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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욱일기와 제국군, 자위대

등록 2023-06-05 14:59수정 2023-06-07 10:04

일본 메이지 정부가 1870년 육군 군기로 채택한 욱일기는 해를 상징하는 붉은 원에서 햇살 열여섯 줄기가 뻗어 나가는 모양을 하고 있다. 햇살이 16줄기인 건 일본 왕실의 상징인 국화 꽃잎이 16개인 것과 무관치 않은 것 같다. 욱일기는 1899년 해군기로도 채택됐는데, 해군 욱일기는 육군기와 달리 붉은 원이 살짝 왼쪽으로 치우쳐 있다.

일본 제국군은 1894년 이 욱일기를 앞세우고 출병해 ‘반외세 반봉건’을 외친 동학농민을 무참히 학살했고, 청일전쟁·러일전쟁을 거쳐 식민지배의 길을 닦았다. 욱일기는 또 일본군이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루거우차오 사건을 거쳐 중국으로 진출하고, 1941년 진주만 기습을 통해 미국과 전면전에 나설 때도 함께했다.

그래서 욱일기가 일본인에게 욱일승천하는 일본의 기상을 나타낼지 모르지만, 한국과 중국 등 동아시아에는 일본 제국주의의 야만적이고 잔혹했던 침략의 상징이다. 또 일본인에겐 “자랑스러운 전통 문양에서 유래한 것”일지 모르지만, 우리에겐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악몽이다.

이들 욱일기는 1945년 일제 패전과 함께 사라졌지만, 9년 뒤 일본 자위대 창설과 함께 되살아난다. 육상 자위대기는 빛줄기를 16개에서 8개로 줄이고 테두리에 진노란 무늬를 둘러 옛 욱일기와 조금 달라졌지만, 해상 자위대는 옛 일본해군의 욱일기를 거의 그대로 다시 군기로 쓰고 있다.

두 자위대의 욱일기 복원은 왜 달랐을까. 짐작할 만한 대목은 있다. 일본군을 해체한 미군은 옛 일본군 출신의 자위대 참여를 원칙적으로 금지했지만, 이 원칙은 결과적으로 육상 자위대에만 적용됐다. 일본 점령 뒤 기뢰 제거 등을 위해 함정 운영 인력이 필요했던 미군은 옛 일본해군 출신을 다시 기용했다. 그래서 육상 자위대는 비교적 옛 일본군 전통과 단절된 반면, 해상 자위대에는 옛 일본군 인맥과 문화가 이어졌다. 이런 차이가 군기 채택 과정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지난주 자위대 함정이 6년 만에 욱일기를 달고 부산항에 들어왔다. 정부는 “해군 함정이 자국군 군기를 달고 입항하는 건 국제관례”라며 문제없다는 태도지만,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여론이 높다. 식민 침탈의 기억이 살아 있는 곳에 굳이 ‘가해자’의 욱일기를 펄럭이며 오는 모습에서, 내 눈에만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이 겹쳐 보이는 걸까. 일본의 맹성을 촉구한다.

박병수 국제부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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