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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윤 대통령, 성급한 방일·방미 꿈 깨야하는 이유 [아침햇발]

등록 2023-01-24 10:19수정 2023-01-25 02:21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3일 백악관을 방문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오벌 오피스로 안내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3일 백악관을 방문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오벌 오피스로 안내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박민희 | 논설위원

# 2010년 일본은 중국에 무릎 꿇었다. 그해 2월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9월 동중국해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 주변에서 일본 해상보안청이 순시선과 충돌한 중국 어선 선장을 체포했다. 중국은 보복으로 일본인 4명을 간첩죄로 체포했고, 중일 총리회담을 취소했으며, 일본에 대한 희토류 수출을 막았다. 첨단 전자제품 생산에 필수적인 희토류의 90%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던 일본은 며칠 버티지 못하고 중국인 선장을 석방했다. 2012년에는 일본 정부의 ‘센카쿠 국유화’에 반발해 중국 내에서 연일 대규모 반일 시위와 불매운동이 벌어졌다. 중국의 강경 외교는 당시 일본을 이끌던 민주당 정부가 지향하던 ‘미국으로부터 독립적인 외교·아시아 공동체’의 가능성을 침몰시켜버렸다. 중국은 아시아 국가들과의 평등한 관계보다는 ‘중화주의’의 위계적 질서를 선택했다. 군사력을 대폭 강화하고, 남중국해·동중국해·대만해협에서 힘을 과시하며 아시아 패권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 ‘아시아 공동체’로 향하는 길이 끊긴 일본에 2012년 아베 총리가 돌아왔다. 중국의 세력 확장을 견제하기 위해,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 주요 국가들과 일본을 연결하는 겹겹의 안보 네트워크를 만들기 시작했다. ‘인도·태평양 전략’이다. 2015년 자위대가 세계 어디서든 미국과 함께 군사작전을 할 수 있도록 헌법 해석을 바꿨다. 아베는 암살당했지만, 지난달 일본 정부는 3대 안보문서를 개정해 공격이 임박했다고 판단하면 선제적으로 적 기지를 타격할 수 있는 능력(‘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5년 동안 방위비를 2배로 늘리기로 확정했다. 평화헌법을 사실상 사문화시킨 군사 강국 일본의 재등장이다. 지난 13일 미일 정상회담에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일본의 군사력 강화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미국 단독으로는 중국의 도전을 견제하는 데 힘이 부치는 상황, ‘군사강국’ 일본과 손잡고 반도체·우주·원자력·에너지 분야 등에서도 전방위로 협력하기로 했다.

중국의 패권 추구, 북한 핵 위협,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도전에 대응하면서 일본 외교는 꾸준히 전략적 승리를 확보했다. 미일동맹에서 일본의 위상이 높아졌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인도, 호주 등과 일본이 주도하는 안보 네트워크를 만들었고, 영일동맹도 다시 맺었다. 제국들이 부활하는 시대에 일본은 주요 ‘열강’의 자리를 선점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과의 경제 관계도 흔들리지 않았다.

# 이 시기 동안 한국의 전략은 무엇이었나. 극과 극을 오갔다. 박근혜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나란히 천안문 망루에 올랐지만 중국이 북핵 문제 해결을 도와주지 않자 사드 배치와 한일 위안부 합의로 질주했다. 문재인 정부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움직이고 남북관계를 강화해 상황을 돌파하려 했지만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나면서 좌절했다. 한반도 미래·한일 과거사 문제에서 ‘아베 노선’과 충돌했고, 일본의 수출규제와 ‘지소미아(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를 거치며 한일 갈등은 더욱 깊어졌다.

한일관계를 신속하게 개선하고 한미일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외쳐온 윤석열 대통령은 이르면 다음달 강제동원 해법 ‘최종안’을 발표하고 2~3월에 일본과 미국을 잇따라 방문하는 일정을 추진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가 하지 못한’ 한일관계 개선을 해내고 한미일 협력으로 안보를 강화하는 ‘업적’을 도쿄와 워싱턴에서 지지층을 향해 과시하고 싶을 것이다.

중국이 제대로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패권을 추구하고, 미-중 갈등을 기회로 여긴 북한이 핵 위협을 본격화하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전쟁 없는 시대’는 막을 내렸다. 각국은 극히 이기적인 국익 게임을 벌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핵무장론에 빠지지 않고 안보 상황을 개선하려면 한미일 협력은 필요하다. 동시에 한국이 이를 활용해 장기·단기적으로 무엇을 추구할지 명확한 전략이 있어야 한다. 중국이 ‘북한 비핵화’의 목표로 되돌아오고 대만해협에서 전쟁이 벌어지지 않도록 ‘지렛대’로 삼아야 하고, 일본의 재무장이 위험한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한미일의 틀안에서 한국의 발언권을 강화해야 한다. 한국은 동아시아의 안보·경제에서 중요한 키를 쥔 국가다. 한국이 미일동맹의 종속변수가 되지 않도록 평등한 관계를 요구하면서, 급변하는 첨단기술, 경제 질서에서 한국의 자리를 확보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지나치게 조급하게 미·일만 바라보며 달려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과 일본을 상대로 과거사 문제 등에 대한 한국의 입장을 치열하게 요구해 왔는가. 대통령이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여론을 설득하기 위해 진심어린 노력을 했는가. 일본은 미국과 단단히 손을 잡고 판을 짜놓았으니, 조급한 한국에 양보를 할 필요가 없는 느긋한 상황이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와 가해 기업의 배상 참여에 대해 일본은 여전히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2년 일본과 지소미아 체결을 추진하다 여론이 악화하자 서명 50분을 남겨두고 취소하더니, 그해 8월 반일로 지지율을 높이려고 독도를 방문하고 ‘천황 사과’를 요구해 한일관계를 수렁으로 몰아넣었다. 윤 대통령이 경계해야 할 반면교사다.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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