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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대통령의 ‘만기친람’에 짙은 안개 낀 경제정책 [아침햇발]

등록 2023-02-05 15:57수정 2023-02-06 02:40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부동산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부동산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남구 | 논설위원

‘만기친람’(萬機親覽)이란 말이 있다. 임금이 모든 정무를 직접 챙기는 것을 말한다. 중국 진나라의 시황제, 유비가 죽고 난 뒤 유선의 섭정을 하던 촉한의 승상 제갈량, 조선의 세종과 정조 임금 등이 그랬다. 조선 순조 때 펴낸 <만기요람>이란 책은 만기를 ‘재용’과 ‘군정’ 2편으로 나눠 서술했는데, 재용편에 더 무게를 뒀다. 만기의 핵심이 나라살림을 꾸려가는 일임을 보여준다.

윤석열 대통령은 ‘만기친람’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적이 있다. 후보 시절인 2021년 10월20일 사회관계망서비스에 “대통령이 만기친람해서 모든 걸 좌지우지하지 않고 각 분야의 뛰어난 인재들이 능력과 기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국정을 시스템적으로 운영하겠다”는 글을 올렸다. 전날 “전두환 대통령이 군사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가 논란이 일자 해명하는 글이었다.

그런데 대통령에 취임한 지 9개월 가까이 된 지금, 윤석열 정부의 의사결정을 보면 ‘대통령의 만기친람’에 가까워 보인다. ‘전권 위임’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복잡하기 짝이 없는 나라살림 운영도 예외가 아니다. 평생 검사로 일해온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평생 경제관료로 일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존재감을 잃는 일이 잇따라 일어나고 있다.

국회에서 세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추 부총리가 반도체 세제 지원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기자간담회를 한 지 사흘 만에 대통령은 “세제 지원을 추가 확대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달라”고 지시했다. 기획재정부는 나흘 뒤인 1월3일 ‘반도체 세제 지원 강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최근에는 난방비 지원을 두고 대통령실이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난방비 급등으로 여론이 들끓자, 1월9일 동절기 에너지바우처의 가구당 평균 지원단가를 14만5천원에서 15만2천원으로 7천원 올렸다. 지난해 두차례 올렸고, 세번째 인상이었다. 그런데 대통령실은 1월26일 동절기 에너지바우처 단가를 1월9일 올린 것의 갑절로 올린다고 전격 발표했다. 에너지 취약계층 지원을 늘린 것은 잘한 일이라 본다. 하지만, 이로써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은 더욱 예측하기 어려워졌다.

우리 경제에 큰 짐이 되고 있는 게 원유, 천연가스 등 국제 에너지 가격의 급등이다. 에너지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애써 번 돈이 외국으로 빠져나간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국내 물가를 끌어올려 가계 실질소득을 줄이고, 금리를 끌어올려 가처분소득을 줄인다. 내수 소비도 위축시킨다. 가계는 자동차 연료비, 전기요금, 난방비(주로 도시가스와 등유) 부담의 급증에서 이를 체감한다.

자동차 연료비는 유류세를 큰 폭으로 내리는 감세로 대응하고 있는데, 전기요금과 난방비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서 윤석열 정부는 일정한 패턴을 보여준다. 첫째, 전 정권 탓을 하며, 마치 안 올릴 것처럼 얘기한다. 대통령 선거 때 그랬다. 둘째, 조금씩 올리며 전 정권 탓을 이어간다. 셋째, 지원책을 내놓으며 또 전 정권 탓을 한다. 지금은 세번째 단계다. 문제는 현재 국내 가격이 국제 연료가격 상승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있어, 앞으로 적잖이 올리지 않고 배겨낼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3대 에너지원인 원유·가스·석탄 수입액은 1908억달러로 전체 수입액의 26.1%에 이르렀고, 전년 대비 784억달러가 늘었다. 작년 평균 환율(달러당 1292원)로 계산해 101조원이다. 그 부담을 어떻게 나눠 질 것인지 설계하는 것이 정책이요, 그렇게 하자고 경제주체들을 설득해내는 것이 정치다. 정부의 세금, 공기업의 손실로 다 감당할 수는 없다. 에너지 소비를 줄이도록 유도해 국민경제가 입는 타격을 줄이고, 기업과 가계 등 경제주체들이 공평하게 부담을 나눠 질 수 있는 방안을 내고, 국회에서 논의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정치인데, 우리나라에선 실종돼버렸다. 정부·여당의 쉼 없는 ‘전 정권 탓’과 대통령의 ‘용단’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인상 요인이 많이 누적돼 있는 전기요금, 도시가스 요금을 정부가 어찌 다룰지 도무지 예측하기 어렵다. 큰 폭의 감세를 단행하면서 재정건전성을 내세운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안을 짜겠다’고 뻔뻔하게 나오는 일도 배제 못 한다. 많은 것이 ‘불확실성’이라는 짙은 안개에 휩싸여가고 있다.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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