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자강론자들은 한국의 핵무장이 중국을 견제하는 효과도 있기에 미국이 크게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심각한 오판이다. 워싱턴에는 한-미 동맹 옹호 세력보다 핵 비확산 세력이 훨씬 막강하며 핵무기를 보유한 한국이 미국에 순종적일 것으로 믿는 이들 또한 극히 드물다.
지난달 11일 윤석열 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3년 외교부·국방부 업무보고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문정인 | 연세대 명예교수
지난 1월 윤석열 대통령의 ‘자체 핵 보유’ 가능성 발언 이후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에 관한 논의가 불붙고 있다. 1월30일 최종현학술원이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천명 가운데 76.6%가 한국의 독자 핵 개발 필요성에 동의했다. 2월15일 국회에서는 국민의힘 최재형 의원실과 동북아외교안보포럼이 공동 주최한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과 한미동맹 강화’라는 공개토론회가 열리기도 했다. 1970년대 이후 터부시돼온 한국의 핵무장 논의가 깨져나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핵무기 보유의 가장 큰 명분은 국가안보다. 국가안보의 목표는 국가의 생존, 번영, 국격을 보장하는 데 있다. 그러나 핵 자강의 길은 국가의 생존을 더욱 위태롭게 하고, 번영을 위협할 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크게 훼손하는 역설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하나하나 따져보자.
핵 자강은 미국의 확장억제를 신뢰하기 어렵고 “북핵에는 남핵”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논리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그 선택은 이익보다 손실이 크다. 북의 핵 무력을 강화해 한반도 핵 군비경쟁을 심화할 뿐 아니라 오인, 오산, 오류에 의한 핵전쟁 가능성을 고조시키기 때문이다. 또 중국과 러시아 극동의 핵전력 증강과 견제를 초래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은 더욱 첨예해질 것이다. 한국을 견제하기 위한 일본의 핵무장 움직임은 한반도를 동북아 핵 도미노의 중심에 서게 할 수 있다.
가장 큰 위험은 한-미 동맹의 파국 가능성이다. 핵 자강론자들은 한국의 독자 핵무장이 중국을 견제하는 효과도 있기에 미국이 크게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심각한 오판이다. 워싱턴에는 한-미 동맹 옹호 세력보다는 핵 비확산 세력의 영향력이 훨씬 막강하며 핵무기를 보유한 한국이 과거처럼 미국에 순종적일 것으로 믿는 이들 또한 극히 드물다. 따라서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이 한-미 동맹을 강화해줄 수 있다는 희망적 기대는 허구에 가깝다. 핵 자강에 수반되는 한-미 동맹 균열과 동북아 위협 환경의 악화는 우리에게 최악의 안보 시나리오다.
핵 자강론자들은 흔히 인도와 파키스탄의 사례를 들면서 핵무장을 하더라도 국제사회의 제재 압박을 견딜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또한 과도한 아전인수다. 한국의 농축이나 재처리 행위가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과정에서 발각되는 순간 국제원자력기구는 바로 한국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해 각종 제재를 논의하게 된다. 2004년 한국의 일부 원자력 과학자들이 0.2g이라는 소량의 우라늄을 실험 삼아 비밀 농축한 후과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우리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미국, 영국 같은 동맹 우호국이 제재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던가. 그에 더해 미국, 일본, 유럽연합(EU)의 독자 제재, 특히 미국의 금융제재는 수출 중심 구조인 한국 경제를 순식간에 초토화할 수 있다. 오랜 기간 수입 대체 전략을 추구했던 인도나 파키스탄과는 그 충격의 수위가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가장 확실한 결과 중 하나는 한국의 원자력 산업이 회복 불능의 타격을 입게 되리라는 점이다. 인도나 파키스탄과 달리 한국의 원자력 산업은 전적으로 미국에 의존해왔다. 한국은 1954년 제정된 미 원자력법 123조에 의거해 미국이 이전한 핵물질, 기자재, 기술을 핵무기 개발 등 군사적으로 전용하는 일이 금지돼 있고, 이를 위반하거나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 규정을 어길 경우 이전물을 즉각 미국에 반환하게 돼 있다. 더불어 원자력공급그룹(NSG)은 한국에 원료 공급을 중단하게 된다. 한국이 은밀하게 핵무기 개발 사업을 추진하면 원자력 산업의 마비는 물론 평화적 이용 목적의 원자로 수출도 불가능해진다.
핵 자강의 길은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전제하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국격 또한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 가운데 최초로 엔피티를 탈퇴한 나라가 되면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이후 한국이 누려왔던 국제 무대에서의 대북 도덕적 우위는 사라질 것이고, 대신 엔피티 국제 질서를 파괴한 불량국가라는 오명을 피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다수의 핵 자강론자들이 독자 핵무장이 아니면 무기력한 굴종만이 우리에게 남은 갈래길인 것처럼 말하지만 그 선택이 우리의 생존, 번영, 국격에 미치는 영향은 치명적이다. 워싱턴이 그 어느 때보다 동아시아의 전략적 가치를 중시하고 있고 확장억제 제공을 거듭 확인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한-미 연합전력구조 또한 건재하다. 대화와 협상을 통한 외교적 타결의 길도 아직 남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왜 핵 자강이라는 자충수를 고집하는지 사뭇 이해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