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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논란 끝 살아남은 “기회주의자 득세 풍토 청산” 취임사에 박수

등록 2023-03-06 19:10수정 2023-04-05 03:45

[길을 찾아서] 참여정부 천일야화 5화-대통령 취임사 뒷얘기

2003년 1월24일

취임사 기초위원회

‘경제’ 담당으로 합류했다

2월25일 국회의사당 취임식

내 제안으로 들어간

바로 그 문장이

노무현 대통령의 목소리로

울려퍼졌다

3월1일 국립극장 삼일절 기념식

1974년 광복절

‘육영수’ 쓰러진 그 자리

노 대통령이

또 한번 그 문장을 읽었다

2003년 2월25일 제16대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식을 마치고 청와대로 가는 길에 시민들에게 주먹쥔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3년 2월25일 제16대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식을 마치고 청와대로 가는 길에 시민들에게 주먹쥔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3년 1월20일(월) 오후 인수위 기획조정분과에서 일하던 성경륭 교수(한림대)가 내 방에 오더니 대통령 취임사 기초위원회 경제분야 담당자로 내가 뽑혔다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바로 옆방의 취임사 준비위원장 지명관 교수(한림대)에게 인사를 하러 갔다. 지 교수는 과거 독재 암흑기에 일본 <세카이>(世界) 잡지에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을 연재한 분이다. 이 글은 유신독재의 참상과 학생·지식인들의 저항을 세계에 알린 귀중한 글이었다. 중앙정보부에서 눈엣가시 같은 저자 ‘티케이(TK)생’을 체포하려고 혈안이 되어 설쳤지만 정체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그 전설적 우국지사 티케이생이 바로 지 교수였다. 잠시 대화했는데도 존경심이 절로 우러나왔다.

1월24일(금) 오후 2~5시 취임사 준비 모임에 처음 참석했다. 위원들 면면을 보면 지명관 위원장, 소설 <객주>의 작가 김주영, 언론인 김종심, 당선자 대변인 이낙연, 정치학자 임혁백·조기숙, 사회학자 성경륭·김호기, 그리고 위원회 간사에는 당선자의 오랜 비서 윤태영, 여기에 내가 경제학자 몫으로 추가된 것이다. 김주영 작가는 어릴 때 대구 대봉동 이웃에서 살았고, 누님끼리 친구라서 금세 가까워졌다. 이날 회의에서는 취임사의 큰 윤곽에 대한 토론을 했다. 1월27일(월) 오후 6시 남산 타워호텔에서 취임사 3차 모임이 있었다. 김종심·김호기 위원이 작성해온 초안을 검토했다. 상당한 명문이어서 내 마음에 쏙 들었다. 글의 큰 틀만 의논하고 세세한 문장은 다음에 다듬기로 했다. 사흘 뒤 다시 모여 초안을 놓고 자구수정을 했다.

2003년 1월20일 노무현(왼쪽) 당선자가 제16대 대통령 취임사 준비위원장인 지명관 교수에게 위촉장을 수여하고 있다. 노무현사료관 제공
2003년 1월20일 노무현(왼쪽) 당선자가 제16대 대통령 취임사 준비위원장인 지명관 교수에게 위촉장을 수여하고 있다. 노무현사료관 제공
2월3일(월) 오후 4~6시 5차 모임이면서 당선자가 주재하는 취임사 첫 독회가 열렸다. 당선자는 초고를 읽고 나더니 예상외로 글의 전면 수정을 희망했다. 김종심·김호기 위원 초안은 내가 보기엔 명문이었지만 당선자와 취향이 달랐는지 아깝게도 채택되지 않았다. 그리고 당선자는 글의 순서에 대해서도 큰 문제를 앞에 놓고 작은 문제는 뒤로 돌리는 방식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했다. 1주일 뒤 6차 모임에서는 조기숙 교수가 동북아-남북문제-국내 순으로 새로 써온 원고를 위원들이 검토한 뒤 국내 부분을 좀 더 보강하자고 합의했다.

2월12일(수) 오후 4~6시 여의도 맨하탄호텔 2층에서 7차 모임이 열렸다. 나는 ‘경제’ 내용은 이미 검토가 끝나 별로 더 할 일도 없고 해서 다음 ‘한 문장’을 넣자고 제안했다.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자가 득세하는 굴절된 풍토는 청산되어야 합니다.” 너무 강한 표현이라고 일부 위원이 반대했지만 내가 강력 주장한 끝에 초고에 집어넣는 데 성공했다. 그 뒤 9차 모임에서는 당선자 대변인 이낙연과 윤태영 간사가 최종 정리한 초고를 놓고 검토 회의를 열었다. ‘정의가 패배하고…’ 문장은 이 자리에서 삭제되었다가, 예수도 아닌데 부활해서 최종 원고에는 살아남았다. 후유! 다행이다. 나로서는 이 문장 하나에 큰 의미를 두고 있었다.

2003년 3월1일 노무현 대통령 내외(가운데)가 국립극장에서 취임 첫 삼일절 기념식을 주재하고 있다. 초대 정책실장을 맡은 이정우(오른쪽 여섯째) 교수도 단상에 올랐다. 노무현사료관 제공
2003년 3월1일 노무현 대통령 내외(가운데)가 국립극장에서 취임 첫 삼일절 기념식을 주재하고 있다. 초대 정책실장을 맡은 이정우(오른쪽 여섯째) 교수도 단상에 올랐다. 노무현사료관 제공
내가 이 문장을 중시한 이유는 이렇다. 취임사 기초위에 참석하라는 말을 듣자마자 나는 역대 대통령의 취임사를 읽어보았다. 하나같이 화려하고 훌륭한 문장이었다. 하지만 한국 현대사의 최대의 비극, 즉 독립운동가는 해방된 조국에서 제대로 대접도 못 받은 채 3대가 망하고, 친일파·매국노는 처벌받기는커녕 자손대대로 떵떵거리고 잘 사는, 기막힌 모순을 언급한 취임사는 없었다. 아니 이 뒤틀린 역사, 억장이 무너지는 현실을 언급한 대통령이 한 명도 없단 말인가. 그래서 나는 만사를 제쳐놓고 이 문제 하나만은 확실히 짚어야겠다고 결심했다. 해방 이후 우리 정부가 들어선 지 어언 반세기가 흘렀건만 국내외에서 신산고초를 겪었던 수많은 애국자와 유족의 한을 풀어주는 말이 대통령 취임사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너무 무심하지 않은가. 그래서 경제 분야 서술을 마친 뒤 나는 ‘정의가 패배하고…’라는 문장을 반드시 넣자고 주장했던 것이다. 엎치락뒤치락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그 문장이 최종적으로 노무현 대통령 취임사에 들어간 것은 정말 다행한 일이었고, 이로써 나는 큰 숙제를 하나 해낸 느낌이었다.

2월25일(화) 16대 대통령 취임식 날이다. 나는 갓 임명받은 대통령 정책실장으로서 청와대 버스를 타고 국회의사당 앞마당에 마련된 취임식장으로 갔다. 식장에서 이현재·이홍구 전 총리,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을 만나 인사했다. 그리고 인수위원들과 반갑게 재회했다. 오전 10시 취임식이 시작됐다. 국립묘지에서 분향을 마친 뒤 국회로 들어오는 대통령의 차량 행렬이 취임식장의 대형 화면에 떴다. 어머니 생각이 났다. 아, 살아계셨으면 누구보다 기뻐하셨을 텐데.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사가 국회 앞마당에 울려 퍼졌다. 여러 차례 박수가 터졌다. 끝 부분의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자가 득세하는 굴절된 풍토는 청산되어야 합니다”라는 대목에서 자연발생적으로 특별히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국민들 마음속에 이런 심정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종의 한풀이, 해원(解冤)이다. 사람은 억울함이 마음속에 있으면 명랑하게 살 수가 없고,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1974년 8월15일 박정희(왼쪽 둘째) 대통령 내외가 광복절 기념식장인 극립극장 연단에 입장했다. 육영수(오른쪽 둘째) 여사가 저격으로 쓰러지기 10여분 전 상황이다. 연합뉴스
1974년 8월15일 박정희(왼쪽 둘째) 대통령 내외가 광복절 기념식장인 극립극장 연단에 입장했다. 육영수(오른쪽 둘째) 여사가 저격으로 쓰러지기 10여분 전 상황이다. 연합뉴스
며칠 뒤 3월1일(토) 오전 10시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열린 ‘제84돌 3·1절 기념식’에서 나는 단상에 올라 대통령 내외 옆에 앉았다. 1974년 8월15일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육영수 여사가 총을 맞은 바로 그 자리다. 젊은 날의 나는 그날이 공휴일이라 집에서 라디오를 틀어놓은 채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경축식 라디오 중계방송을 하던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지고, 따닥따닥 하는 딱총소리 같은 게 들렸다. 그때의 충격이라니. 육 여사는 곧장 서울대병원에 실려가 응급 수술을 받았으나 저녁 7시께 운명했고, 광복절 경축식 합창단의 일원이었던 성동여자실업고 학생 장봉화양은 식장에서 총알 한 방에 꽃다운 목숨을 잃었다.

현장에서 체포된 재일동포 문세광은 재판을 받고 그해 연말 서둘러 사형이 집행됐다. 문세광을 수사한 검사는 김기춘(훗날 법무장관,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다. 그러나 1989년 9월 <월간 다리> 잡지에 실린, 15년 전 경축식 현장에 출동했던 서울시경 총알감식계장 이건우 경감의 증언을 보면, 이 사건은 의혹투성이다. 무엇보다 ‘총알 개수가 다르므로 문세광은 범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이 경감의 주장은 ‘심각한 문제제기’가 아닐 수 없다. 이 경감은 이 의문을 내내 마음속에 품고 있다가 1987년 6월항쟁 이후 우리 사회가 민주화로 나가자 용기를 내어 양심선언을 하고는 10년 뒤 세상을 떠났다.

내가 옛 생각에 잠겨 있는 순간, 노무현 대통령이 연단에 나가 3·1절 기념사를 낭독했다. 그런데 연설문에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라는 그 문장이 나오는 게 아닌가. 바로 이 대목에서 저절로 청중들의 우레 같은 박수가 쏟아지는 것은 며칠 전 취임식 때와 꼭 같았다. 많은 사람의 억울한 심정을 그 문장이 대변해준 것일까. 식이 끝나고 주차장으로 이동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대통령이 말했다. “오늘 연설문은 영 힘이 없어.” 내가 답했다. “그래도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 대목은 힘이 있었고 박수가 우렁찼습니다” 하니 대통령 내외가 웃었다.

강원국 연설비서관이 쓴 베스트셀러 <대통령의 글쓰기>(2017)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3·1절 기념사 초고는 원래 강 비서관이 썼는데, 3·1절 바로 전날 노 대통령이 한 문단을 추가해달라고 강 비서관에게 주었다. 그 문단에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라는 문장이 들어 있었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과 내가 이심전심이었던 셈이다. 그 뒤 한나라당, 새누리당, 국민의힘으로 당명은 자꾸 바뀌면서도 시종여일 바뀌지 않는 한 가지는 이 문장을 갖고 노 대통령의 역사인식을 문제 삼고 시비를 건다는 점이다. 독립지사들과 유족의 한을 풀어주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운 대통령의 역사관에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인가. 이 문장에 시비를 거는 자들이야말로 역사인식의 빈곤을 스스로 드러낼 뿐이다.

이정우: 1950년 대구에서 나고 자랐다. 1974년 서울대 경제학과 학·석사를 마친 뒤 1983년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2015년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한 뒤 명예교수를 맡고 있다. 2003~05년 참여정부 초대 정책실장, 정책기획위원장 겸 정책특보를 지냈다.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자 끊임없이 공부하는 경제학자를 자임하고 있다. ‘참여정부 천일야화’ 제목은 그의 친필이다.  진행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이정우: 1950년 대구에서 나고 자랐다. 1974년 서울대 경제학과 학·석사를 마친 뒤 1983년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2015년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한 뒤 명예교수를 맡고 있다. 2003~05년 참여정부 초대 정책실장, 정책기획위원장 겸 정책특보를 지냈다.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자 끊임없이 공부하는 경제학자를 자임하고 있다. ‘참여정부 천일야화’ 제목은 그의 친필이다. 진행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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