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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누드’의 전복과 반전 / 정혁준

등록 2022-11-13 16:12수정 2022-11-13 18:55

(여자)아이들의 신곡 ‘누드’. 김재욱 화백
(여자)아이들의 신곡 ‘누드’. 김재욱 화백

‘다이아몬드는 여자의 진짜 친구’는 영화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1955)에 나오는 노래다. 영화에서 가수 로렐라이(매릴린 먼로)가 분홍 드레스를 입고 “여자가 나이를 먹으면 남자는 차가워지지만 다이아몬드는 변하지 않는다”며 이 노래를 부른다. 로렐라이를 연기한 먼로는 오랜 시간 ‘돈만 밝히는 백치 금발 미녀’로 규정돼왔다. 하지만 ‘누군가’는 여성의 사회 진출이 제한된 당시에 여성의 가치를 젊음과 아름다움에만 두려는 남성을 돌려 비판한 노래로 해석한다.

조르주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1875)에서 주인공 카르멘은 ‘사랑은 길들지 않은 새’로 시작하는 아리아 ‘하바네라’를 부르며 유혹적으로 등장한다. 오랫동안 카르멘은 성적 매력과 미모로 주인공 호세를 비롯한 많은 남성을 유혹해 파멸로 이끄는 팜파탈의 전형으로 해석돼왔다. 하지만 ‘누군가’는 카르멘이 어떤 사람인지는 사라지고 창녀나 요부로만 보는 시각을 문제시한다. 이는 당시 오페라에서 작가, 작곡가, 극장 관계자는 남성이 대부분이었고, 카르멘은 남성이 지배하는 환경에서 만들어진 판타지였다는 비판의식이다.

2018년 10월 영국 런던의 소더비 경매장에서 ‘얼굴 없는 화가’로 유명한 뱅크시 작품 가운데 <풍선과 소녀>가 경매에 나왔다. 경매사가 100만파운드(약 16억원)에 낙찰을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리는 순간, 액자 안 그림이 산산이 조각났다. 뱅크시가 액자에 장치해 둔 파쇄기를 원격으로 작동해 그림을 파쇄한 것이다. 뱅크시의 기행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누군가’는 돈으로 미술을 구매하는 예술 시장을 정면으로 비판했다고 본다.

앞에서 나온 ‘누군가’는 걸그룹 (여자)아이들이다. 이들이 지난달 17일 선보인 미니 5집 <아이 러브>의 타이틀곡 ‘누드’는 가사와 뮤직비디오에 앞서 나온 내용을 담았다. 분홍 드레스를 입은 매릴린 먼로를 재해석하고, ‘하바네라’ 멜로디를 차용하고, 뱅크시의 <풍선과 소녀>를 분쇄한 사건을 오마주했다. ‘누드’는 꾸미지 않은 내 본모습을 누드라는 단어에 빗대, 편견과 고정관념에 맞서겠다는 의지를 담은 노래다. 이 노래의 전복과 반전 때문일까. ‘누드’는 음악 순위 프로그램과 음원 사이트에서 1, 2위 순위 경쟁을 벌일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뮤직비디오는 13일 현재 1억 조회수를 넘어섰다.

정혁준 문화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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