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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그 댓글 창은 닫아야 했다

등록 2022-08-07 17:59수정 2022-08-08 02:41

지난 2일 오후 네이버에 등록된 <연합뉴스>의 안희정씨 출소 예고 기사에 764개의 댓글이 달렸다. 네이버 뉴스 갈무리
지난 2일 오후 네이버에 등록된 <연합뉴스>의 안희정씨 출소 예고 기사에 764개의 댓글이 달렸다. 네이버 뉴스 갈무리

[젠더 프리즘] 이정연 | 젠더팀장

충남도지사 시절 수행비서를 성폭행한 혐의 등으로 항소심에서 3년6개월 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뒤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던 안희정(58)씨가 지난 4일 오전 출소했다. 이와 관련해 전달할 사실은 여기까지다. 그가 앞으로 어디에서 머물지, 교도소 문밖에서 누구를 향해 고개 숙여 인사했는지, 어떤 개인용품을 갖고 있었는지… 안 궁금하다. 언론은 누가 묻지 않은 이런 질문에 답하는, 한 줌 사실과 온갖 추측을 더한 기사를 쓰고 쓰고 또 썼다.

지난달 28일부터였다. 그 전부터도 간간이 안씨의 출소 관련 기사가 한두 건씩 보였지만, 이날이 기점이었다. <동아일보>가 이날 ‘단독’을 달아 그가 곧 복역을 마치고 출소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출소가 당겨진 것도, 늦춰진 것도 아니었다. 그저 예정된 날에 출소한다는 소식이었다. 관계자의 입을 빌려 출소 뒤 어디에서 머물지 정도의 정보를 보탰다.

네이버에서 ‘안희정 출소’를 검색하면, 이 보도가 있고 나서 28일에만 37건의 기사가 나왔다. 8월2일 오후 3시50분에는 <연합뉴스>가 같은 소식을 전했다. 이날 37건, 다음날인 3일엔 20건의 기사가 있었다. 대동소이한 내용에, 간혹 출처와 근거가 무엇인지도 모를 추측을 보탠 기사가 나왔다. 안씨 출소 ‘예고 기사’만 94건이 있었다. 4일 언론은 폭주한다. 사진과 영상 기사를 포함해 273건의 기사가 있었다. 지지자들이 들고 있는 두부 한 모에도 눈길을 줬다. 그가 교도소 문을 나서자 ‘속보’를 달고 기사가 쏟아졌다. <한겨레>는 안씨 출소 기사를 쓰지 않았다.

언론이 호들갑을 떤 결과는 뻔했다. 댓글 창에는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가 차고 넘쳤다. 댓글 창은 성폭력에 대한 오래된 오해와 왜곡, 피해자 인신공격, 밑도 끝도 없는 정치적 음모론까지 더해진 2차 가해 집합소였다.

중요한 건, 이런 2차 가해는 언론이 막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네이버는 지난해 8월부터 ‘댓글 온·오프 기능’을 제공해 각 언론사가 개별 기사의 댓글 창을 여닫을 수 있도록 했다. 피해자의 호소, 요청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 정준영 불법촬영 피해자는 “성범죄 기사 댓글에 달린 피해자를 향한 비난, 조롱, 허위사실 유포는 명백한 2차 가해”라며 포털의 성범죄 기사 댓글 창 폐쇄를 요구했다. <한겨레>는 지난해 11월부터 2차 피해가 예상되는 기사를 선별해 댓글 창을 닫고 있다.

네이버에서 댓글 온·오프 기능이 생긴 지 1년이 됐다. 7월28일부터 8월5일까지 네이버에 등록된 381건의 ‘안희정 출소’ 관련 기사 아래 댓글 창을 모두 살폈다. 대부분의 언론사는 댓글 창에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았다. 몇몇 언론사의 댓글 창에는 “○○○ 댓글 정책에 따라 ○○○에서 제공하는 ○○섹션 기사의 본문 하단에는 댓글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떴다. 그러나 이 문구를 올려놓아도 댓글이 바로 노출되지 않을 뿐, 댓글은 달 수 있고, 누구나 볼 수 있었다. 성범죄 관련 기사에 댓글 창을 닫기로 방침을 정한 다른 언론사도 있었지만, 이번 안씨 기사의 댓글 창은 닫지 않았다.

‘댓글 오프’ 기능을 쓴 언론사는 딱 한 곳 있었다. <한국방송>(KBS)은 안희정 출소 관련 기사 댓글 창에 “케이비에스(KBS)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라는 안내 문구를 노출했다. 반갑고 씁쓸했다. 수십개 언론사 가운데 단 한 곳이라니.

“언론은 성범죄를 보도할 때 피해자와 그 가족의 인권을 존중해 보도로 인한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한국기자협회의 ‘성폭력 범죄 보도 세부 권고 기준’에 이런 내용이 있다. 기사의 댓글은 ‘보도로 인한’ 것이니 언론은 여기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당장 할 수 있는 일도 있다. 2차 가해가 판치는 그 기사의 댓글 창부터 닫자. 어렵지 않은 일이다.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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