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19명과 함께 희생된 미국 텍사스주 롭초등학교 교사들 사진이 지난달 30일 학교 입구 양쪽에 놓여 있다. 유밸디/AFP 연합뉴스
이본영ㅣ워싱턴 특파원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해지기 시작한 2020년 봄 미국 언론에서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기사를 봤다. ‘마스크를 써야 하나?’가 주제였다. 그 기사에 나오는 전문가는 써야 할 필요성이 크지 않다고 했다. 결론보다 당혹스러운 것은 그것에 이르는 논리였다. 마스크를 쓰면 주변에 바이러스를 전파할 가능성은 줄지만 상대가 퍼뜨리는 바이러스 차단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얘기였다.
이게 무슨 말인가. 마스크를 써서 다른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할 확률이 줄어든다면 당장 모두 쓰자고 해야 상식적이지 않나. 하지만 오로지 ‘나’를 기준으로 보면 다른 사람이 전파하는 바이러스를 별로 차단해주지 못하니 마스크를 굳이 쓰지 않아도 된다는 식이었다. 물론 마스크의 바이러스 차단 효과가 작다는 것도 사실과 거리가 먼 얘기이기는 하다. 아무튼 이 전문가 말이 옳다고 치자. 각자가 ‘합리적’ 선택으로 마스크를 쓰지 않고, 결과적으로 대다수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미국의 코로나19 사망자는 100만명이 넘는다. 대도시 하나가 통째로 사라진 셈이다. 세계 최강국이며 주요 코로나19 백신들을 개발한 나라에서 다른 곳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희생자가 많은 것에는 여러 설명이 가능하다. 초기 마스크가 부족했고, 마스크 착용을 적극 권장하지 않은 점도 들 수 있다. 그런 바탕에는 앞서 언급한 전문가의 시각 같은 이상한 개인주의도 자리잡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다른 걸 떠나 내가 괜찮으면 좋다는, 일반화되면 모두를 위험에 빠트리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사고방식 말이다.
이 기사가 다시 생각난 것은 대형 총기 참사에 대한 미국 우파의 대응 논리 때문이다. 지난달 뉴욕주 버펄로(10명 사망)나 텍사스주 유밸디(21명 사망) 총격 사건 범인은 둘 다 18살로 살상력이 큰 같은 모델 소총을 썼다. 총기 구매 허용 연령을 높이고 특정 소총 판매를 금지하자는 여론이 솟구쳤다. 놀라운 것은 규제 반대론자들은 이를 반박하는 것을 뛰어넘어 아예 반대로 가버렸다는 것이다. ‘총을 든 나쁜 사람을 제압하는 것은 총을 든 좋은 사람’이라며 오히려 총기 보급을 확대하자고 했다.
총을 들고 설치는 누군가와 맞서기로 결심한 상황만을 떠올리면 총을 든 게 맨손보다 나을 수 있다. 하지만 총기 보급 확대론은 사회 전체로 보면 매우 위험하다. 총기 보급을 늘리면 나쁜 사람들 손에도 그만큼 총이 많이 쥐어진다. 부주의에 의한 사고도 당연히 증가한다. 이런 주장은 사회를 ‘좋은 사람들’과 ‘나쁜 사람들’의 전쟁터로 만들자는 얘기밖에 안 된다.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총기 보급과 총기 희생자 규모는 정비례한다는 점이다. 지능이 크게 모자라지 않는 한 이를 이해하는 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총에는 총’은 굳건한 이데올로기로 살아 있다. 2020년 기준 미국의 총기 사망자는 4만5천여명이다. 한국전쟁 3년간 미군 사망자가 3만6천여명이었다. 매해 한국전쟁보다 큰 ‘내전’을 치르는 셈이다.
개인으로선 합리적 선택 같지만 공동체에 치명적인 사고방식은 미국인들에게 특유한 것일 수 있다. 자조, 자립, 프런티어 정신이 충만했던 북미대륙 정착 시기와 건국 초기 기풍이 이런 사고방식으로 이어진 것일 수 있다. 마스크와 백신 접종을 격렬히 반대하는 사람이 유독 미국에 많은 것은 공동체에 대한 책임 의식이 희박한 자유지상론의 저변이 넓음을 보여준다.
내 목숨은 내가 책임진다는 태도는 좋다. 그러나 내 목숨만 책임지면 끝이라는 생각이 만연하면 ‘사회적 살인’의 행렬이 멈추지 않는 역설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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