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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눈 떠보니 후진국 5…윤 대통령 ‘철 지난 신자유주의’ 타령

등록 2023-02-23 12:14수정 2023-02-24 11:09

[아침햇발]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건설현장의 갈취, 폭력 등 조직적 불법 행위에 대해 검찰, 경찰, 국토교통부, 고용노동부가 협력해 강력하게 단속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건설현장의 갈취, 폭력 등 조직적 불법 행위에 대해 검찰, 경찰, 국토교통부, 고용노동부가 협력해 강력하게 단속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실 제공

박현 ㅣ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은 젊은 시절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책 <선택할 자유>를 감명 깊게 읽었다고 한다. 프리드먼은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거두로 감세와 탈규제 등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의 보수적 경제정책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이 책은 프리드먼이 정부의 개입을 줄이고 시장 자유를 확대하는 내용의 신자유주의 교리를 10회에 걸쳐 방영했던 티브이(TV) 시리즈를 묶어 1980년 펴낸 것이다. 윤 대통령이 2019년 검찰총장 인준청문회 때 자신의 가치관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으로 꼽기도 했다.

그는 2021년 3월 검찰총장을 퇴임했는데, 퇴임 뒤 사석에서 만난 한 지인은 윤 대통령이 이 책에 대해 많은 얘기를 했다고 기억했다. 대통령 취임사와 그 이후 각종 연설에서 단골로 강조하는 ‘자유’가 괜히 나온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자유를 강조하는 걸 탓할 일은 아니다. 다만 이것이 국민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부의 각종 정책에 반영된다면 사정이 다르다. 과연 누구를 위한 자유인지 구체적으로 따져봐야 하는 이유다.

현 정부가 지난해 내놓은 감세와 최근 몰아붙이고 있는 이른바 ‘노동개혁’ 정책이 대표적인 사례다. 두 정책은 <선택할 자유>에도 자세하게 소개돼 있다. 이 정책들이 내건 취지처럼 경제를 활성화하고, 노동 약자들의 삶을 개선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책 설계가 잘못돼 있다면 되레 커다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실제로 감세는 주로 대기업·자산가에 그 혜택이 돌아가도록 설계돼 있다. 감세가 일정 조건에서는 투자 유인으로 경제 활성화 효과를 낼 수 있으나 지금처럼 대내외 경제환경이 극도로 불안한 시기엔 투자의 마중물 구실을 하기가 어렵다. 대규모 감세를 단행했던 레이건과 부시 행정부 시절 미국은 물론이고 이명박 정부에서도 그런 효과는 별로 내지 못하고 불평등 심화의 요인이 됐다.

고물가·고금리의 여파로 올해 경기침체가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선 재정 여력을 최대한 아끼고, 경기침체에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심하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서민층에 대한 지원을 늘리는 게 올바른 처방인데도 정부는 지난해 부자 감세를 밀어붙였다. 대선 공약을 이행해 지지층에 보답하려는 뜻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잘못된 판단의 피해가 나타나는 데는 시일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올 초부터 난방비가 폭등하고 공공요금이 들썩이며 서민층과 영세사업자들이 아우성을 치는데도 정부 대책은 너무나 빈약했다. 재정이 부족한 탓이다. 최근 내놓은 민생대책에선 은행과 통신사 등 민간을 쥐어짜 내기에 바빴다. 보수적 경제신문들마저 과도한 시장 개입을 우려할 정도다.

노동개혁은 사실상 ‘반노조’ 정책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다. 이런 강경한 ‘노조 때리기’ 정책이 왜 나왔는지 정확히 알 길은 없다. 다만 <선택할 자유>가 의사협회와 같은 고소득 전문직의 이익집단 사례를 들며 노조의 성격을 설명하는 데서 추론을 해볼 수는 있다. 현실을 극도로 추상화해 사고하는 경제학자의 속성상 고소득을 올리는 의사와 날마다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노동자들 처지의 차이는 온데간데없고 그냥 똑같은 이익집단으로만 바라보는 것이다. 노조를 ‘지대 추구’ 집단으로 보는 윤 대통령의 인식도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대통령이 건설노조에 대해 ‘조폭’에 빗대어 ‘건폭’이라는 용어까지 사용하며 강력한 단속에 나설 것임을 천명했다.

마치 1980년대 초반 ‘정의사회 구현’을 국정목표로 사회악을 일소하겠다며 사회정화 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친 전두환 정권을 떠올리게 한다. 총칼로 정권을 탈취한 군인들이 집권 정당성을 얻고자 사회정화 운동을 벌인 것과 그 대상과 방식은 다르지만 본질은 유사하다. 무너져내리고 있는 민생을 추스를 역량이 한계에 다다른 검찰 정권이 추락하는 지지율을 올리기 위한 측면이 강해 보인다.

윤 대통령이 무슨 사사로운 이익을 취하려고 이런 정책을 펴는 것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 정책이 지금의 현실에 맞지 않는다면 어디에 잘못이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선택할 자유’식 신자유주의 처방은 미국에서도 한물간 지 오래다.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인해 케인스적 처방이 한계를 드러낸 것을 계기로 신자유주의는 1980~90년대 서구 사회에서 득세했다.

그러나 전방위적인 규제완화의 대가는 혹독했다. 금융규제 완화로 신종 금융기법이라는 미명 아래 대출이 마구 풀리며 부동산 버블(거품)을 초래했다. 부동산 버블 붕괴가 조밀하게 얽혀 있는 금융시스템까지 파괴한 결과가 바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신자유주의 모델을 적용해 한계가 드러난 일대 사건이었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 사회에선 이를 계기로 금융규제 강화로 방향을 틀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정반대 현상이 벌어졌다. 2014년 박근혜 정부의 ‘빚내서 집 사라’ 정책이 대표적이다. 주택담보대출은 말할 것도 없고, 전세자금대출도 대폭 완화해 투기세력 ‘갭투기’의 먹잇감을 만들어 줬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를 제어하는 데 실패했다. 지금 나타나는 전세사기 피해의 뿌리는 거기에서부터 잉태됐다.

최근 현 정부는 은행 과점체제 해소를 얘기하고 있다. “은행은 공공재”라는 윤 대통령의 발언 취지는 이해가 간다. 그러나 은행의 탐욕을 제어한다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언급했다는 ‘완전 경쟁’식으로 가자는 건 금융업 현실을 너무도 모르는 발상이다. 은행은 마치 인체의 피를 나르는 혈맥처럼 경제시스템의 핵심이어서 리스크 규제가 불가피한 업이다.

은행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이나 불공정 행위는 금융감독 강화로 풀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경쟁을 촉진하겠다는 명분 아래 규제를 대거 풀면 시장은 더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은행 과점체제 개선은 전형적인 금융정책으로, 금융위원회 소관 사항이다. 그런데 금융감독 업무를 맡는 이 원장이 앞장서는 건 월권에 가깝다. 금융정책마저 검사 출신이 쥐락펴락하려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

경제·사회·금융정책은 국민들의 삶에 직결된다. 한편으론 시장 자유를 외치면서 다른 한편에선 정부가 과도하게, 그것도 잘못된 접근법으로 시장에 개입하면 큰 화를 초래한다. 검찰 출신의 정권 핵심부가 추진하는 일이라 견제하는 이도 눈에 보이지 않아 더 위험하다.

윤 대통령은 지난 15일 비상경제민생회의 모두발언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부의 정책이 과학이 아닌 이념과 포퓰리즘에 기반하면 국민이 고통받는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문장의 주어는 기자들에게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윤 대통령이야말로 1980년대식 신자유주의 이념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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