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3세 영국 국왕 대관식과 찬가. 김재욱 화백
지난 6일(현지시각)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린 찰스 3세 대관식을 보다 ‘축구대회 찬가가 왜 저기서?’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귀를 칭찬할 일이다. 도중에 유럽 챔피언스리그(챔스) 찬가의 선율이 울려 퍼졌기 때문이다. 축구라면 죽고 못 사는 영국이라지만 곡절은 따로 있다. 원래 1727년 6월 같은 장소에서 열린 영국 왕 조지 2세의 대관식을 위해 헨델(1685~1759)이 만든 곡을 유럽축구연맹(UEFA)이 챔스 찬가로 가져다 쓴 것이다.
원곡은 헨델의 <대관식 찬가> 중 제1번 ‘제사장 자독’(Zadok the Priest)이다. 구약성서 열왕기에 나오는 제사장 자독(히브리어로 ‘정의로움’)이 솔로몬 왕의 머리에 향유를 부어 신성과 권위를 부여한 데서 모티브를 빌렸다. 그래서 영국 왕 즉위식 중 성유(기름 부음) 의식 때 연주된다. 웅장한 합창곡은 왕의 즉위와 백성의 기쁨을 반복해 노래한다. 조지 2세를 시작으로 찰스 3세의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2세 대관식(1953년)까지 빠짐없이 쓰였다.
도입부는 나직하지만 선명한 현악기의 시간이다. 1분 넘게 목관과 어울려 차곡차곡 긴장을 쌓아 올린다. 이윽고 트럼펫과 합창이 한꺼번에 터져나오며 감정을 최고조로 이끈다. 헨델은 합창곡의 대가답게 웨스트민스터의 드높은 천장과 공명까지 계산에 넣어 더 장엄하게 들리도록 작곡했다고 한다. 이 곡이 유럽 최고의 축구클럽을 결정짓는 챔스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 사람은 영국 작곡가 토니 브리튼이다. 1992년 유럽축구연맹의 의뢰를 받고 5분 넘는 원곡을 3분 분량으로 압축·편곡해 찬가로 만들었다.
챔스 전 경기 양 팀 입장, 중계방송 시작과 끝에도 틀지만, 하이라이트는 우승팀이 트로피(‘빅이어’)를 들어 올리는 대관식이다. 모든 축구선수가 선망하지만 아무나 뛸 수 없는 곳이 챔스다. 트로피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 ‘꿈의 무대’를 상징하는 이 곡이 흘러나올 때면 관중의 열기로 가득 찬 경기장은 흥분과 전율로 일렁인다. 올해 챔스 결승전은 공화국 수립 100주년을 맞는 튀르키예 수도 이스탄불의 아타튀르크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다음달 11일 열린다.
원래 결승전 선수 입장 때는 세계적인 가수나 연주가를 초청해 찬가를 라이브로 들려주었는데, 코로나 팬데믹이 덮친 2020년 이후 중단됐다. 라이브 재개 여부도 관심을 모은다.
강희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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