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레질을 마친 논엔 맨발로 들어간다. 장화나 양말을 신으라는 권유를 받지만, 모를 만날 준비를 마친 흙을 내 발바닥으로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잔돌이나 뭉친 흙덩이를 밟는 바람에 몸과 마음을 다잡기도 한다. 여기서 자랄 벼와 여기서 스러진 벼의 시간을 함께 떠올린다. 삶에 죽음이 겹치고, 영광에 상처가 녹아든다. 우리는 그것을 통틀어 역사라고 부른다.
섬진강 들녘 모습. 논에 물을 대고 써레질을 시작하자, 백로와 왜가리들이 찾아들어 먹이활동을 한다. 사진 김탁환
김탁환 | 소설가
섬진강 들녘에 트랙터 소리가 요란하다. 자운영을 비롯한 녹비작물을 갈아엎은 논으로 섬진강 맑은 물이 흘러들어 간다. 흙덩어리를 부수면서 논바닥을 편평하게 고르는, 써레질하는 날이다. 백로들이 진작부터 강에서 날아와선 트랙터 뒤만 졸졸 따른다. 써레질을 마친 무논에 미꾸라지를 비롯한 먹잇감이 잔뜩 있다는 걸 아는 것이다.
다음날엔 백로들이 아예 논두렁을 차지하고 줄줄이 앉는다. 논에 윤슬이 반짝이면 백로들은 하나둘씩 마음에 담아둔 논으로 흩어진다. 그런데 어느 논엔 서너마리가 날아가 앉고 어느 논엔 한마리도 내리지 않는다. 먹잇감이 많은 논과 적은 논을 새들도 아는 것이다. 논이라고 다 같은 논이 아니고 흙이라고 다 같은 흙이 아니다.
허욱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언더그라운드>는 제목 그대로 지하 공간을 다룬다.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이 머문 곳이 유난히 많다. 탄광과 방공호와 동굴 진지가 이어진다. 지상의 나날에 익숙한 관객들은 어둡고 좁고 낡은 지하 공간을 보는 것만으로도 불편하고 답답하다. 저도 모르게 가슴을 두드리며 깊은숨을 쉰다. 그런데 이 공간들은 대부분 지하 구조물이다. 의도를 갖고 일부러 만든 공간인 것이다.
써레질하는 동안, 겨울과 봄을 지나며 단단하게 굳고 거칠게 말라버린 겉흙은 부서지고 젖고 뒤섞인다. 식물과 동물과 미생물 그리고 무생물들과 함께한 논의 시간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미꾸라지가 없다면 없는 이유가 있는 것이고, 벼가 바람에 잘 쓰러진다면 쓰러지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언더그라운드>는 ‘지상으로 올라오지 못한 기억’을 찾고 되살린다. 가덕도든 부산이든 제주도든, 혹은 대한해협 건너 시모노세키든 나가사키든 오키나와든 지하 구조물이 세워지고 운용된 방식은 다르지 않다. 일본 정부가 계획을 세웠고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이 일했다. 자료 사진과 다양한 증언들은 그곳에서의 노동이 얼마나 열악하고 힘겨웠는지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국가폭력의 피할 수 없는 물증이다.
21세기에 다시 찾아간 지하 공간들은 고요하다. 허욱 감독은 음악을 거의 넣지 않고, 지하 구조물에서 나는 미세한 잡음과 그보다 더 길고 무거운 침묵을 들려준다. 제2차 세계대전과 연관된 지하 구조물들은 역할과 기능을 잃은 지 오래다. 지상과 지하를 오가던 사람들이 떠나면서 근처 마을과 길과 생태계도 바뀌었다. 지상만 살피고 지나치면, 이 땅 밑에 특별한 공간이 있다는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써레질하지 않은 흙에선 모심기부터 힘겹다. 물이 골고루 스며들지도 않고, 겨우내 땅속에서 지렁이를 비롯한 작은 동물들이나 미생물의 활동으로 비옥해진 흙이 뿌리에 닿기도 어렵다. 모는 약해지고 썩고 병든다.
깜깜한 지하로 빛을 쏘고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제시할 때, 나는 허욱 감독이 역사의 써레질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뚝 솟은 봉우리의 높이뿐만 아니라, 햇빛이 들지 않는 심해의 깊이까지 아우를 때, 우리는 비로소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가닿는다. 강제로 끌고 와서 지하로 밀어 넣었던 자도 인간이고, 땅 밑에서 신음하며 버틴 자도 인간이다. 망각하고 넘어가자는 자도 인간이고 낱낱이 들춰 지상으로 끌어올리려는 자도 인간이다.
써레질을 마친 논엔 맨발로 들어간다. 장화나 양말을 신으라는 권유를 받지만, 모를 만날 준비를 마친 흙을 내 발바닥으로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잔돌이나 뭉친 흙덩이를 밟는 바람에 몸과 마음을 다잡기도 한다. 여기서 자랄 벼와 여기서 스러진 벼의 시간을 함께 떠올린다. 삶에 죽음이 겹치고, 영광에 상처가 녹아든다. 우리는 그것을 통틀어 역사라고 부른다.
지하 구조물들은 한두 나라에 국한되지 않고 동아시아를 아우른다. 전쟁의 참상이 담긴 곳을 찾아가노라면, 지구 전체를 망라할 수도 있겠다. 백로는 먹잇감이 많은 논을 골라 날아들지만, 역사의 깊이를 아는 인간은 편히 몸 둘 곳이 없다. 천하가 병들었고 곳곳에 지하 구조물이 있는데, 어딜 덮고 어딜 가린단 말인가.
5억년이라는 흙의 시간에 비하자면, 일본이 지하 구조물들을 만들고 활용하다가 버린 지난 100여년은 먼 과거가 결코 아니다. 막연한 두려움과 조급함에 사로잡혀, 지하로 난 계단 입구에서 돌아서지 말고, 한걸음 한걸음 내려서야 할 때다. 진실규명도 해원도 저 어둠의 끝, 기억이 저장된 공간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써레질이 잘된 논일수록 벼는 더 깊이 뿌리를 내린다. 거기 우리가 쥘 흙이 있고, 우리가 품을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