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 핵심협약 ‘장롱 면허’ 아니다. 김재욱 화백
유엔 산하 국제기구 가운데 한국 언론에 가장 빈번하게 오르내리는 곳을 꼽는다면 아마도 국제노동기구(ILO)가 1, 2위를 다툴 듯하다.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이 올해 초 이 기구의 사무총장 선거에 나섰다가 낙선하기도 했다.
국제노동기구 하면 떠오르는 것이 ‘협약’, ‘비준’과 같은 용어다. 국제노동기구 협약은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마련한 국제노동기준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 살더라도 이 정도의 노동권은 보장받아야 한다는 ‘보편 규범’이라 할 수 있다.
국제노동기구가 만든 협약은 모두 190개(2020년 6월 기준)에 이른다. 국제노동기구는 이 가운데 사업장의 기본적인 원칙과 권리에 관한 협약들을 ‘핵심협약’으로 지정해 각국의 비준 및 준수 실태를 특별히 관리한다. 결사의 자유, 강제노동 금지, 아동노동 금지, 차별 금지 등 4개 분야, 8개 협약으로 이뤄져 있다. 한 분야에 각각 2개씩이다.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제87호), 단결권 및 단체교섭(제98호), 강제노동(제29호), 강제노동 철폐(제105호), 최저연령(제138호), 가혹한 형태의 아동노동 철폐(제182호), 동등보수(제100호), 고용과 직업상 차별(제111호) 등의 협약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8개 핵심협약 비준을 완료하지 않은 나라는 한국 등 5개국뿐이다.(국회입법조사처, ‘ILO 핵심협약의 비준 현황과 과제’ 보고서)
한국은 1991년 국제노동기구의 152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한 이래 2000년대 초반까지 차별, 아동노동 분야 핵심협약 4개를 차례로 비준했다. 그러나 결사의 자유, 강제노동 분야는 20여년이 지난 2021년 초가 돼서야 4개 협약 중 제105호를 뺀 3개의 비준동의안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비준을 차일피일 미루는 사이, 2018년 유럽연합(EU)이 한국과 맺은 자유무역협정(FTA)의 ‘핵심협약 비준 의무’ 조항을 근거로 무역분쟁 해결 절차를 개시하는 등 국제사회로부터 지속적인 압박을 받아왔다.
국제노동기구가 최근 화물연대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이 핵심협약 제87호와 제98호가 보장한 ‘결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입장을 담은 공문을 한국 정부에 보냈다. 협약 비준국으로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인데, 정부는 당당하기만 하다.
이종규 논설위원
jk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