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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학교폭력, 징계 강화로 해결되지 않는다

등록 2023-03-05 18:23수정 2023-04-02 10:47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세상읽기] 류영재 | 의정부지방법원 남양주지원 판사

반 내에서 따돌림이 발생했다. 친구 집단에서 시작된 갈등이 배제와 위계 형성으로 이어졌다. 따돌림을 주도한 학생은 배제된 학생을 함부로 대하거나 그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다른 학생들은 가해 행동에 은근히 동조했다. 피해 학생은 겉보기엔 그 집단에 속하여 친구들과 어울려 지냈으나 실질적으로는 열등한 지위에서 그들의 심부름을 도맡았다. 고발할 엄두를 내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따돌림에 동조하던 한 학생(‘주영’이라고 하자)이 내적 갈등을 겪다 부모에게 털어놓은 것이다. 부모는 이 일이 은폐되어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자녀가 부당한 행동을 했을 때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 진정한 교육이라고도 생각했다. 부모는 주영을 설득하여 따돌림을 선생님께 알리도록 했다. 따돌림은 학교폭력위원회에 회부되었고, 가해자들은 징계 처분을 받았다. 주영은 잘못을 반성하며 알린 사정이 참작되어 다른 학생들보다는 가벼운 처분을 받았다.

반전은 여기에서 일어난다. 주영의 부모는 주영을 대리하여 징계 처분에 대한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학교폭력위원회의 구성 및 징계 절차의 적법성에서부터 처분에 대한 실질적 적법성까지 망라하여 다투어졌다.

학교폭력을 자백하며 고발했음에도 징계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하는 이유가 뭔지 재판장이 묻자, 부모는 이렇게 말했다. “제 자식이 잘못에 가담한 것은 백번 인정합니다. 본인도, 부모인 저희도 깊이 반성하며 피해 학생에게 사과했습니다. 그러나 징계라니요. 징계를 받으면 입시가 불가능해집니다. 아이 인생이 망쳐지는 거예요. 주영이는 따돌림을 주동하지도 않았고, 반성하는 차원에서 이 일을 스스로 알렸으며, 피해 학생에게 사과도 했는데, 여기에 더해서 인생도 망쳐야 하는 건가요. 너무 부당하고 가혹합니다.”

재판은 주영의 승소, 즉 징계 처분 취소로 끝났다. 따돌림이 없어서도, 징계 처분이 부당해서도 아니었다. 학교폭력위원회 위원의 선출 과정이 위법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반면, 최근 유명해진 사안처럼 가해자는 학교폭력 재판에서 졌지만 명문대 입시에 성공했고, 재판 기간 피해자는 보호되지 못한 사례들도 있다.

두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학교폭력 해결 절차의 본질이 ‘징계 처분 취소를 둘러싼 법적 분쟁’으로 변질한다는 점이다. 학교폭력은 성인 간 폭력과는 다르다.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소년이고, 교육 과정에서 발생하는 폭력이기 때문이다. 성장 과정에서 입는 폭력 피해는 소년의 생존과 발달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므로(유엔 아동권리위원회 일반논평 13호), 학교폭력은 즉시 중단되어야 하고, 소년 피해자는 두텁게 보호받아야 하며 일상 회복을 위한 섬세한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한편, 가해자인 소년은 가해자인 동시에 또 다른 폭력·학대의 피해자일 수 있고, 그가 벌인 폭력은 성인 사회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모방이자 왜곡된 교육의 결과다. 무엇보다 그 또한 피해자와 마찬가지로 미성숙한 단계에 있는 시민 사회의 일원이다. 이러한 이유로 성인과 달리 소년 가해자에 대해서는 처벌과 배제, 무관용의 원칙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위 논평 8호, 13호, 24호).

결국 학교폭력과 관련하여, 우리 사회는 ‘학교폭력의 사전 예방과 은폐 방지, 학교폭력의 즉시 중단, 가해자 및 보호자의 잘못 인정·반성·사과·재발 방지 다짐, 피해자의 보호 및 피해 회복’의 목표를 가져야 하고 이는 교육의 일환으로서 다뤄져야 한다.

이와 달리 학교폭력 제도가 ‘가해와 피해의 이분법, 가해자에 대한 징계 중심·무관용 원칙 중심 접근, 입시와의 연계, 미흡한 피해자 보호 및 일상 회복 지원’의 방향으로 설계되면서, 가해자 쪽은 가벼운 징계 처분에 대해서도 법적 공방을 벌이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학교는 가해자와 다투는 재판의 상대방이 되어 가해자를 교육해야 할 학생으로 보지 못하게 되었으며, 피해자는 재판이 종료될 때까지 소외되며 제대로 된 보호 및 피해 회복 절차를 지원받지 못하게 되었다.

위의 두 사례로 다시 돌아가보자. 가해 학생들은 과연 잘못을 깨닫고, 반성하고, 피해자에게 사죄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을까. 피해 학생들은 상처를 치유하고 일상을 회복할 수 있었을까. 징계를 강화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원 스트라이크 아웃은 더욱 격한 소송을 부를 뿐이다.

※첫 사례는 실제 재판 사안들을 조합해 만든 가상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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