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지난 7일 서울 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에서 국민의힘의 ‘전장연 낙인찍기’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전장연 제공
김소민 | 자유기고가
“말이 안 되는 얘기예요. 권리를 홍보하는 일인데 캠페인을 못 하게 해요. 하반기 사업 계획을 갑자기 다 바꿔야 해요. 문서 파쇄? 중증장애인에 대해 너무 모르는 거 같아요.” 손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선진씨는 서울시가 제시한 일을 할 수 없고, 종일 문서를 파쇄하고 싶지 않으며, 그 일을 하라고 고용된 것이 아니다. 만약 당신의 업무가 하루아침에 당신이 할 수 없는 일로 바뀐다면 모욕이라고 느끼지 않겠나?
뇌병변장애와 지적장애가 있는 공선진(29)씨는 샤이니 팬이다. 4살부터 23살까지 시설에서 살다 2018년 독립해 올해 2월 소녀시대 팬인 안태훈(25)씨와 결혼했다. 뇌병변장애가 있는 태훈씨와 선진씨는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에 다닌다. 선진씨는 지난 25일 전동휠체어를 끌고 서울시청 앞에 갔다. “일자리 없앨까 봐. 일하면서 친구도 사귀고 돈도 모아 좋아요. 제가 일해야 장애인이 권리를 찾잖아요.”
이날 서울시청 앞에 나온 지적장애인 이정호(26)씨는 제일 좋아하는 노래인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불렀다. 정호씨 곁에서 2년 동안 일한 활동보조인 신형준씨는 “노래 부르는 거 보고 깜짝 놀랐다”며 “2년 전엔 사람들하고 눈도 못 마주쳤는데 활달해졌다”고 했다. 장미를 좋아하는 지적장애인 장동학(60)씨는 2010년 개 농장에서 구조됐다. 권리중심 일자리에서 받은 첫 월급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파란색 티셔츠를 샀다. “나라에서 못 하니까 우리가 하는 건데, 왜 못 하게 해요.” 이들은 태어나 처음 가져본 일자리가 없어질까 두렵다.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라는 이름에 취지가 다 담겨 있다.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가 2014년 장애인권리협약에 대한 인식 제고 캠페인을 벌이라고 우리 정부에 권고해, 2020년 서울시에서 시작했다. 1990년 장애인고용촉진법이 만들어지고, 30년이 지나도록 중증장애인이 일할 곳은 없었다. 해마다 서울시가 보조금 받을 사업자를 선정한다. 서울시가 낸 모집공고를 보면 이 일은 “장애인 권리 홍보, 차별 철폐를 위한 공공장소 퍼포먼스, 차별 사항에 대한 개선 요구”이다. 여기에 맞춰 자립지원센터 등에서 사업계획서를 내면 서울시가 그중에 사업자를 선정하고 계획대로 일했는지 점검한다.
한 자립지원센터에서 이 업무를 맡은 임지수 활동가는 지난 8일 서울시 간담회에 참석했다가 “7월1일부터 어떤 캠페인 활동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통보를 들었다. 서울시는 앞으로 대체활동 지침을 주겠다면서 문서 파쇄, 호텔 객실 관리, 마트 물품 정리 등을 예로 들었다. “말이 안 되는 얘기예요. (권리중심일자리는) 권리를 홍보하는 일인데, 캠페인을 못 하게 해요. 하반기 사업 계획을 갑자기 다 바꿔야 해요. 문서 파쇄? 중증장애인에 대해 너무 모르는 거 같아요.” 손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선진씨는 서울시가 제시한 일을 할 수 없고, 종일 문서를 파쇄하고 싶지 않으며, 그 일을 하라고 고용된 것이 아니다. 만약 당신의 업무가 하루아침에 당신이 할 수 없는 일로 바뀐다면 모욕이라고 느끼지 않겠나?
권리중심일자리를 들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불법 시위에 서울시 보조금을 전용했다”는 하태경 국민의힘 시민단체선진화특별위원장은 선진씨 사정에 관심이나 있을까? 전장연은 임의단체라 애초에 정부 보조금을 받을 수 없다. 받지 않은 보조금을 전용할 수는 없다. 전장연에 월 회비 1만원을 내는 회원단체가 서울시 보조금을 받아 권리중심일자리 사업을 했는데, 전장연이 회원단체 노동자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다. 권리중심일자리 애초 취지가 ‘캠페인’이다. 어디서부터 캠페인이고 어디서부터 집회인지는 서울시도 모른다. 이 노동자들은 권리 옹호 활동이 일이니 그 일을 한 거다. 하태경 의원의 말을 받아 “전장연, 시위 참가자에 일당 줘” “전장연, 일자리 보조금 전용”이라고 보도한 언론들은 선진씨 인생에 어떤 돌팔매를 던지고 있는지 알기나 할까?
나는 반백년을 사는 동안 중증장애인을 만나기는커녕 본 적이 거의 없다. 한국 사회가 얼마나 비장애인 중심으로, 생산성을 중심으로 꾸려져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지하철에서 좀 덥고 추우면 냉방 난방 해달라고 요구하면서, 아예 지하철을 탈 수 없었던 사람들 사정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어떤 가치를 만들고 대가를 받는 걸 노동이라고 한다면 선진씨, 정호씨, 동학씨는 내가 보려고 하지 않았던 세상을 드러내는 노동을 한다. 중증장애가 있어도 직장을 다니고 지하철을 타는 세상을 만든다. 앞으로 반드시 약자가 될 나는 그들의 노동이 만들어 가는 세상에서 더 안심할 수 있을 거 같다. 하태경 의원의 노동은 어떤 가치를 만드나? 세금으로 연봉 주고, 권력까지 줬는데 이를 한국 사회 가장 약한 사람들의 삶을 흔드는 데 쓴다면 그거야말로 ‘전용’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