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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바이든의 선물 ‘트루먼 명패’의 무게/ 박민희

등록 2022-05-30 16:03수정 2022-05-31 02:52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2일 방한 동안 윤석열 대통령에게 선물한 ‘트루먼 명패’에 담긴 의미를 두고 여러 해석이 나왔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The Buck Stops Here)’는 문구가 새겨진 나무 명패인데, 해리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1945~1953년 재임)이 집무실 책상 위에 항상 올려두고 있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 선물은 그것을 본따 만들었다.

윤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예능 프로그램 <유퀴즈 온더 블록>에 출연해 이 명패를 언급하며 “많은 분들과 상의도 하고 의논을 해야 하지만 궁극적으로 결정을 할 때 책임도 져야 하고 국민들의 기대도 받고 비판과 비난도 한 몸에 받고. 열심히 하고 거기에 따른 책임과 평가를 받으면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미국 쪽이 이 프로그램을 보고 선물을 고른 것 아니냐는 추측이 있다.

물론 바이든 대통령이 강조하고자 한 것은 한국전쟁 당시 미국 대통령으로서 유엔군을 파병을 주도해 북한, 중국, 러시아와 맞서 싸운 트루먼의 역할일 것이다. 미-중 패권 경쟁이 격렬해진 시기에 한미동맹 ‘혈맹’의 역사를 부각하면서, 북-중-러의 위협에 다시 함께 맞서자는 뜻을 담은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입장에서 보면, 트루먼 전 대통령의 의미는 훨씬 절실하다. 트루먼은 부통령이 된 지 82일 만에, 1945년 4월12일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얼떨결에 대통령이 됐다. 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 소련, 중국과의 냉전이 닥쳐온 시대의 막중한 과제들이 그에게 맡겨졌다. ‘대학도 나오지 않은 미주리주 출신 시골뜨기’가 이런 임무를 감당하지 못할 거라는 회의적 시선 속에 1946년 중간선거에서도 참패했다. 하지만 예상을 깨고 그는 1948년 대선에서 승리했고 소련에 맞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창설하고, 마셜플랜으로 유럽의 재건을 지원하고, 한국전쟁에 파병하고, 중국의 대만 점령을 저지했으며, ‘트루먼 독트린’으로 공산주의 도미노를 차단해 냉전시대 미국 패권의 틀을 만든 대통령으로 미국 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지지율이 36%로 급락했고 올해 중간선거 패배가 예상되는 바이든 대통령은 트루먼 대통령을 모델 삼아, 중국의 도전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맞서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수호한 지도자로 역사에 기록되고 싶을 것이다.

바이든의 트루먼 따라하기가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트루먼 집권 시기 소련을 압도하는 경제력을 가졌던 미국이 더이상 아니다. 중국의 경제력이 강력하고, 무엇보다 미국 사회가 극심한 분열로 민주주의 위기에 처해 있다. 미국은 한국을 비롯한 동맹의 힘을 모아 중국 주변에 여러 겹의 포위망을 만들려 하고 중국은 이를 뚫으려 하면서, 세계는 계속 위태롭게 요동칠 것이다. 국제질서를 위해 역할을 해야 하지만 한국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어디까지인가. 한국은 미국과 다른 스스로의 전략을 가지고 있는가. 윤석열 대통령의 집무실 책상에 놓인 ‘트루먼 명패’는 많은 질문을 던지는, 무거운 청구서이기도 하다.

박민희 논설위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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