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프리즘] 노현웅 | 법조팀장
법조출입 기자로서 수사·재판 결과를 함부로 예단하는 것만큼 무망한 짓은 없지만, 가끔 예상과 전혀 다른 결과에 놀랄 때가 있다. 얼마 전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서해 사건)으로 서욱 전 국방부 장관의 구속영장이 발부된 것이 대표적이다. 명예를 생명처럼 여기는 군 장성 출신 전 정권 장관이 “도주 우려” 등을 이유로 구속되는 일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서 전 장관은 2020년 9월 당시 군사정보통합처리체계(밈스·MIMS)에 기록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씨 피살 사건 관련 보고서 60건을 삭제하라고 지시한 혐의를 받는다. 또 이씨의 ‘월북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합동참모본부 보고서를 쓰도록 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민주주의의 보루라는 사법부 판단을 두고 정당성 여부를 따지기는 쉽지 않다. 법치주의의 원칙이 우리 사회 작동 원리라면, 그저 거쳐가야 할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남은 검찰 수사와 이어질 재판 과정에서 적용된 혐의 입증 정도와 유무죄를 가리면 족할 일이다. 다만 정교하고 세밀한 법논리의 잣대로 전 정권의 통일·외교·안보영역까지 마구 헤집는 것이 바람직한지는 좀 더 생각해볼 문제다.
이씨가 실종된 당시 우리 정보당국은 단편적인 정보들을 통해 관할권 밖인 북방한계선(NLL) 이북 해역에서 벌어진 사태를 파악하느라 혼란을 겪었을 것이다. 그 과정에 벌어진 오류를 일일이 따져 단죄하는 일이 바람직한지 의문이다. 존재 자체가 기밀인 에스아이(SI·특별취급정보) 첩보의 전파·공유를 막기 위해 내부망에서 삭제한 행위가 직권남용이라는 설명에는, 검찰 출신 법조인 가운데도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이 많다.
절제된 검찰권 행사가 이뤄지고 있는지도 살펴야 한다. 서 전 장관과 함께 구속된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검찰은 해경 관계자만 30명 넘게 조사했다고 한다. 월북 판단이 이뤄진 지시 경로와 책임 소재를 주로 따졌을 텐데, 이들이 다시 한 기관에서 유기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까. 합참 보고서 조작 의혹을 받는 서 전 장관이 구속된 이상, 그의 지시로 조작을 실행한 군 장교들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도 이어질 공산이 크다. 수사팀 주변에서는 애초부터 ‘군검찰은 왜 안 움직이느냐’는 볼멘소리가 많았다고 한다. 북한의 군사도발 수위가 날로 높아지는 가운데, 안보자산을 너무 소홀히 여긴 것은 아닌지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검찰은 4·3사건과 권위주의 정권 시대 국민을 간첩으로 몰아 처벌한 것 등에 대해 재심으로 바로잡고 있다. 서해 사건의 경우 공무원이었던 이대준씨가 월북한 것으로 됐다. 월북이라면 북한으로 경계를 넘어가는 순간 국가보안법의 탈출죄에 해당된다. 간첩죄에 해당될지도 모른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그렇게 단정적으로 (월북이라 판단) 하는 것은 유족들이나 우리 국민에게 굉장히 큰 상처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권위주의 시대 용공 조작에 빗대어, 서해 사건 역시 중대한 국가폭력이라고 강조한 셈이다.
그런데 검찰은 앞서 2014년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를 간첩으로 몰기 위해 증거를 조작한 국가정보원 대공수사팀 요원들에게 국가보안법의 무고·날조 혐의 대신 형량이 낮은 형법 조항을 적용한 바 있다. 조작된 증거를 활용해 유씨의 간첩 혐의를 입증하려 한 이시원 전 검사 등은 징계를 받는 선에서 사건이 마무리됐다. 이 전 검사는 지금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일하고 있다. ‘간첩조작 사건’이 벌어진 뒤 유우성씨의 묵은 혐의(외국환거래법 위반)를 끄집어내 보복 기소했다가 ‘공소권 남용’ 판결까지 받았던 이두봉 전 대전고검장은 윤석열 정부 첫 검찰총장 후보군으로 추천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따져보고 싶은 점이다. 검찰은 그런 엄격한 법의 잣대를 자신에게 적용하고 있다 자신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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