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인공지능은 알고 양당은 모르는 것 [이진순 칼럼]

등록 2023-02-28 18:22수정 2023-03-01 02:35

정부·여당과 야당이 지금 벌이는 전쟁은 투명망토의 원리와 같다. 나의 허물을 네 허물의 반사광으로 가리기. 대한민국이란 자동차가 세계적인 경제위기, 안보위기의 폭풍 속으로 진입하는데 오른쪽 왼쪽 사이드미러가 후방의 민생은 비추지 않고 서로를 역반사하며 거울 속의 거울로 시야를 가둔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건설현장의 갈취, 폭력 등 조직적 불법 행위에 대해 검찰, 경찰, 국토교통부, 고용노동부가 협력해 강력하게 단속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건설현장의 갈취, 폭력 등 조직적 불법 행위에 대해 검찰, 경찰, 국토교통부, 고용노동부가 협력해 강력하게 단속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실 제공

이진순 | 재단법인 와글 이사장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번이지, 한 말 또 하고 또 하는 정치칼럼은 고역이다. 수년 전 이미 한 말을 레코드판처럼 반복해야 할까? 존경하는 선배 한분은 기고하던 칼럼을 중단하면서 “매번 같은 말 하기에도 지쳤어. 백날 해봐야 정치권은 꿈쩍도 안 하니…”라며 곤혹스러움을 토로했다.

요즘 유행하는 챗지피티(ChatGPT)한테 물었다. “정치만 생각하면 우울해집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몇초간 커서가 깜박이다가 폭포수처럼 답변을 쏟아냈다. “정치적인 상황이나 사회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 지속되면 우울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조금씩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려 노력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세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첫째, 개인적으로 일상적인 건강 관리를 중시할 것. 둘째, 사회적으로 시민단체 등을 통해 문제 해결에 참여할 것. 거기까지는 쉽게 수긍할 수 있다. 문제는 셋째 항목인데 인공지능이 우리더러 ‘정치적 참여를 하라’고 한다. 정치적으로 우울해지지 않기 위해서 정치적 참여를 하라고?

“셋째, 마지막으로는 정치적인 참여가 필요합니다. 정치는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따라서 정치적인 결정에 대해서 더 관심을 가지고, 민주주의적인 시스템에서 참여할 방법들을 찾아보세요. 예를 들어, 정치단체에 가입하여 정치적인 활동에 참여하거나, 지방의회 선거, 국회의원 선거 등에 참여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뭐야 이건? “어떻게 하면 먹고살 수 있을까?” 물었는데 “더 열심히 일하라”는 조언을 듣는 것만큼이나 짜증스럽다. “이런 바보 같은 기계야!”

애꿎은 인공지능에 화풀이해도 울화가 삭지 않는 건 그 말이 정답이란 걸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유권자의 무력감 때문이다. 가입하고 싶은 정당이 안 보이고 선거에서 충족감을 느끼며 표를 줄 수 있는 후보를 찾기 어렵다. “바뀌지 않는 현실에도 지치지 않을 방법이 있을까?”를 마저 물으려다가 스스로 머리를 쥐어박았다. “그래도 지치지 말고 바뀔 때까지 해보라”는 답이 나올 게 뻔해서다. 그래서 또 쓴다. 이슈 자체가 새롭지 않으니 평론이 새로울 수가 없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면서.

지난주 갤럽 조사에 따르면, 대통령 지지율이 전주보다 소폭 올랐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조) 긍정평가 이유 첫번째는 ‘노조 대응’(24%)이다. 연일 ‘노조 기득권’ 때리기를 한 게 강성 지지자들을 규합하는 데 효과가 있었나 보다. 그런데 대통령의 이런 주장은 그다지 새롭지 않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9월 금융·공공노조의 연쇄파업 결정을 두고 ‘국민을 볼모로 제 몫만 챙기는 기득권 노조의 퇴행적 행태’라며 엄중 대응할 것을 지시했다. 당시는 ‘미르-케이(K)스포츠재단 비리’와 관련해 최순실이란 베일 속의 인물이 집중 폭로되기 시작하던 시점이다. 정치적 고비마다 간첩단 사건을 터뜨리던 박정희 정권의 후계자답게 정치적 국면 전환용으로 노조 때리기 카드를 내민 것이다.

최근 윤석열 정부의 행태는 박근혜의 노조 때리기와 박정희의 간첩단 사건을 패키지로 묶은 것과 다름없다. ‘기득권’이란 차압딱지를 엉뚱한 곳에 갖다 붙이는 동안 진짜 특권층의 비리 의혹은 잠시 묻어둘 수 있을지 모른다. 해리 포터가 위기의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투명망토’를 두르듯이 역대 권력자들이 흔히 써온 수법이다.

실제로 투명망토는 10여년 전 도쿄대 다치 스스무 교수팀이 개발해 첫선을 보인 바 있는데, 그 비밀은 ‘역반사 광학기술’에 있다. 몸 뒤쪽의 배경을 전면으로 투사해 실체는 사라지고 투명인간이 된 것처럼 위장하는 것이다. 정부·여당과 야당이 지금 벌이는 전쟁은 투명망토의 원리와 같다. 나의 허물을 네 허물의 반사광으로 가리기. 대한민국이란 자동차가 세계적인 경제위기, 안보위기의 폭풍 속으로 진입하는데 오른쪽 왼쪽 사이드미러가 후방의 민생은 비추지 않고 서로를 역반사하며 거울 속의 거울로 시야를 가둔다.

“정치인은 자신이 대표하는 국민을 대변하여 입법 토론에 참여하고, 다른 정치인들과 협상하며, 국민을 대신하여 의사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이러한 작업은 현재의 인공지능 기술로는 불가능합니다.”

‘인공지능이 정치인을 대신할 수 있나?’ 물으니 챗지피티가 내놓은 답변이다. 컴퓨터는 인간처럼 말하는데, 권력을 좇는 인간들은 영혼 없는 그림자인형처럼 기계적으로 작동한다. 더 늦기 전에 민의를 반영할 선거제부터 타결해라. 우울한 유권자도 정치 참여 좀 해보게.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유레카] 악어의 눈물 1.

[유레카] 악어의 눈물

[사설] 법원 습격·난동, 윤석열의 거듭된 불복·선동이 빚었다 2.

[사설] 법원 습격·난동, 윤석열의 거듭된 불복·선동이 빚었다

영 김과 미국의 ‘이익선’ [아침햇발] 3.

영 김과 미국의 ‘이익선’ [아침햇발]

[사설] 사상 첫 현직 대통령 구속, 여권은 반성부터 해야 4.

[사설] 사상 첫 현직 대통령 구속, 여권은 반성부터 해야

[사설] 여당 주장 대폭 수용 내란특검법, 거부권 명분 없다 5.

[사설] 여당 주장 대폭 수용 내란특검법, 거부권 명분 없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