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지방선거가 치러진 지난 1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개표상황실이 마련된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 당 지도부가 개표방송 시청 뒤 자리를 비워 썰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한겨레 프리즘] 김태규 | 정치팀장
그는 “죄짓고 엎드려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들과 같은 처지”라며 “우리는 폐족”이라고 했다. 2007년 대선 일주일 뒤 안희정 당시 참여정부평가포럼 상임위원장이 쓴 글이다. ‘좌희정 우광재’로 불렸던,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서 무기력하게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참담한 상황에서 써 내려간 통렬한 반성문이다. “집권 10년의 역사를 계속해서 지키지 못한 것, 거대 집권여당 세력을 단결된 세력으로 가꾸고 지키지 못한 것. 이 모든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다시 정권을 잡았지만 이번엔 5년 만에 내줬다. 민주당과 한나라당 계열 정당이 10년마다 정권을 주고받는다는 ‘10년 주기설’마저 거스른 참패였다. 지방선거까지 깨졌다.
당의 주류였던 친문 세력은 말한다. 대통령 지지율이 40%였는데도 졌다고. 이건 후보 탓이라고.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의원 쪽은 되받는다. 문재인 정부 실정 때문에 정권교체론이 50%를 넘었는데 이걸 어떻게 극복하냐고. 그래도 이재명이니까 0.73%포인트까지 붙었다고. 서로 격렬하게 손가락질하는데 과연 누구 말이 옳을까.
대선 과정에서 내게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김혜경씨의 법인카드 논란이었다. 김씨 모르게 ‘가족 같은 공무원’ 배아무개씨가 도청 예산을 유용했다고 해도 배씨가 도지사 집안일에 동원된 팩트는 남는다. 이 의원은 2017년 민주당 대선 경선을 완주하며 차기 주자로 자리매김했고 이듬해 경기지사에 당선되며 대선 고지에 성큼 다가섰는데, 유력 대선후보의 배우자가 저런 ‘서비스’를 받았다는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온갖 막말로 혐오와 갈등을 조장해 도저히 대통령감으로 보이지 않던 윤석열 후보를 추월하는 데 이런 일들이 걸림돌로 작용한 것 아닐까. 승자독식 승부인 대선에서 ‘잘 싸운 패배’는 없는데 이 의원은 대선 3개월 만에 여의도에 입성한 데 이어 전당대회 출마까지 저울질하고 있다.
이 의원과 당내 대선 경쟁자였던 이낙연 전 총리는 지난 3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졌잘싸’라는 표현이 “충격”이었다며, “지도부 스스로가 ‘졌지만 잘 싸웠다’고 내놓고 평가한 것은 국민 일반의 정서에도 배치되는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의 문제점’ 중 하나로는 “성적인 비리나 실언”을 거론하며 “도덕성 우위가 사라진 것”을 들었다. 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당 소속 선출직의 중대한 잘못으로 재보선을 하면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민주당 당헌을 개정한 잘못은 언급하지 않았다.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이 전 총리는 당헌 개정을 밀어붙이고 서울·부산시장 후보를 공천해, 결국 4·7 재보선 참패를 자초했다. 그는 본인의 잘못은 반성하지 않고 미국으로 떠났다.
문재인 정부 시절 원내대표와 장관으로 일했던 이들의 책임도 크다. 대통령 지지율이 마지막까지 40%를 유지했다고 우쭐대지만, 한때 80%를 넘던 지지율의 ‘반토막 엔딩’이었다. ‘조국 사태’가 중도층 민심 이반의 결정적 계기가 됐지만 문재인 정부 핵심들은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민주당은 ‘윤석열 검찰총장’ 공격에 열을 올려 결국 빈사 상태였던 야당을 대신해 강력한 대선주자를 키워냈다. 잘못된 방향으로 폭주한 민주당 정부 5년에 책임 있는 이들이 오는 8월 당권을 잡겠다며 전당대회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이들 모두 안 전 지사의 표현대로 “죄짓고 엎드려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들”이다. 성폭력 사건으로 이른바 ‘민주개혁세력’에 치명상을 안긴 그의 글을 불가피하게 15년 만에 인용한 이유는, 그동안 이를 능가할 절절한 반성문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침 또 다른 친노 핵심이었던 이광재 전 의원이 “다 ‘내 탓’이라는 생각으로” 삭발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이재명·전해철·홍영표 의원 모두 불출마하고 후배에게 기회를 주자”고 했다. 책임 있는 사람의 무위와 부작위가 ‘최고의 반성’이 되는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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