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말에는 시간의 흐름이 담긴다. 일이 벌어지기 전의 징조가 있고 일이 시작돼 진행되다가 이내 마무리되는 흐름. ‘의자에 앉으려고 한다’라는 말이 앉는 동작의 의도나 조짐이라면, ‘앉고 있다’는 앉는 동작을 계속하는 상황을 나타낸다. ‘앉아 있다’는 앉고 나서 그대로 있을 때 쓰겠지. 보다시피, ‘~고 있다’는 어떤 사건이 계속 이어지는 걸 표시한다. ‘울고 있다’, ‘걷고 있다’.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파악한 시간의 조각 위에 감정을 싣는 장치가 있다. 사건 위에 분노의 감정이나 빈정거림의 정서를 보탤 수 있다. 대표적으로 ‘~고 자빠졌다’. 눈앞에 벌어지는 일을 꼴사납다는 시선으로 지켜본다. 아무래도 앞으로 엎어지는 것보다 뒤로 자빠지는 게 더 아프겠지. 어느 시인은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다’는 비아냥에 ‘나는 계속 꿈꾸는 소리나 하다/ 저 거리에서 자빠지겠다’고 받아쳤다지(송경동). ‘놀고 엎드렸네, 놀고 누웠네’라 하면 말맛이 안 산다. ‘자빠졌네’야말로 분노의 질감을 온전히 담는다. ‘있다’와 ‘자빠졌다’ 사이에 ‘~고 앉았다’가 있지만 ‘자빠졌다’에 비하면 새 발의 피.
무미건조하게 살던 나의 평생소원은 사람들을 제대로 웃기는 일이었다. 박장대소. 너무 웃겨 사람들이 웃다가 뒤로 자빠지는 걸 보는 거였다. 하지만 웃기려는 시도는 쉽게 비웃음을 산다. ‘걔, 웃긴 애야’라 하면 실없고 한심한 사람이 된다. ‘웃기고 자빠졌네’에 비하면, ‘웃기고 있네’는 예의 바르다고 해야 하나. 권력집단이 참사 앞에서 하는 짓을 보면 ‘웃기고 자빠졌다’는 말도 아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