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학생들과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지난 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백양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연세대가 청소경비 노동자 처우 개선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세상읽기] 김만권 | 경희대 학술연구교수·정치철학자
연세대 일부 재학생들이 교내 청소·경비노동자들을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관련 노동자들은 지난 4월부터 시간당 임금 청소노동자 400원 경비노동자 440원 인상, 인원 보충, 샤워실 설치 등을 요구하며 매일 1시간가량 집회를 벌였다. 이를 두고 일부 재학생이 집회 소음 때문에 학습권을 침해당했다며 고소했다.
이 사안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개인들의 기본 권리가 충돌할 때 누구의 어떤 권리를 우선해서 보호할 것인가? 20세기 영미 정치철학사에서 개인의 권리를 강조하는 권리론자들 사이에도 유사한 맥락의 논쟁이 있었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자유주의자 존 롤스와 자유지상주의자 로버트 노직 사이의 논쟁이다.
1971년 출간된 롤스의 <정의론>은 사회적 공익이나 편의라는 명목으로 소수자의 권리를 희생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롤스가 내세운 정의의 두 원칙은 ‘사회적 경쟁에서 밀려나는 사람들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정의로운 사회라면 언제나 ‘최소수혜자’들의 이익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주장에서 확인할 수 있듯 <정의론>이 권리로 보호하고자 했던 주요 대상은 사회적 약자의 생존권이었다. 민권운동이란 시대적 맥락을 고려해보더라도 권리가 우선해서 방어하는 대상은 사회적 약자임이 분명했다.
롤스의 하버드대 동료였던 젊은 철학자 노직은 1974년 출간한 <아나키, 국가, 그리고 유토피아>에서 <정의론>의 주장을 반박했다. 노직은 자유지상주의자답게 국가란 개인들이 어쩔 수 없이 자기보호를 위해 마련한 ‘보호협회’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를 설명하는 와중에 노직은 국가의 영토 안에는 자기 자신을 지켜낼 능력이 충분해 국가의 보호가 필요하지 않은 ‘독립인’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자기방어능력이 없는 개인들을 보호하는 기구로서 국가가 온전히 작동하고자 한다면 이런 독립인들이 국가에 편입되며 감수해야 하는 불편을 먼저 보상해야 한다고 노직은 역설했다. 이런 논리는 사실상 ‘강자들의 권리를 먼저 방어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강자로서 독립인들이 감수해야 할 불편이 보상되지 않는다면 보호기구로서 국가 자체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노직의 주장에 미국 엘리트 계층이 열광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출간 이듬해 노직은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다.
이처럼 롤스와 노직의 권리론 사이에는 약자의 생존과 강자의 불편이라는 명백한 대립이 있다. 그렇다면 어느 쪽 권리를 먼저 보호해야 할까? 이에 답하기 위해 소개하고픈 또 다른 사례가 있다. 2008년 어려움에 처한 청소노동자들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맺은 학생들이 있었다. 청소노동자들이 부당한 노동을 강요당하고 있다는 사연을 들은 학생들이 노동조합을 세울 수 있도록 도운 것이다. 학생들은 다른 대학의 사례를 참조하고 외부 단체들의 도움을 받아 노동자들이 조합을 설립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탰다. 2008년 같은 연세대에서 있었던 일이다.
비록 시기는 달라도 연세대의 두 사례는 한 집단의 구성원들이 어려운 상황에 처한 구성원들을 어떻게 달리 대할 수 있는지 명백히 보여준다. 하나는 어려움에 처한 구성원들을 위해 자신의 불편을 감수하며 연대했고, 하나는 이를 견디지 못해 고소했다. 그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는 이유는 사회적 관계 맺음과 상관없이 나의 권리만이 너무 소중하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더 나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이런 태도를 취할수록 한 사회는 약자들/소수자의 생존보다 강자들/다수자의 불편이 더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모든 사람에게 권리가 있지만, 기본적 권리들이 충돌할 때 보호해야 할 우선순위가 있다. 상식적으로는 권리가 다루는 대상이 약자의 생존과 강자의 불편이라면 당연히 전자를 택할 것이다. 하지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시위를 계기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으로 변했다는 응답(35%)이 긍정적 응답(23%)보다 높다는 여론조사(한국리서치, 2022년 6월3~6일)를 보면 요즘 우리 사회는 강자/다수자의 불편에 더 가치를 두는 듯하다. 누군가는 성공을 향한 치열한 경쟁 속에 남겨진 자의 상황은 무시하는 능력주의 사회의 당연한 귀결이라 말할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밝혀두자면, 말년의 노직은 삶을 돌아보며 더는 그런 입장을 갖지 않고 있다는 기록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