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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추모에서 멈추면 안 된다

등록 2022-06-05 18:38수정 2022-06-06 02:38

스티브 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감독이 지난달 25일(한국시각) 미국 텍사스 댈러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미국 <시비에스> 유튜브 채널 갈무리
스티브 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감독이 지난달 25일(한국시각) 미국 텍사스 댈러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미국 <시비에스> 유튜브 채널 갈무리

[한겨레 프리즘] 이승준 | 이슈팀장

“우리는 언제 문제를 해결할 겁니까?”

책상을 거세게 내리치며 분노를 터트리는 미국 프로농구(NBA) 스티브 커 감독(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기자회견 영상을 숨죽이고 봤다. 지난달 25일(한국시각) 텍사스 댈러스에서 열린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결승전) 댈러스 매버릭스와의 4차전 경기를 앞둔 기자회견에서 그는 “오늘은 농구보다 더 중요한 얘기가 있다”며 3분 동안 ‘텍사스 초등학교 총기 난사’에 대한 분노를 쏟아냈다. 같은 날 경기장에서 400마일(약 640㎞) 떨어진 유밸디의 롭초등학교에서 18살 총격범이 총기를 난사해 학생 19명과 교사 2명이 숨졌다. 앞서 같은 달 14일에는 뉴욕 버펄로 슈퍼마켓에서, 15일에는 캘리포니아의 한 교회에서도 총기 난사로 생명이 스러졌다.

1990년대 시카고 불스에서 마이클 조던, 스코티 피펜 등 전설적인 선수들과 함께 뛰었던 선수, 스테픈 커리, 클레이 톰프슨 등을 이끄는 감독 정도로만 알고 있던 그의 개인사가 궁금했다. 커 감독은 대학교 신입생이던 1984년,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테러 단체의 총격에 아버지를 잃은 경험이 있다. 이러한 경험 탓에 그는 총기 규제를 꾸준히 지지해왔다고 한다. 그의 개인사를 접하고 기자회견 영상을 보니 그의 말은 울림이 있었다. “미안하지만, 충격에 빠져 있을 가족들에게 조의를 표하는 것도 (추모를 위한) 침묵의 시간도 지쳤습니다.” 그는 총기 규제 법안을 반대하는 상원의원들을 향해 “당신들의 욕망이 우리의 삶보다 중요하냐”고 일갈했다.

커 감독의 기자회견 다음날인 지난달 26일, 한국의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 1∙2번 출구 쪽에 ‘발달∙중증장애인 참사 분향소’가 설치됐다. 올해 벌어진 잇따른 장애인들의 죽음과 장애인 가족의 극단적 선택을 추모하며, 반복되는 비극을 막자고 호소하기 위해 마련됐다.
서울 지하철 삼각지역 1∙2번 출구 쪽에 마련된 장애인 가족 추모 분향소. 분향소에 마련된 책상 위에는 시민들이 숨진 발달장애 아동을 위해 두고 간 음료수와 과자 등이 놓여 있다. 박지영 기자
서울 지하철 삼각지역 1∙2번 출구 쪽에 마련된 장애인 가족 추모 분향소. 분향소에 마련된 책상 위에는 시민들이 숨진 발달장애 아동을 위해 두고 간 음료수와 과자 등이 놓여 있다. 박지영 기자

아픔을 겪은 이들의 언어는 비슷한 것일까. 분향소를 설치한 전국장애인부모연대(부모연대) 회원들은 기자들에게 “추모만 한다고 장애인 가족들의 죽음이 멈추지는 않는다”고 했다. ‘아이보다 하루만 딱 더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부모들이 입에 달고 살 정도로 장애인 자녀 돌봄은 개별 가정에 대부분 전가되고 이들의 삶을 옥죈다. 보건복지부의 ‘2020년 장애인 실태조사’를 보면 장애인의 32.1%가 일상생활에서 다른 사람의 지원이 필요한데, 이를 주로 책임지는 사람은 가족구성원이 76.9%인 것으로 집계된다. 이는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오래된 문제’다. 시각장애인 정치인인 42살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도 분향소를 찾아 “‘너 죽고 나 죽자’는 말, 이런 말을 들어보지 않은 장애인 자녀는 손에 꼽을 만큼 적을 것입니다. 저희 어머니도 제가 중학생 때 그런 말을 하셨습니다. 그때 어머니께 ‘내 인생은 나의 것이고, 그 끝은 내가 결정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라고 했다.

김 의원의 말대로 장애인 당사자의 생명을 가족들이 좌지우지할 수 없다. 이제라도 장애인과 그 가족들이 우리 사회에서 고립되지 않고 삶을 꾸릴 수 있도록 뭐라도 바꿔야 한다. 부모연대가 분향소를 찾는 여야 정치인들에게, 분향소와 가까운 곳에 있는 대통령 집무실을 향해 ‘추모에만 그치지 말고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 체계를 연령대별로 촘촘히 구축해달라’고 호소하는 이유다.

이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기사에는 ‘전 정부 때는 가만히 있다가 왜?’ 같은 댓글이 달린다. 그러나 부모연대는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년 4월에는 68일 동안 청와대 주변에서 천막농성을, 2019년 5월엔 청와대 앞 기습시위를 하기도 했다. 당시 기사에도 “전 정부에서 아무 말 못하다가 왜 지금?” 같은 댓글이 달려 있다.

여야가 바뀌고 권력이 교체돼도 정부와 정치가 ‘나중에’라며 외면하는 문제들은 쌓여간다. ‘언제 문제를 해결할 거냐’는 질문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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