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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마니의 포용인가, 슈미트의 적대인가

등록 2023-06-20 19:15수정 2023-06-21 02:38

고명섭의 카이로스
중국에서 마니는 ‘노자의 환생’, ‘빛의 붓다’로 알려졌다. 마니교는 ‘마니교적 이분법’과는 관련이 없다. 완고한 이분법적 세계관을 보려면 20세기 ‘정치신학’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슈미트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서 세계를 ‘적과 동지’로 나누었다.

중국 남부에서 발견된 14세기 마니교 그림. 창시자 마니가 붓다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중국 남부에서 발견된 14세기 마니교 그림. 창시자 마니가 붓다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마니교적 이분법’이라는 말은 정치적 언행을 비난하는 말로 자주 쓰인다. 세상을 둘로 갈라놓고 한쪽은 전적으로 옳고 다른 쪽은 전적으로 그르다고 보는 행태를 지탄할 때 쓰는 수사학적 표현이다. 이 말에는 마니교라는 종파가 극도로 편협하고 배타적인 집단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마니교 교리가 이원론적 구도로 이뤄져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원론적 교리가 곧바로 태도의 편협성이나 배타성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마니교 교리를 살펴보면, 그 이원론 안에 통합과 일치의 논리가 숨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세상에 왜 이토록 악이 창궐하는가? 마니교는 바로 이 물음에서 태어난 종교다. 선한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면 이렇게 악이 들끓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마니교 탄생의 모태가 된 발상이다.

마니교는 3세기 사산왕조 페르시아 사람 마니(216~277)가 창시했다. 마니는 자신의 가르침을 아홉권의 책으로 남겼는데, 그 책들에서 새로운 종교를 창도하는 과정을 상세히 밝혀놓았다. 마니가 태어난 곳은 페르시아 서쪽 바빌로니아다. 이곳에 유대교 계율을 따르는 기독교 공동체가 있었는데, 마니는 아버지 손에 이끌려 네살 때 그 공동체에 들어가 20년을 보냈다. 그 20년 동안 마니는 유대-기독교 신비주의 신앙인 그노시스주의를 학습했다. 페르시아 전통 종교인 조로아스터교도 마니의 종교적 심성을 키웠다. 마니는 스물네살 때 하늘의 계시를 받고 공동체를 떠났다. 여러 사람이 마니 뒤를 따랐다.

페르시아 땅을 가로질러 인도로 간 마니는 그곳에서 2년 남짓 머무르며, 한편으로 자기 생각을 전파하고 다른 한편으로 불교 사상을 익혔다. 인도에서 돌아온 마니는 페르시아 왕 샤푸르 1세의 지지를 얻어 30여년 동안 온 나라에 자신의 믿음을 알렸다. 당시 페르시아 국교는 조로아스터교였지만 마니는 왕조의 관용정책으로 새로운 신앙을 퍼뜨릴 수 있었다. 그러나 샤푸르 1세가 세상을 떠난 뒤 분위기가 일변했다. 새 왕 바흐람 1세는 마니의 신앙운동을 탄압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왕은 ‘이교’를 가르친 마니를 감옥에 가두고 손과 발과 목을 무거운 쇠사슬로 묶는 형벌을 내렸다. 마니는 26일 만에 옥중에서 숨을 거뒀다. 마니가 순교한 뒤 마니교는 더 맹렬한 기세로 퍼져 나갔다.

마니가 세운 교리 체계는 우주적인 웅장함을 품은 거대한 신화적 서사시다. 이 장대한 이야기의 핵심은 어쩌다가 선과 악이 뒤엉키게 됐는지 설명하는 데 있다. 태초에 세상은 빛의 왕국과 어둠의 왕국으로 나뉘어 있었다. 어둠의 왕이 빛의 왕국의 아름다움을 시기해 전쟁을 일으킴으로써 대혼란이 시작됐다. 빛과 어둠의 대결은 선과 악의 대결이기도 했다. 어둠의 세력은 빛의 힘을 제압하려고 악한 물질로 천지를 창조해 선한 빛을 가두었다. 그렇게 해서 물질세계 속에 빛이 섞이게 됐다. 빛의 세력은 물질의 감옥에 갇힌 빛을 구출하려고 싸움을 계속했고, 빛의 힘에 밀린 어둠의 세력은 다시 인간을 창조해 그 몸 안에 빛을 더 깊이 가두었다. 그리하여 인간은 물질의 육체와 빛의 영혼이 쉼 없이 싸우는 영육의 싸움터가 됐다. 그 싸움은 빛의 세력이 승리하고 모든 영혼이 빛의 왕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

마니의 교리에서 빛과 어둠, 선과 악, 육체와 영혼은 섞여서는 안 될 이질적 실체다. 확고한 우주론적 이원론이다. 그러나 그 이원론은 어느 순간 보편적 통합의 일원론으로 바뀐다. 그 순간을 보여주는 것이 구세주의 등장이다. 육체의 감옥에 갇힌 인간의 영혼을 구출하려고 빛의 구세주가 내려오는데, 마니는 그 구세주의 부름을 받은 사도가 페르시아에서는 조로아스터였고 인도에서는 붓다였으며 기독교에서는 예수였다고 가르쳤다. 이어 마니는 자신을 세 예언자의 뒤를 잇는 마지막 예언자로 선포했다. 마니의 신앙운동은 당시 알려져 있던 모든 고등 종교를 하나로 꿰고자 했다.

마니가 수도자들에게 준 불살생의 계명은 불교의 가르침을 떠올리게 한다. “누구든 닭을 죽이면 닭이 될 것이요, 생쥐를 죽이면 생쥐가 될 것이며, 추수하면 추수될 것이고, 밀을 방아 속에 던져 넣으면 그이도 한번은 그 속에 던져질 것이다. (…) 자연의 미소한 부분, 곧 흙 한 덩어리, 물 한 방울, 눈송이 하나, 이슬 한 방울도 고이 간직해야 한다.” 인간의 육체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것에 빛이 깃들어 있으므로 함부로 해쳐서는 안 된다는 계명이다.

마니는 최후의 심판이라는 기독교 교리를 받아들였고, 심판의 기준도 <신약성서> ‘마태복음’에 나오는 예수의 가르침을 따랐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 먹을 것을 주었고 헐벗었을 때 입을 것을 주었으며 병들었을 때 돌보아주었다. (…)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을 어떻게 대했느냐를 구원의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마니는 수도사들에게 엄격한 청빈도 요구했다. 하루 먹을 양식과 한해 입을 옷 말고는 아무것도 가져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음식은 채식만 허락했고 그것도 최소한으로 제한했다. 마니교 수도사들은 그 창백한 모습으로 어디서나 알아볼 수 있었다.

마니 사후 마니교는 로마제국에 이르러 몇세기 동안 흥성했다. 중세 기독교 신학을 세운 아우구스티누스도 젊은 시절 오랫동안 마니교도로 살았다. 후에 기독교로 회심한 아우구스티누스는 마니교의 이원론을 비판하는 여러권의 책을 쓰고 <고백록>에서 마니교 신도였던 자신의 젊은 시절을 자책했다. 교부들의 반박과 기독교의 탄압으로 마니교는 6세기 이후 지중해 세계에서 사라지다시피 했지만 동방의 사정은 달랐다. 마니교의 불꽃은 실크로드를 타고 7세기에 중국에 이르러 14세기까지 타올랐다. 많은 마니교도들이 절간이나 사원에서 불교·도교 수도자들과 어울려 살았다. 중국에서 마니는 ‘노자의 환생’으로 받아들여졌고 ‘빛의 붓다’(광불, 光佛)로도 알려졌다. 마니교의 이런 개방성은 20세기에 마니교 교리서들이 발굴된 뒤에야 세상에 알려졌다. 그 전까지 마니교의 가르침은 기독교 교부들이 쓴 논박서를 통해서밖에 알 수 없었다. 논박서에서 마니교는 기괴한 이단이었다.

마니교는 ‘마니교적 이분법’과는 관련이 없다. 그 말에 담긴 완고한 세계관을 보려면 오히려 20세기 ‘정치신학’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독일의 정치사상가 카를 슈미트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서 ‘적과 동지’로 나뉘는 엄격한 이분법적 세계관을 그려 보였다. 슈미트가 자신의 이분법을 가장 먼저 적용한 곳이 국제정치 영역이다. 국가는 적을 먼저 지목하고 그다음에 그 적을 고립시키려고 동지를 규합한다. 그리하여 적과 동지로 나뉜 국제질서가 등장한다. 이것이 정치의 본질이라고 슈미트는 단언했다. 적은 상업적 경쟁 상대도 아니고 이념적 논쟁 상대도 아니다. 적은 적 이외에 다른 어떤 것도 아니다. “적이란 바로 타인이고 이방인이며, 그 본질은 특히 강한 의미에서 낯설고 이질적인 존재라는 것으로 충분하다.”

슈미트는 이 세계관 안으로 전쟁을 불러들인다. “전쟁은 적대관계에서 생긴다. 적대관계란 타자의 존재 그 자체의 부정이다.” 적으로 설정된 상대는 전쟁을 각오하고 제거해야 한다는 논리다. 슈미트의 이분법 속에서 전쟁은 거의 피할 수 없는 일이 된다. 슈미트가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쓴 때는 1920년대 후반이었다. 당시 유럽 사회는 제1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으로 국가 간 갈등의 수위가 끝없이 올라가고 있었다. 유럽은 근친증오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슈미트의 오류는 역사적으로 한정된, 특수한 지역적 현상을 초월적인 정치 법칙으로 보편화한 데 있다. 슈미트 이후 이 법칙이 국제정치의 비밀을 푸는 열쇠인 양 흘러 다녔다.

슈미트는 적과 동지의 구별이 정치를 정치로 만들어준다고 주장했지만, 이 적대의 세계관이야말로 정치를 파괴하고 국제질서를 파국으로 몰아가는 주범이다. 미국의 국제전략가들이 이 세계관에 입각해 수십년 동안 끊임없이 적을 찾아내고 그 적을 빌미로 삼아 세계 질서를 재편하고 패권을 유지해왔다. 지난 10년 사이 그 적으로 새로 지목된 것이 중국이다. 미국은 중국이라는 적을 동지 곧 하위 파트너로 둘러싸 숨통을 조이려 한다. 이 이분법적 세계관의 싸움이야말로 지상에서 벌어지는 선과 악의 전쟁이라는 유구한 신화의 재현이다. 이 호전적 정치신학에 부화뇌동할 이유가 없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슈미트의 적대가 아니라 마니의 포용이다.

고명섭 | 책지성팀 선임기자

<하이데거 극장-존재의 비밀과 진리의 심연>(1, 2), <니체 극장-영원회귀와 권력의지의 드라마>, <즐거운 지식>, <광기와 천재-루소에서 히틀러까지 문제적 열정의 내면 풍경>, <지식의 발견-한국 지식인들의 문제적 담론 읽기>, <이희호 평전-고난의 길, 신념의 길>을 썼다. 카이로스는 때·시기·기회를 뜻하며 현재를 밝히는 순간의 섬광을 가리킨다. 카이로스의 눈으로 철학·사상·역사를 포함한 인문학을 탐사하며 우리 시대와 대화한다.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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