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9일 국회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겨레 프리즘] 조혜정 | 정치팀장
“(주변에서) ‘유튜브니까 조금 더 편하게 해도 돼요’ 이런 얘기 하시는데, 전 이게 편해요. 유튜브라고 해서 과격하게 얘기하고 그건 아니에요.”
어느 나른한 주말, 유튜브의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이 추천한 동영상에서 방송인 유재석이 이런 말을 했다. 그냥 “떠들어 젖히는” 게 콘셉트인 프로그램이라, 그날 출연자인 배우 이동욱의 은혜로운 자태와 재치 있는 이야기에 감동하며 아무 생각 없이 큭큭대던 참이었다. 또 다른 출연자인 조세호가 “맞아요. 이 형은 사석에서도 욕 안 해요”라고 고개를 끄덕이자, 유재석이 덧붙였다. “네. 사석에서도 (욕 안 해요). 어느 순간 욕하는 게 싫더라고요, 듣기도 싫고. 그래서 안 해요.” 사람들을 웃기면서도 누구를 공격하지 않고 단정한 언어를 구사하는 것. 톱스타의 자리를 십수년째 유지하는 비결이 이런 건가, 사람들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는 연예인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방식은 저런 것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지난 19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 나섰다. “윤석열 정권은 민생·경제·정치·외교·안전을 포기했고, 국가 그 자체인 국민을 포기했습니다. 한마디로 ‘5포 정권’, ‘국민포기 정권’입니다. 압수수색, 구속기소, 정쟁에만 몰두하는 윤석열 정권을 두고 ‘압·구·정’ 정권이라는 비난이 결코 이상해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무능과 비리를 숨기고 오직 상대에게만 사정의 칼날을 휘두르며 ‘방탄 프레임’에 가두는 것이 집권여당의 유일한 전략입니다.” 47분가량 이어진 연설에서 이 대표는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을 거칠게 비난하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20일 국회에서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대전환의 시대, 퇴행을 거슬러 내일을 창조하자”라는 이 연설의 제목을 비꼬아, 배포된 연설문에 “대역행의 시대, 진보를 거슬러 퇴행을 자초하다”라고 썼다. 이튿날 김 대표는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이 대표가 여러 말씀을 하셨는데, 안타깝게도 동의하기 힘든 장황한 궤변이었다”며 이 대표와 민주당을 대놓고 맹비난했다. “사법 리스크, 돈봉투 비리, 남 탓 전문, 말로만 특권 포기, ‘사돈남말’ 정당 대표로서 하실 말씀은 아니었습니다. 언제까지 반지성적이고 비이성적인 ‘개딸’ 팬덤의 포로로 잡혀 있을 것입니까?” 김 대표는 민주당 의원들에게 “공천 때문에 특정 정치인 개인의 왜곡된 권력 야욕에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길에서 벗어나라”는 ‘충고’도 했다.
국정 운영의 책임을 진 집권여당 대표와, 국회 과반 의석을 가진 제1야당 대표가 이렇게 서로를 ‘잡아먹을 듯’ 공격하는 덴 상대의 잘못을 ‘꾸짖어’ 자신의 지지층을 만족시키려는 정치적인 계산이 깔렸을 것이다. 여야 대립 구도가 장기화하다 보니 서로 싫은 감정을 표출하는 데 익숙해졌을 수도 있다.
김기현 대표는 한나라당 시절 대변인을 지내며 상대 당의 ‘뼈를 때리는’ 논평을 자주 선보였고, 이재명 대표는 성남시장 재직 때부터 ‘사이다 발언’으로 유명했다. 직설과 비유를 가리지 않고 정곡을 찌르는 표현들로, 대체로 강도 높은 발언들이었다. 지금도 두 대표는 페이스북과 당 공식 회의 등에서 극단의 언어로 빚은 거친 말폭탄으로 서로를 공격하며 불신을 쌓아간다.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은 국회법으로 규정된 절차로, 각 당이 어떻게 국민 삶을 책임질지 비전을 제시하는 대국민 메시지다. 평소와는 발언의 무게가 다르다는 얘기다. 무엇보다도, 당대표는 여야 합의 없인 민생을 돌볼 어떤 방안도 만들 수 없는 국회에서, 마주 앉아 대화와 타협을 해야 하는 주체다. 이전과는 말의 품격이 달라야 한다는 얘기다. 김 대표를 오래 지켜본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김 대표 발언은 당대표가 아니라 여전히 대변인 논평 같다”고 했다. 당직을 맡은 한 민주당 의원은 “이 대표는 여당과 정부를 조롱만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연예인도 말을 가려 하는 게 미덕일진대, 그보다 훨씬 사회적 파급력·영향력이 큰 두 대표는 어때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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