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승강장에서 장애인들이 지하철 탑승 시위를 마친 뒤 삭발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얼마 전 운동을 하다 손목이 골절됐다. 꼼짝없이 6주간 깁스를 하고 지내야 했다. 처음엔 사지 중 하나를 잠시 못 쓸 뿐인데 뭐 대수겠나 싶었다. 그러나 막상 겪어보니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다행히’ 왼손을 다쳤지만 나는 공교롭게 왼손잡이다.)
짝을 잃은 한 손은 무기력했다. 신발끈을 묶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고, 양말을 신거나 허리띠를 매는 일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설거지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 손으로는 주스병이나 약병 등의 뚜껑을 열기가 쉽지 않았다.(일상생활에서 양손이 함께 움직여야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한번 떠올려보라!) 한 손으로 타이핑을 하려면 사실상 ‘한 손가락 타법’을 써야 한다는 사실도 이번에 알았다.
평소라면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웠을 행동에도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니 감정 소모가 컸다. 때때로 무력감이 들기도 했다. 고작 6주간 한 손에 깁스를 했을 뿐인데도 말이다.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에겐 세상이 온통 벽으로 느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몇달 전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아버지가 산책을 하다 발목이 골절됐다.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다니다 보니 평소엔 의식하지 못했던 ‘장벽’들이 눈에 들어왔다. 부모님이 사는 낡은 아파트엔 엘리베이터가 없었고 계단은 폭이 좁고 가팔랐다. 1층 현관에는 경사로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 택시를 이용할 때면 병원 앞 차도와 인도의 턱이 너무 높아 쩔쩔매야 했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장애인이 살아가기 힘든 사회다. 세계에서 일곱 나라밖에 안 된다는 ‘3050클럽’(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인구 5천만명 이상)에 속하지만, 장애인이 차별 없는 삶을 누리는 데 필요한 인프라는 취약하다. 등록 장애인이 260만명이 넘는데 거리에선 장애인을 보기 어려운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을 터다. 보건복지부의 2020년 장애인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한달에 한번도 외출하지 않는 장애인 비율이 8.8%, ‘월 1~3회’가 12.9%에 이른다. 장애인 5명 중 1명은 거의 집에만 머문다는 얘기다.
인간다운 삶을 누리려면 누군가를 만나고 교육을 받고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언제든 자유롭게 밖을 돌아다닐 수 있어야 한다. 이동권을 ‘생존을 위한 기본권’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여년 전 ‘버스를 타자’ 운동을 벌인 장애인들이 지금도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를 하는 것은,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장애인들이 마주하는 현실이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음을 웅변한다.
사람들은 대체로 장애를 자기와는 무관한 일로 여기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 장애인의 80%가 질환(43.6%)이나 사고(36.4%)로 인한 ‘중도 장애인’이다.(2020년 장애인 실태조사) ‘장애인 이동권 투사’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도 군복무를 마친 뒤 불의의 사고로 하반신 마비 장애를 얻었다. 최근 내 고향 친구 한명은 뇌졸중으로 쓰러져 한쪽 팔과 다리에 장애가 생겼다. 이처럼 우리는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
장애인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불편을 비장애인들이 온전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장애인을 ‘없는 존재’ 취급하고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짜인 사회라면 더욱 그렇다. 장애인의 삶에 대한 몰이해, ‘장애는 나와 무관한 일’이라는 편견은 배제와 차별에 대한 무감각으로 이어지기 쉽다. 장애인들의 지하철 시위에 쏟아진 ‘장애가 벼슬이냐’, ‘빨리 꺼져’ 따위의 비난과 욕설이 그 예다.
박경석 대표는 지하철에서 오체투지를 하면서 승객들에게 연신 “불편을 끼쳐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나 ‘미안한 마음’은 수십년간 불편과 고립을 감내해온 장애인들을 향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비난이 향해야 할 곳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공존을 가로막아온 국가와 사회 시스템이다.
분명한 것은 장애인이 살기 좋은 세상은 누구에게나 이롭다는 사실이다. 저상버스가 늘어나면 장애인뿐만 아니라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나 임산부, 유아차를 끄는 이들도 이용할 수 있다. 장애인만을 위한 편의시설이 아니라 ‘모두의 것’이 된다는 얘기다.
성공회대에는 ‘모두의 화장실’이라는 공간이 있다. 성별, 나이, 장애 여부, 성 정체성과 상관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다. ‘모두의 화장실’은 성소수자, 장애인 등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 ‘환대의 공간’을 상징한다. 우리 사회도 그래야 한다.
이종규 논설위원
jk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