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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윤’과 ‘굥’…서울교통‘굥’사 소동 [유레카]

등록 2023-01-08 15:15수정 2023-01-08 18:51

유교문화권에서는 어른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는다. 옛날엔 성인이 되면 ‘자’를 지어 부르게 했고, 지인들이 ‘아호’를 지어줬다. 부모의 이름이 홍길동이면 ‘홍, 길자, 동자’라고 했다. 이렇게 입에 올리기를 꺼리는 것을 ‘피휘’라 한다. 조상의 이름을 피하는 가휘, 임금의 이름을 피하는 국휘, 성인인 공자의 이름(구)을 피하는 성휘, 원수지간인 사람의 이름을 피하는 원휘가 있다. 중국 주나라 때 시작된 이 관습은 신라 말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퍼졌다.

피휘 방식은 해당 글자가 들어갈 자리를 비우거나 삭제한다. 다른 글자로 바꾸기도 한다. 관세음보살이 관음보살이 된 것은 당나라 태종 이세민의 세를 빼고 쓰다 굳은 것이다. 대구의 구는 원래는 ‘언덕 구’(丘)인데, 성휘를 하느라 조선 말에 대구(大邱)가 됐다. 고려 때 관직 이름이나 사람의 성을 고치라고 명하는 일이 많았다. 현종은 이름이 순(詢)이었는데 같은 발음의 순(筍)씨를 손(孫)씨로 고치라 했다. 임금이 자주 바뀔수록 신하와 백성의 고충이 컸다. 피휘의 번거로움을 고려해 조선의 왕과 왕자들은 이름을 가급적 외자로, 그것도 잘 쓰지 않는 한자로 지었다. 영조는 40년간 ‘금’이라는 이름을 숨겼고, 정조는 산(祘)을 ‘셩’이라 읽게 했다.

민국 시대에 들어서 대통령 이름자를 피휘하는 일은 없어졌다. 그래도 이승만 대통령을 ‘이 박사’로 부르고, 김대중 대통령을 디제이(DJ), 김영삼 대통령을 와이에스(YS)라는 영문 이니셜로 부른 것은 그 흔적일 것이다. 다른 대통령들은 성씨에 통자를 붙여 그저 ‘○통’이라고 부르는 일이 많았다. 이명박 대통령 이후부터는 정치적 반대자들이 비난과 조롱을 섞은 별칭으로 더 흔히 불렀다.

문재인 대통령 때는 정치적 반대자들이 ‘문’자를 뒤집은 ‘곰’자를 별칭으로 썼다. 그러더니 윤석열 대통령 시대엔 윤자를 뒤집어 ‘굥’이라 쓴다. ‘공정’을 비꼬아 ‘굥정’이라 하기도 한다. ‘원휘’를 생각나게 하는 행동이다. 지난 3일 한국방송(KBS)이 서울교통공사를 서울교통‘굥’사라고 잘못 쓴 자막을 내보냈다. 이에 여당 지지자들이 발끈하고 나섰다. 한 국회의원은 이 자막을 캡처한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리고 ‘어쩌다 이런 일이!’라고 썼다. 우리 편 대통령에게 부정적인 호칭을 꺼리는 피휘가 새로 생겨난 것 같다.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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