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교육부는 지난 6월 수능 모의고사 출제 기조와 관련해 문제 출제 기관인 교육과정평가원을 총리실과 함께 감사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2021년 9월2일 서울의 한 고교 3학년 학생들이 전국연합학력평가를 준비하는 모습. 공동취재사진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대통령이 부럽다. 말도 못하게 부럽다. ‘말은 말 자체가 아니라 말하는 사람이 보유한 권력의 무게만큼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이리도 밝고 명쾌하게 보여주다니. 보스의 힘을 확인하는 방법은 깨알처럼 작디작은 문제를 걸고넘어지는 것. ‘수능 문제를 쉽게 내라’는 교지를 따르지 않은 담당 국장을 경질하고 교육과정평가원도 감사를 한다니 ‘교육개혁의 의지’에 추호의 흔들림도 없다.
학생에겐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일타강사처럼 말하자면, 올해 수능 국어영역은 무조건 교과서 내에서 난다. 교과서만 보라. 식은 죽 먹기다. 다만, 볼 책이 좀 많다. 국어 교과서가 12종이고, 문학이 10종, 독서가 6종, 화법과 작문이 5종, 언어와 매체가 5종이다. 게다가 그동안 교과서 위의 교과서 노릇을 해온 <교육방송> 수능 연계 교재 4권이 더 있다(진작 국어 교과서를 국정화했어야 했다!!).
교과서가 많으니 교사는 글을 이해하는 방법을 알려줄 뿐이다. ‘다음 중 청록파 시인의 작품이 아닌 것은?’ 식의 사전 지식을 묻는 문제는 사라졌다. 분석, 추론, 비판, 적용 등 생각하는 능력을 묻는다.
최고 명문 서울대 법대에 들어갈 실력의 보유자임에도 ‘학교 다닐 때 국어가 재미없었다’는 서민적 풍모와 겸양의 미덕을 갖춘 대통령께선 오래전부터 교육개혁의 깃발을 외롭게 들고 계신다. 이참에 “입시는 언제까지 객관식이어야만 하는가?”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강화해야 하지 않는가?” “지역의 대학을 서울대 수준으로 키울 방법은 없는가?” 같은 주제로 하명을 내리시면 하늘이 놀라고 땅이 흔들리는 변화가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