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편집위원의 눈] 김종진 | 일하는시민연구소장
아침 출근길 문 앞의 한겨레신문을 들고 지하철에서 기사들을 훑어본다. 하루 일상의 시작이다. 그런데 독자의 눈이 아닌 열린편집위원의 시각으로 기사를 접하다 보니 이전과 다른 습관이 생겼다. 기사 제목부터 자료 출처는 물론 사진 배치와 그래픽 그리고 인용되는 취재원들까지 관심 갖게 되었다. 무엇보다 기사 제목부터 살펴본다. 하루에도 수많은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기에 제목과 부제를 잘 뽑아야겠다는 고민을 할 것 같다. 사실 지난 10년 사이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지면보다는 포털을 통해 기사들이 재생산되는 언론 생태계 변화를 고려하면 이해도 된다.
그렇지만 모든 기사의 제목이 객관적 저널리즘에 부합해야 할 필요는 없다. 때론 글을 읽는 독자와 사회 구성원들의 인지된 합의와 철학 혹은 시대적 가치가 저널리즘의 철학일 수도 있다. 물론 신문 기사의 제목이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은 부인하지 못한다. 다만 속보성 기사들과 달리 탐사·기획·연재기사는 ‘바람직한’ 제목만 고집할 필요도 없다.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고민하고 토론해야 할 주제라면 ‘해석적’ 제목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기술혁신과 인공지능(AI)이 미칠 영향이나 사용자 쪽의 손배·가압류 문제와 같은 한겨레 기사들은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다.
최근 한겨레에서 다룬 노동 기사 제목들은 본질에 충실하면서도 깊이 있는 표현들이 사용된다. 디지털 전환 시대 전 세계적인 이슈인 생성형 인공지능 기사 제목
‘챗지피티 6개월―AI 두 얼굴’은 다소 선정적일 수도 있지만 우리 사회 모두가 성찰해야 할 고민을 잘 녹였다고 본다. 유럽연합(EU)의 ‘허용할 수 없는 위험’을 기치로 한 인공지능 규제법안 논의는 읽는 독자들에게 공정성과 객관성의 기준을 제공했다. 미래의 노동과 일자리 문제만이 아니라 정치와 지식의 악용까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상황도 잘 짚어주었다. 오아시스 같지만 인류가 인공지능에 의존하는 순간 재앙을 접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취지에서 가장 의미 있는 지면은 바로 국내 스포츠 리그의 성차별적인 현실을 지적한 기사였다.
국내 3대 스포츠 리그 460여명의 여성 중 엄마 선수는 단 3명뿐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선수에겐 허락된 적 없는 말 “출산휴가 다녀오겠습니다”는 그 자체로 사회적 과제를 던져 준다. 선수협의회와의 단체협약으로 유급 출산휴가와 육아수당을 제공해 경력단절을 예방한 미국 사례를 통해 제도적 과제도 제시했다. 우리는 왜 결혼도 미루고, 임신은 은퇴 시기로 늦춰야만 하는 현실을 방치해야만 할까.
한편 한겨레는 현실 노동문제를 진정성 있게 다루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사설을 포함하여 ‘노란봉투법’을 다룬 기사가 약 100회가량 된다. 개별 사업장의 손배·가압류 사례와 법안 논의 과정부터 국제노동기구(ILO) 기준과 대법원 판결까지 깊이 있는 기사들을 다루고 있다. 특히 ‘불법행위 조장’ 등 의도적으로 왜곡된 제목을 달거나 ‘대통령실의 거부권 행사 필요성’을 언급한 보수 언론의 편향적 보도에도 적절하게 대응했다.
다만 한정된 인력 속에서 고군분투하다 보니 아쉬움도 있다. 최근 몇년 사이 국제기구들에서 논의되는 노동문제를 독자들에게 더 깊이 있게 소개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유럽연합의 ‘적정 최저임금에 관한 유럽 지침’이나 ‘플랫폼노동에서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입법지침안’, 그리고 국제노동기구의 ‘예술·예능 부문 일의 미래’나 ‘양질의 도제 제도에 관한 권고’ 세부 내용을 기획기사로 다루면 좋을 듯하다. 요즘처럼 시장정의와 법치주의가 사회정의를 압도하는 시기에 한겨레의 역할이 더 강조되는 이유일지 모른다.
※‘열린편집위원의 눈’은 열린편집위원 7명이 번갈아 쓰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