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 2호선 신당역 화장실에 마련된 ‘스토킹 범죄’ 피해자 추모공간에 지난달 16일 낮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방문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젠더 프리즘] 이정연 | 젠더팀장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한달이 흘렀다. ‘○○○ 사건’이라고 이름 붙여진 여느 여성 대상 강력범죄 사건처럼, 사건 한달 뒤 풍경은 이렇다 할 변화가 없다. 대통령, 장관들, 정치인들 모두 말 한마디씩은 얹었다. 시끌벅적한 말잔치뿐이었다. 이렇게 흘려보낼 일이 아니다. 당장 다가오는 21일 법안 곳곳 크고 작은 구멍이 뚫려 누더기가 된 스토킹처벌법 시행 1년을 맞는다.
우왕좌왕할 겨를이 없다. 스토킹처벌법 시행 뒤 1년간 언론에 알려진 것만 해도 피해자 6명이 스토킹에 이은 살인으로 목숨을 잃었다. 살인미수 범죄를 포함하면 피해자 수는 10명을 훌쩍 넘는다. 단 한명의 피해자라도 덜 잃기 위해 당장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명백하다.
신당역 사건이 있고 2주 지난 뒤인 지난달 29일 오후, 대구 한 도로에서 30대 남성이 비슷한 또래 여성을 흉기로 수차례 찔러 중상을 입힌 사건이 발생했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고교 동창 사이였다. 사건이 있기 전 피의자는 피해자를 스토킹했고, 피해자는 이를 경찰에 신고하기도 했다. 경찰은 스토킹 혐의를 적용해 입건하려 했지만 멈춰야 했다.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바라지 않았다는 의사를 표시했기 때문이다.
스토킹처벌법은 피해자 의사에 반해서는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두고 있다.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처벌받지 않을 수 있으니, 가해자들은 ‘처벌불원서’를 내달라고 또 피해자를 스토킹한다. 스토킹처벌법이 부른 ‘합의 스토킹’이다. 불 보듯 뻔한 부작용이었다. “반의사불벌죄 조항은 들어가면 안 된다”는 의견은 지난해 3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전에도 여성계에서는 꾸준히 제기됐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실제 법안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스토킹처벌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기 이틀 전인 지난해 3월22일,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 회의가 열렸다. 이날 회의록에는 스토킹처벌법이 어떤 논의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지 나와 있다. “여성단체는 이 부분에 이의가 있나요?” 한 의원이 경찰청 관계자에게 물었다. 이때 ‘반의사불벌죄 조항’이 스토킹 피해자에 대한 합의 강요, 협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여성계의 주장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대신 경찰청 관계자는 “처벌불원서 써주면서 다시는 오지 말라, 이렇게 해서 약간 사적으로 해결할 필요성도 있기 때문에”라고 답했다. 이견은 삭제됐고, 짧은 논의만 있었다. 회의에서는 결국 “나중에 사회적 논란이 여러가지 새로 제기된다고 할 때 개정 논의를 하는 게 맞지 않겠나 싶습니다”라는 한 의원의 말로 정리됐다. ‘반의사불벌죄 조항’과 관련한 법안소위 회의 기록은 1122자, 한쪽에도 미치지 않는다.
이랬던 정부 관계자와 정치인들이 신당역 사건이 있고 나서 스토킹처벌법의 문제점에 관심이 쏠리자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서둘러 폐지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나마 반가운 소식인데도, 걱정이 앞선다. 구멍 하나 없앤다고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스토킹처벌법을 통한 범죄 예방은 스토킹 범죄의 재정의, 가해자 격리 조처의 강화 및 개선, 스토킹 재범 또는 위해 가능성에 대한 평가 등이 동시에 이뤄져야 가능한 일이다.
이런 일을 앞장서서 해야 할 사람은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다. 지금 이 순간 여성 대상 폭력의 예방과 피해자 보호 대책을 하루라도 빨리 마련하기 위해 가장 바삐 움직여야 할 사람이다. 그러나 신당역 사건, 인하대 사건 모두 명백한 여성 대상 폭력인데도 “남녀 프레임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여가부 장관은 다른 일에 너무 바쁘다. 김 장관은 지난 6일 정부가 여가부 폐지를 포함한 정부조직 개편안을 발표하자, 각종 텔레비전(TV)과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반복해 말한다. 여가부는 폐지돼야 한다고. 그런 그도 신당역 사건의 피해자를 추모하는 글에 “비통한 심정입니다”라고 적었다. 그 비통함을 안고 우선 할 일은 여가부 폐지 홍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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