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프리즘] 김광수 | 전국부 선임기자
프랑스 경제학자이자 파리경제대학 교수인 토마 피케티(51)는 2013년 프랑스·영국·독일·미국·중국·일본 등 20여개 주요 국가들의 다양한 경제지표와 상속세 등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21세기 자본>을 출간했다.
그는 소득과 부의 불균형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한 이 책에서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커지면서 부의 불균형이 심화했다. 상위 1%가 세계 부의 25%를, 상위 10%가 60%를 차지한다”고 지적했다. 그보다 153년 먼저 태어난 카를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언급하기도 한 빈부격차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그는 글로벌 자본세와 함께 교육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과거보다 교육 민주화가 이뤄졌지만 양질의 교육기회 불균형이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또 다른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육 불균형 문제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부모의 소득이 높을수록 상위권 대학 진학률이 높고 수도권 학생들이 지방 학생들보다 학업 성취도가 높다는 보고서들을 의심하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어릴 때부터 맞춤형 고액 과외를 받거나 비싼 수업료를 내고 학원에 다니는 수도권 고소득 가정 자녀들이 그렇지 못한 환경에서 자란 지방 학생들보다 더 많이 이른바 명문대에 진학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실제 서울대 2022학년도 합격자(3438명)들의 주소를 보면, 서울시가 35.4%(1218명)를 차지했다. 서울시 인구(951만명)가 우리나라 전체 인구(5163만명)에서 차지하는 비율 18.4%보다 두배 가까이 많다. 혹자는 그런 차이가 뭐 그리 중요하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2022학년도에 한명이라도 서울대 입학전형에 응시한 전국 고교 1731곳 가운데 절반이 넘는 900곳(52%)은 서울대에 한명도 합격시키지 못한 게 현실이다. 물론 대부분 지방 고교들이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교육 격차가 그만큼 크다.
상대적으로 좋은 교육 환경과 프로그램을 누릴 수 없는 비수도권 학생들은 태어날 때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을 체험한다. 자기소개서와 면접을 혼자 준비해야 하는 지방 학생들은 이른바 ‘부모 찬스’로 명문대에 진학했다는 뉴스가 나올 때마다 부러움을 넘어 좌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게다가 대입 불공정성 논란은 엉뚱하게도 수시모집 축소로 이어졌다. 현 고3이 입학하는 2023학년도 대학입시부터는 고교생들이 선호하는 서울 주요 16개 대학은 정시모집 비율을 40% 이상으로 반드시 늘려야 한다. 수시모집 인원은 그만큼 축소된다.
그렇다면 서울 주요 16개 대학을 노리는 비수도권 학생은 어디가 유리할까. 아이러니하게도 부모 찬스를 쓰지 못하는 지방 학생들은 부모 찬스가 작동한다는 수시모집이 유리하다. 모든 수험생이 같은 날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러서 대학마다 성적순으로 신입생을 선발하는 정시모집이 공정해 보이겠지만, 수시모집 문이 좁아지면 지방 학생들의 진학은 더 힘들어진다. 지방 학생보다 수도권 학생, 현역(고3)보다 재수생·삼수생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더 잘 치기 때문이다.
실제 서울대 2022학년도 합격자 주소를 보면, 수시모집 합격자 가운데 31.4%가 서울에 주소를 뒀는데, 정시모집 합격자 가운데 그 비중은 44.4%로 훌쩍 뛰어오른다. 서울대가 전국 인재를 고루 등용하겠다며 시행하는 지역균형전형 모집 인원을 축소하면 비수도권 인재들의 서울대 진입이 더 힘들어질 것은 자명하다.
토마 피케티의 주장대로라면 중·하위 계층이 고소득 일자리를 많이 가져야 장기적으로 빈부격차와 양극화를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다. 안타깝지만 우리나라에서 고소득 일자리를 얻으려면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 이에 지방 학생들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부모 찬스가 없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부의 불균형을 줄이기 위해 수시모집과 정시모집 가운데 어떤 선발 방법이 나을까. 토마 피케티에게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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