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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순돌이 아빠’와 수리할 권리 / 이종규

등록 2022-10-26 14:55수정 2022-10-27 02:36

1980년대 중후반 인기를 끈 <문화방송>(MBC) 드라마 <한지붕 세가족>에는 ‘순돌이 아빠’라는 캐릭터가 나온다. 만물수리점을 운영하는데, 뭐든 뚝딱뚝딱 잘 고치는 인물로 설정돼 있다. 전자기기 분해하는 걸 좋아하거나 손재주가 좋은 사람에게는 어김없이 ‘순돌이 아빠’라는 별명이 붙곤 했다.

그때만 해도 웬만한 고장은 쉽게 수리할 수 있는 전파상이나 수리점이 꽤 많았다. 집에서 손수 물건을 고쳐서 쓰는 일도 흔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물건이 고장 나면 제조사의 공식 수리센터로 들고 가는 걸 당연시하는 문화가 자리잡았다. 부품과 수리 방법 등을 제공하지 않는 대형 제조사들의 ‘수리 독점’ 탓이 크다. 수리센터에서는 ‘부품이 단종됐다’거나 ‘수리비가 더 많이 든다’는 이유로 새 제품 구매를 권하는 일도 잦다. 수리비가 적정한지 따지기도 어렵다. 업체들이 물건을 더 많이 팔려고 일부러 수리를 어렵게 한다는 ‘계획된 노후화’(planned obsolescence)란 말도 있다. 당연히 소비자의 부담이 커지고 자원 낭비와 환경 오염이 가중된다.

이에 따라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수리할 권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수리권은 제조사들이 부품과 수리 기술을 공유하도록 해 소비자가 수리 주체와 방식을 선택할 권리, 수리하기 쉽고 내구성이 좋은 제품을 사용할 권리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유럽연합(EU)은 제품 설계 단계부터 수리 가능성, 내구성, 재활용성 등을 반드시 고려하도록 한 ‘에코디자인지침’을 지난해 3월 시행했다. 프랑스는 지난해 1월1일부터 분해 용이성, 부품 공급, 매뉴얼 제공 등 다섯가지 지표로 이뤄진 ‘수리가능성지수’ 표시를 의무화하는 정책을 세계 최초로 도입했다. 미국에선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해 7월 기업이 소비자의 수리권을 제한하지 못하도록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순환경제 시대, 지속가능 제품 설계와 소비자 수리권 보장’ 포럼 자료집)

국내에선 서울환경연합이 ‘국제 수리의 날’인 지난 15일부터 수리권 보장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국회에는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지난해 11월 대표발의한 ‘수리할 권리에 관한 법률안’이 계류돼 있다. 글로벌 자가 수리 공유 커뮤니티 ‘아이픽스잇’은 일찌감치 이렇게 선언했다. “수리할 수 없다면 소유한 것이 아니다.”

이종규 논설위원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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