나누는 자리도 그의 사회로 진행됐다.

학생들이 동자동을 자주 찾게 된 건 이번 학기 개설한 ‘빈곤의 인류학’ 수업이 동자동의 공공개발을 공동연구 주제로 삼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두가지 질문에 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첫째, 2021년 2월 국토교통부의 서울시 동자동 쪽방촌 일대 공공주택사업 결정은 어떻게 가능했나? 공공주택을 지어 세입자인 쪽방 주민이 정착해 살도록 지원하는 정책은 주거권을 헌신짝 취급해온 지난 재개발 역사를 돌아볼 때 큰 진전이었다. 둘째, 현재 이 사업이 마주한 난관은 무엇이며 어떤 논의와 개입이 필요한가? 지난 칼럼에서 소개한 대로, 사업은 소유주들의 거센 반발로 공공주택지구 지정도 이뤄지지 못한 채 일년 넘게 표류 중이다. 두 질문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 학생들은 네 팀으로 나눠 한국의 주거·개발 정책, 반빈곤·주거권 운동, 부동산 문화, 동자동 쪽방촌 커뮤니티를 살피기로 했다. 특히 커뮤니티에 방점을 둔 학생들은 주민자치조직을 운영해온 쪽방촌 주민들과 함께 지역의 일상적인 활동에 참여하면서 현장연구를 진행 중이다.

3월에 학생들을 데려가 협동회 주민들과 상견례를 할 때만 해도 걱정이 앞섰다. 대학 와서 줄곧 비대면 수업만 듣던 학생들이었다. 쪽방촌 주민과 어떻게 대면할지 몰라 극존칭을 쓰고, 자료로만 보던 ‘빈민’을 실제 확인하고 싶은 욕구를 내비치니 이러다 주민들에게 민폐만 끼치는 게 아닌가 두려웠다. 하지만 이사회, 주민운동 교육, 주거권 회의, 무연고 장례, 공공주택지구 지정 촉구 기자회견 등 협동회 활동들에 참여하면서 학생들의 시선도 제법 바뀌었다. 대상화된 ‘빈민’이 아니라, ‘주민들’의 건강을 진지하게 염려하기 시작했다. 외부 후원에 길들지 않기 위해 ‘우리’ 힘으로 하고 ‘우리’ 목소리를 내겠다는 다짐을 반복했지만, 가난의 미로를 거치며 녹슬고 마모된 몸들이 서로에 의지해 조직을 꾸려가는 풍경이 학생들 눈에 여간 위태로운 게 아니었다. 대학에서 총학생회조차 학생들의 무관심으로 사라질 판인데 누굴 걱정하냐고 핀잔을 주긴 했다. 곱씹어보니 연결하고 연결되겠다는 절박함의 정도가 두곳에서 확연히 다르다. 몸이 아프니 다툼도 잦지만, 쪽방촌 주민들은 동료 인간에게 거는 기대를 쉬이 꺾지 않는다. 어쩌면 동자동은 ‘정상’에서 이탈한 사람들이 관계맺음을 통해 ‘정상성’을 회복하는 공간이 아니라, ‘정상적’인 생애 경로를 착실히 밟은 사람들이 애초에 포기한 ‘공동의 미래’를 더디고 힘겹게 만들어가는 공간일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사람들이 동자동을 찾는다. 쓰지도 못할 물품을 가져와 인증샷을 찍고 사라지는 이들이 부지기수지만, 서로가 좀 더 평등하게 연결된 세계를 바라는 사람들도 제법 많다. 이번 어버이날 행사에는 ‘행동하는 미얀마 청년연대’ 소속 학생들도 손을 보탰다. 케이(K)-팝이 좋아 한국에 온 미얀마 유학생들이 풀뿌리운동이라는 또 다른 케이-역사를 미얀마 민주항쟁을 위한 초국적 연결망에 접속하고 있었다.

물론 부동산 문화를 살피는 학생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수집한 동자동 이야기는 결이 사뭇 다르다. 공공개발로 기대했던 수익이 줄자 “부동산이 안전자산이라는 뿌리 깊은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성토가 빼곡하다. 동자동에 살진 않지만 여러 건물을 소유한 분들도 이곳에 들러 자산을 집으로, 삶으로, 공동의 미래로 바꿔내는 특이한 경험을 해본다면 어떨까? 몽상이지만, 그래도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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