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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에 한겨레는 무엇인가

등록 2022-08-25 17:54수정 2022-09-16 00:05

열린편집위원의 눈

다중복합적 요구 앞에서 한겨레는 힘겹다. 그러나 그것은 앞서나가는 자에게 주어지는 명예로운 징벌이다. 오랫동안 외로웠겠지만, 그러나 외로움만큼의 영예가 있다. 벗들의 가혹한 비판과 질타, 그것에는 그만큼의 열렬한 지지와 성원이 있다. 그것이야말로 한겨레의 자랑이며 긍지다.
1988년 5월15일치 한겨레 창간호 1면
1988년 5월15일치 한겨레 창간호 1면

이명재 | ​자유언론실천재단 편집기획위원

<한겨레> 열린편집위원회 회의에 참석한다는 것, 그건 나로선 두가지 질문의 시간이다. 우리에게 한겨레는 무엇인가, 동시에 한겨레에 한겨레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다.

88년 5월15일. 이 숫자가 가리킨 건 무엇이었던가. ‘언론 없는 언론’이라는 과거의 한 결산이자, ‘또 하나의 언론’이 아닌 한겨레 ‘이전’과 ‘이후’로써 분기를 삼게 될 ‘다른 언론’의 창간이자 한국 사회 ‘다른 미래’로의 한 출발이었다. 시민들이 이룩해준 진짜 언론 탄생의 새벽이 밝아오는 기쁨이었다. 한겨레 지면의 잉크는 시민들의 땀이었고, 윤전기의 굉음은 수십수백만의 맥박소리였다. 이는 어떤 비유나 수사가 아니다. 그러하다는 사실이었으며, 그것이어야 한다는 당위였다.

지난 세월, 한겨레는 후미지고 굽은 곳을 향하는 연민의 눈이었고, 말 못하는 이의 입이었으며, 듣지 못하는 이의 귀였다. 철옹 기득권을 깨는 주먹이었고 기성의 낡은 관념을 부수는 망치였다. 더 좋은 세상은 가능하다는 믿음과 희망의 집결이자 대변이었다. 우리 사회와 시대의 육신이자 무기, 그것이 되고자 했다.

한겨레는 ‘우리는 여전히 그것이며, 그것이어야 하는가’라고 묻는다. 한국 사회, 한겨레의 벗들은 ‘여전히’를 넘어 더더욱 가중 가열하게 요청하고 요구한다. 우리에겐 더 많은 한겨레, 더 큰 한겨레, 더 강한 한겨레가 필요하다고.

한쪽이 무너지면 다른 모습으로 더 강성해지는 강철동맹, 허위와 껍데기들의 창궐, 문제 해결은커녕 문제 자체인 언론. 이들 첩첩한 과제 앞에 한겨레엔 그간의 달성 이상의 과제가 주어져 있다. 우리 사회가 이뤄낸 적잖은 것들, 그 성과의 상당 부분은 한겨레가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그러나 그 성취에도 불구하고, 아니 성취만큼 더 커지는 미완과 숙제가 있다.

그간의 고투가 힘겨웠는가. 성취에 자족하는 것인가. 언젠가부터 한겨레를 응원하던 이들로부터 실망과 개탄의 소리가 나온다. 우리가 알던 한겨레는 이제 가고 없다고 말한다. 너무도 한겨레를 사랑했으나 이제 한겨레를 내팽개치고 싶다고 말한다.

한겨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의지의 최선이 바로 결과의 최선은 아니다. 한겨레의 전력은 최대한 가동되고 있는가, 증강되고 있는가. 어떤 변화와 혁신에도 불구하고 한겨레를 한겨레 되게 해주는 것, 그 본래의 것으로 보전시켜주는 그것은 살아남아 있는가. 그렇게 한겨레의 벗들은 묻는다.

과녁에 꽂히는 화살로, 첨단의 예봉으로, 노도의 포효로, 그럼으로써 한겨레가 냇물이 아닌 강물과 바다로 이 사회를 적시길 바란다. 넓은 시야를 가진 광각의 렌즈로서, 언론 다수가 말하는 사실 너머의 사실, 진실 너머의 진실을 맹렬히 추구하며, 부분에 대한 세밀함을 갖되 총체성을, 한국 사회의 현재적이며 역사적인 총체성을 꿰뚫는 형형한 눈빛을 잃지 않길 바란다.

한겨레에 지워진 짐이 무겁다. 다중복합적 요구 앞에서 한겨레는 힘겹다. 그러나 그것은 앞서나가는 자에게 주어지는 명예로운 징벌이다. 오랫동안 외로웠겠지만, 외로움만큼의 영예가 있다. 벗들의 가혹한 비판과 질타, 그것에는 그만큼의 열렬한 지지와 성원이 있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한겨레의 자랑이며 긍지다. 그에 값할 때 한겨레가 깃든 동네의 이름인 ‘공덕’(孔德)의 뜻 그대로 한겨레는 그 큰 덕으로 외롭지 않을 것이다.

‘젊은 한겨레’ 시절, 그때 한겨레와 그 벗들은 가난해도 충만했다. 가난했기에 꽉 차 있었다. 한겨레는 그 ‘가난’을 잃지 말길 바란다. 그 가난은 물질의 궁핍이나 빈곤 따위의 말로 얘기될 수 없다. 재물의 부유나 풍요 등의 말로써 그 정반대의 말로 삼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사회의 진보, 단선적 전진을 넘어선 더 넓어지고 깊어지며 높아지는 것으로서의 진보에 대한 갈구와 의지만큼 허기지게 됨으로써 얻게 되는 가난, 그 가난의 결의를 잃을 때 한겨레는 한겨레를 잃을 것이고, 우리는 진실을 잃고 진보를 잃고, 벗을 잃는다. 부디 그 가난의 의결을 잃지 말길 바란다. 34년의 충성스러운 독자이자 한겨레에서 일용할 양식을 얻어온 시민이며, 한겨레 창간이 아니었으면 기자의 경로에 들어서지 않을 수도 있었던 이의 고백이며 응원이다.

*‘열린편집위원의 눈’은 8명의 열린편집위원이 번갈아 쓰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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