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9일 서울 마포구 관내 구립 ‘작은도서관’ 이용 주민 등 ‘책과 마포구 도서관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 회원들이 마포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작은도서관 말살정책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마포구가 구립 작은도서관을 독서실화하려던 게 발단이 되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삶의 창] 정대건 | 소설가·영화감독
얼마 전
‘서울시, 작은도서관 예산 없앴다…예고 없이 “지원 끝”’이라는 기사에 에스엔에스(SNS)가 시끌시끌하고 많은 이들이 분노했다. 도서관을 애용하는 사람으로서 나 또한 기사를 눈여겨봤다. 나는 평소 생활하면서 도서관의 혜택을 많이 받아왔다. 오래 준비하던 일이 잘 풀리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을 때가 있었다. 집안은 고립된 동굴처럼 느껴졌고, 집밖으로 나가면 뭘 하건 간에 비용이 들었는데 그게 부담이었다. 그러다 도서관을 찾아갔다. 공공도서관은 이용자에게 돈을 요구하지도 자격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책으로 둘러싸인 도서관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부자라도 된 것처럼 든든했다.
소음 가득한 도시에는 사유하기에 적합한 공간이 부족하다. 카페는 사람들의 수다 소리와 음악 소리가 가득하다. 기본적으로 정숙해야 하는 도서관은 사유하기에 적합한 공간이다. 책장을 가득 채운 책들에는 이미 세상을 살다 간 사람들의 지식과 지혜가 응축돼 있다. 다른 작가들의 책을 읽으면서 나도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고, 현수막에 적혀 있던 ‘다독다독(多讀多讀) 내 꿈을 응원해주는 도서관’이라는 문구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용기를 줬다. 그런 도서관은 내게 최후의 보루이자, 사회적 안전망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서울시가 작은도서관 예산을 없앤 것을 두고 어린이와작은도서관협회 이은주 상임이사는 “결국 책 읽고 사고하는 시민들을 없애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책 읽는 인구가 적어지고 활자 매체는 점점 읽는 사람만 읽는 세상이 온 것 같다. 모든 것은 활자보다 영상으로, 긴 것보다 짧은 것으로 대체되고 있다. 최근에 어떤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 배우가 수상 소감에서 ‘사유하다’라고 말한 것을 가지고 어려운 단어를 사용했다고 지적하는 장면이 나왔다. 웃자고 만든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연예인들이 정말 그 단어를 어려워해서 그 장면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사유하다’라는 단어가 어렵다고 표현해야 하는 것도, 문해력 논란이 생기는 것도 요즘 다들 책을 읽지 않아서라고 생각한다.
서울시는 예산 삭감 이유로 이용객 수 감소를 들었다. 운영비 지원이 사업 활성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최근 5년간 작은도서관 1관당 일평균 방문자 수는 8.5명에서 5명으로 감소했다. 1관당 일평균 대출도서 수는 5.5권에서 6권으로 제자리걸음이다.’ 발표된 숫자를 보니 일견 적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다. 기시감이 일었다. 수치화된 취업률을 성과로 논하며 순수학문과 인문계 학과들을 없애는 대학의 풍경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 적은 숫자에 개인을 대입하면 다르게 느껴진다. 작은도서관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성인에게도 필요하다. 내게도 작은도서관을 이용한 기억이 있다. 읽고 싶은 책이 여러권 있었는데 지역 도서관은 모두 대출 중이었다. 책 몇권을 사는 것도 부담으로 느껴졌던 때였던지라 버스를 타고 작은도서관까지 가서 책을 빌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작은도서관의 대여율은 다른 도서관들보다 낮아 읽고 싶은 책들이 많이 있었고, 책을 잔뜩 빌려서 들고 왔다. 가진 게 없어도 책은 읽을 수 있겠다는 든든한 마음이 차올랐다.
작은도서관 예산삭감 뉴스가 보도되고 반대여론에 크게 이슈화하자, 관련 후속 조치와 보도들이 이어졌다. 시는 뒤늦게 부랴부랴 추경 예산을 편성해 현행 사업방식을 개선하고 실질적인 지원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고 한다. 시민들이 독립 예술영화에 친숙해지기 위해서는 접근성 좋은 극장이 필요하듯이, 책도 시민들이 곁에서 친숙하게 접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공공도서관이 경제적 효용과 상관없이 우리의 곁에 있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