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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대만에서 들은 ‘삼성 걱정’

등록 2023-04-20 19:04수정 2023-04-21 02:06

한국을 처음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맨 왼쪽)이 윤석열 대통령(왼쪽 둘째)과 지난해 5월20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이재용 부회장(왼쪽 셋째)의 안내를 받으며 공장을 돌아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한국을 처음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맨 왼쪽)이 윤석열 대통령(왼쪽 둘째)과 지난해 5월20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이재용 부회장(왼쪽 셋째)의 안내를 받으며 공장을 돌아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특파원 칼럼] 최현준 | 베이징 특파원

“위기가 기회였다.”

대만 반도체회사 티에스엠시(TSMC)의 성공 비결을 묻자, 대만 즈리과기대 장훙위안 교수는 1999년 ‘9·21 대지진’ 얘기를 꺼냈다. 당시 2천명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대지진으로 티에스엠시 공장도 피해를 입었는데, 이를 단기간에 극복하기 위해 취한 특단의 대책이 현재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 티에스엠시를 만드는 밑바탕이 됐다는 것이다.

당시 티에스엠시가 꺼내 든 대책은 ‘24시간 3교대 근무’였다. 생산은 물론 연구·개발(R&D) 분야까지 3교대 근무에 들어갔고, 이를 계승·발전시켜 티에스엠시 특유의 철저하고 정밀한 기술력을 갖춘 반도체회사가 될 수 있었다고 했다. 티에스엠시는 반도체 신기술 개발에서 삼성전자와 경쟁하고 있지만 시스템반도체 생산에서는 한발 앞선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도 위기를 기회로 만든 순간이 있었다. 1993년 고 이건희 회장은 미국·유럽 시장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구석에 진열된 삼성 제품을 본 뒤 임직원 200여명을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불러모았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라고 했다는 당시 모임 뒤 삼성의 품질경영이 시작됐다. 이후 삼성의 성장은 눈부시다. 스마트폰 분야에서 애플과 대등하게 경쟁하고, 디램·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여기에 가전까지 갖춘 세계 어디에도 없는 글로벌 종합 전자회사로 우뚝 섰다.

이런 삼성을 바라보는 대만 산업계의 평가는 후했다. 못하는 게 없는, 똑 닮고 싶은, 그러나 따라가기 힘든 ‘팔방미인’ 기업이라는 것이다. 시장이 작아 자체 브랜드를 키우기 힘든 대만은 주문을 받아 대신 생산하는 ‘위탁생산’에 주력하고 있다. 티에스엠시·폭스콘·유엠시(UMC) 등이 이런 기업들이다.

그러나 최근 대만 반도체 업계에서 보는 삼성은 예전과 같지 않다. 특히 지난해 발생한 한 작은 사건이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지난해 5월 중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이재용 삼성 회장이 경기도 평택 반도체 공장을 찾았다. 국내에서는 거의 거론되지 않았지만, 대만에서는 이들 방문객들의 옷차림이 화제가 됐다. 눈에 보이지 않는 먼지 한 톨도 생산에 큰 영향을 끼치는 반도체 공장에 양복 차림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해당 공장이 먼지를 완전히 제거하는 ‘클린 룸’ 작업을 마치기 전이었지만, 그럼에도 조심해야 했다는 뒷말이 나왔다.

삼성은 한때 ‘관리의 삼성’으로 불렸다. 지독하리만큼 꼼꼼하고 철저한 삼성 특유의 문화 때문이다.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의 온갖 위법 논란 속에서도 삼성이 지금의 세계적인 위치에 오른 것은 이런 관리문화의 장점이 발현된 결과였다. 하지만 대만에서 ‘관리의 삼성’ 신화는 금이 가고, 티에스엠시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대만 산업계의 이런 지적을 괜한 호들갑이라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현재 삼성을 둘러싼 환경이 녹록지 않다. 스마트폰에서는 애플에 밀리며 중국 업체들에 쫓기고, 메모리반도체 시장상황이 안 좋은 가운데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는 별다른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중국의 도전과 미국의 응전이 과학·기술 분야로 옮겨가고 전세계 산업 지형이 재편되는 가운데, 삼성은 또 한번 위기를 기회를 바꿀 수 있을까.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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