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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유진의 바디올로지] 탐닉하는 혀, 잔혹한 혀, 회복하는 혀

등록 2023-04-11 19:12수정 2023-04-12 14:20

07 _혀
과거 신문·잡지 등을 보면, 1920년대부터 한국인의 외국어 콤플렉스에 관한 이야기들이 종종 눈에 띄는데 상당수가 한국인의 혀는 영어나 불어를 하기에 적합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실제 2010년대 어린아이들의 혀 아래와 입안 바닥을 연결하는 막인 설소대를 잘라 주는 수술이 중산층 학부모들 사이에서 유행이었다. 설소대 교정수술을 받은 0~9살 아동은 2010년 2000여명에서 2014년 3000여명으로 증가했다. 물론 설소대를 잘라 영어 발음이 좋아졌다는 연구결과나 증거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혀 중 하나인 영국 록밴드 롤링스톤스의 ‘혀와 입술’ 로고. 유니버설뮤직 제공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혀 중 하나인 영국 록밴드 롤링스톤스의 ‘혀와 입술’ 로고. 유니버설뮤직 제공

혓바닥처럼 간사하고 섹시하며 무서운 신체기관이 있을까.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할짝할짝 부드러운 것들을 탐닉하고, 먹이를 목구멍으로 밀어 넘긴다. 한 사람의 세치 혀가 백만군사를 물리칠 때도 있지만, 반대로 나라를 망조 들게도 한다.

먼저 혀의 여러 기능 중에서 ‘맛보는 혀’를 얘기할 땐 ‘혀 지도’를 빼놓을 수 없다. 혀의 각 부분이 다른 맛을 느낀다는, 교과서에까지 실렸던 이 지도는 반세기 넘게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단맛은 혀끝, 쓴맛은 혀 뒷부분, 짠맛과 신맛은 혀 양옆 가장자리에서 느낀다고 혀 지도는 설명한다. 하지만 이는 1901년 한 독일 연구자가 내놓은 연구 결과를 1942년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자 에드윈 보링이 심리학 교재에 오역해 실으면서 퍼진 잘못된 이론이다. 오늘날 전문가들은 혀 지도는 잊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혀의 각 부분에서 민감하게 맛을 느끼는 부위가 있을지라도 그 차이가 뚜렷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소설가 권여선은 산문집 <오늘은 뭐 먹지?>에서 “각자의 혀에는 각자가 먹고살아 온 이력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맛보기는 혀의 미뢰(맛봉오리)가 담당한다. 혀 표면 돌기인 유두 속에 꽃봉오리처럼 생긴 미뢰가 자리잡고 있는데, 1만여개에 이르는 미뢰는 미각 수용세포를 품고 있다. 임신 8주면 이미 태아에게 미뢰가 만들어지고 몇가지 맛까지 느낀다니 각자의 개성 있는 혀는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만들어지는 셈이다.

혀는 음식뿐 아니라 사랑도 맛본다. 영화 <건축학개론>(감독 이용주)에서 조정석이 연기했던 납득이의 명대사를 보자. “키스라는 건 말야. 봐봐. 입술이 다 붙잖아. 이게 걔 혀. 니 혀. 자연스럽게 들어온다고. 스르르 뱀처럼. 알지? 비벼. 막 비벼. 존나 비벼. (…) 이게 키스야.” 정가영 감독의 10분짜리 단편 <혀의 미래>는 저속하거나 야한 표현 하나 없지만 더 직설적이다. (스포일러가 있으니 찝찝한 분들은 한단락 건너 읽기 바란다) 놀이터에서 첫 키스를 하려고 만난 젊은 연인 승찬과 가영. 긴장도 풀 겸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가던 중, 승찬 아버지와 가영 어머니가 재혼 상대자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고 충격에 빠진다. 남매가 될지도 모를 운명의 장난 앞에 두 사람은 키스를 할까? 말까? 입술부터 들이대는 승찬을 가영이 급하게 떠민다. “우리, 일단 혀는 넣지 말아 보자.” 그렇다. 혀와 혀의 만남은 쌍방간 동의가 필요하고 짜릿한 만큼 위험도 뒤따른다.

정가영 감독의 단편 &lt;혀의 미래&gt;(2014) 한 장면.
정가영 감독의 단편 <혀의 미래>(2014) 한 장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혀를 가진 이는 아마도 힌두 여신 칼리일 것이다. 혀를 펼쳐 적들을 한입에 삼키고 피를 핥아 먹는 칼리 여신은 인간이 두려워해야 할 대자연에 비유된다. 어미가 혀로 핥아 새끼를 키우고 치유하듯, 칼리의 혀는 생명을 주고 때론 가차없이 뺏기도 한다는 풀이다. 더 대중적인 이야기도 있다. 살육을 저지르는 칼리를 저지하려고 남편인 시바가 변신을 한 채 칼리의 발 아래 깔리자, 남편을 알아보지 못한 칼리가 부끄러워서 혀를 빼물었다는 것이다. 이는 여신의 이야기를 단순화한 가부장적인 해석이라는 평가가 많다.

인도 힌두 여신 칼리는 혀를 빼물고 있다. 그의 혀는 생명과 죽음의 상징이 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인도 힌두 여신 칼리는 혀를 빼물고 있다. 그의 혀는 생명과 죽음의 상징이 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마야 문명사에도 꽤 잔혹한 혀의 기록이 남아 있다. 서기 700년께 멕시코 치아파스 지역 야스칠란을 다스리던 지도자의 배우자인 쇼크 부인은 자기 혀에 스스로 구멍을 뚫고 화산재 조각을 노끈에 달아 끼워 넣었다. 이 유혈 낭자한 피의 의식은 하늘이 부여한 권력의 정당성을 확인하는 의례였다고 한다. 혀 피어싱은 신탁을 위해 피를 바치는 정치적 행위였다는 얘기다.

과거 신문·잡지 등을 보면, 1920년대부터 한국인의 외국어 콤플렉스에 관한 이야기들이 종종 눈에 띄는데 상당수가 한국인의 혀는 영어나 불어를 하기에 적합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실제 2010년대 어린아이들의 혀 아래와 입안 바닥을 연결하는 막인 설소대를 잘라 주는 수술이 중산층 학부모들 사이에서 유행이었다. 설소대 교정수술을 받은 0~9살 아동은 2010년 2000여명에서 2014년 3000여명으로 4년 새 50%나 증가했다. 물론 설소대를 잘라 영어 발음이 좋아졌다는 연구결과나 증거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혀 훼손과 관련해 한국 사법 역사상 오점으로 남은 판결도 있다. 1964년 5월, 당시 18살이던 최말자씨는 21살 노아무개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넘어진 최씨는 입안에 들어온 무언가를 깨물어 저항했는데 그 과정에서 노씨 혀가 1.5㎝ 정도 잘렸다. 검찰과 법원은 피해자 최씨에게 책임을 물었고, 중상해죄 혐의가 인정돼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는다. 반면 노씨는 성범죄로 처벌받지 않았다. 6개월이나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 했던 최씨는 2020년 ‘56년 만의 미투’에 나서 재심을 청구했다. 그는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된 지난 56년을 바로 잡고 싶다”고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법원은 재심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1988년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밤에 귀가하던 주부 변아무개씨(당시 32)를 신아무개(20), 권아무개(19)가 골목으로 끌고 가 폭행하고 성추행했다. 변씨가 방어하는 과정에서 신씨 혀가 잘려나갔는데, 이 사건 또한 과잉방어 논란에 휩싸였다. 검사와 가해자 쪽 변호사는 ‘사건 당시 술을 마셨다’며 부도덕한 여성으로 변씨를 몰고 갔다. 변씨는 결국 1심에서 상해죄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이에 “법이 보호하지 않아도 될 혓바닥을 보호했다”며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변씨는 항소심에서는 정당방위가 인정돼 무죄판결을 받았고 대법원이 이를 확정했다. 이 사건은 1990년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감독 김유진)라는 영화로도 제작됐다.

혀는 상대를 가격하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 매운맛 세치 혀 공격이 일상적으로 오가는 살벌한 전투장으로는 아무래도 정치권이 첫번째다. 구설(口舌), 독설(毒舌), 설화(舌禍)가 끊이지 않는 이곳에서 최근 눈에 띄는 사람들을 꼽으라면 단연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한동훈 법무부장관일 것이다. 최근에도 이들은 난타전을 벌였다. 김 의원이 한 장관에게 “조선 제1혀”라고 하자 한 장관은 김 의원에게 “거짓말이나 줄이라”고 받아쳤다. 매운 맛 잽들이 오가는 설전을 관전하는 것도 흥미롭지만, 이젠 비아냥을 넘어선 진검승부를 보고 싶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 원작자인 이자크 디네센이 쓴 단편 <바베트의 만찬>에서도 혀 이야기가 나온다. 프랑스 일류요리사 출신으로 노르웨이의 어느 낙후된 어촌에 정착한 바베트는 마을 사람들을 위해 진수성찬을 준비한다. 그런데 바다거북 등 낯선 프랑스 음식 재료를 본 사람들은 당장 복어 독이라도 먹어야 할 것처럼 불안에 떤다. 마을 사람들은 만찬에 앞서 ‘프랑스 마녀의 잔칫상’에서 각자의 혀를 순결하게 지키자고 다짐한다.

운명의 날, 그들 앞에 차려진 건 독이 아니라 일류 프랑스 레스토랑의 최고급 정식이었고 바베트는 마녀가 아닌 혁명가였다. 그날의 만찬은 파리코뮌에 시민군으로 참여해 부엌칼 대신 총을 들었던 바베트가 최고의 기량을 발휘해 만든 음식이었다. 오늘날엔 많은 이들이 <바베트의 만찬>에서 혁명 정신을 일상으로 계승하는 공동체의 회복과 치유 정신을 발견한다.

작가 이자크 디네센은 바베트처럼 이방인으로 떠돌며 자주 구설에 휘말린 사람이었다. <바베트의 만찬>은 아마도 가시밭 같은 현실의 탈출구 삼아 지어낸 꿈 같은 이야기였을 것이다. 얼마 전, 실향민이 만든 꿩냉면 명가를 소개한 기사에 “여기가 북한이냐”는 댓글이 달린 것을 봤다. 분명한 건 꿩냉면을 먹어보지도 않고 저런 얘기를 내뱉었을 거라는 거다. 바베트를 두고 마녀라고 비난하던 마을 사람들은 만찬 뒤 바베트야말로 진정한 예술가이며 천사들에게도 인정받을 거라고 말을 바꿨다. 인간의 세치 혓바닥은 깃털처럼 가볍고 뒤집기도 쉬운 법. 연민을 느끼거나 못마땅한 마음을 표할 때도 혀는 유용하게 쓰인다. 쯧쯧. 과연, 세치 혀의 기능은 무궁무진한 것이다.

*참고자료: <맛의 과학>(밥 홈즈 지음, 원광우 옮김) <왜 맛있을까>(찰스 스펜스 지음, 윤신영 옮김) <몸으로 읽는 세계사>(최재천 지음) ‘Kali and her tongue’(〈The times of India〉) <바베트의 만찬>(이자크 디네센 지음, 추미옥 옮김)

이유진 | <한겨레21> 선임기자
한겨레 편집국 문화부, 편집부, 사회부 기자를 거쳐 책지성팀장과 토요판 부장을 지냈다. 대학원에서 여성학과 문화학을 공부했고 감염병과 주부주체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지성이 금지된 곳에서 깨어날 때>가 있고, <엄마도 아프다> <종이약국>을 다른 필자들과 함께 썼다. ‘바디올로지’는 ‘몸(body)’과 ‘학(-logy)’의 합성어로, 지난 100년 동안 미디어를 통해 유포된 몸 담론을 씨앗으로 전쟁터나 다름없는 몸과 젠더, 장애, 노화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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