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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대통령, 영부인, 참모

등록 2023-07-17 14:04수정 2023-07-24 18:10

[박찬수 칼럼]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5일(현지시각) 키이우의 성소피아 성당에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부부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5일(현지시각) 키이우의 성소피아 성당에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부부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박찬수ㅣ대기자

노무현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비가 오지 않아도, 비가 너무 많이 내려도 다 내 책임인 것 같았다. 대통령은 그런 자리였다”고 썼다.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시스템으로 위기에 대응해야지, 대통령 한 사람의 행동에 기대는 건 시대착오적이란 말은 틀리지 않는다. 하지만 바로 그 시스템을 조금 더 민첩하게 움직이게 하는 건 국정운영 사령탑인 대통령과 대통령실이다.

“군·경 포함해서 집중 호우에 총력 대응하라”는 윤석열 대통령 긴급 지시가 뉴스 속보로 뜬 건 토요일(15일) 오후 4시쯤이었다. 밤새 내린 비와 산사태로 사망·실종자가 잇따른다는 소식이 토요일 아침 온 국민을 깨운 지 한참 지난 뒤였다. 대통령실은 무얼 하고 있었던 걸까. 아무리 유럽과 시차를 고려해도 이런 중대한 사안은 대통령에게 곧바로 보고하고 지시를 받아야 하는 게 아닌가.

아마 그 시간에 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로 향하고 있었을 걸로 짐작된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가는 데) 편도 14시간, 오는 데 13시간이 걸렸다. 이동이 험난했다”고 기자들에게 밝혔다. 지난 2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문 때처럼 윤 대통령은 폴란드 국경도시 프세미시우에서 기차를 타고 우크라이나 키이우로 이동했을 것이다. 10시간의 은밀한 기차 이동 중에 윤 대통령은 국내 소식을 전혀 들을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일까, 아니면 ‘역사적인 전쟁지역 방문’을 앞두고 굳이 국내 소식을 대통령에게 알릴 필요가 없다고 참모들은 판단했던 것일까. 어느 쪽이든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김은혜 홍보수석은 뒤늦게 ‘대통령이 화상 회의 등을 통해 수시로 국내 상황을 챙겼다’고 애써 강조했다. 하지만 설령 그게 사실일지라도 시민들이 생명을 걸고 수해와 싸우는 와중에 전달되지 않는다면, 그런 정부가 위기에 처한 국민에겐 무슨 소용이 있을까. 대통령의 해외 순방을 비난하는 게 아니라, 해외에 있더라도 국민 생명이 걸린 사안은 최우선으로 보고받고 대응하는 체제를 갖춰야 한다는 말이다. 이태원 참사 때도 그랬지만 이 정부는 그런 데 너무 무심하고 무능력하다.

비슷한 일이 반복되는 이유는 자명하다. 대통령실은 우크라이나 방문이 성공적으로 끝날 때까지 온통 신경을 우크라이나에만 쏟았을 것이다. 대통령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하고 싶은 일만 하려고 하니 참모들도 그에 맞춰서 움직였을 것이다. ‘이건 아니다. 국내 상황이 심각해지니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을 누구도 말할 분위기가 아니었을 것이다.

단적인 예가 대통령 부인의 리투아니아 명품 쇼핑이다. 현지 언론 보도를 보면, 김건희 여사는 16명의 경호원과 수행원을 데리고 명품 매장 다섯 곳을 순례했다고 한다. 호객 행위에 의한 단순한 윈도쇼핑(window-shopping)인지, 명품도 여럿 사들였는지 나로선 알 수가 없다. 다만 국내엔 집중 호우 경보가 내려지고 긴박한 우크라이나 방문을 눈앞에 둔 시점에, 대통령 부인이 한가하게 방문국 명품 매장을 둘러보겠다는 생각은 어디서 나온 건지 궁금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극비 방문을 감추기 위해 출발 직전 워싱턴 시내 레스토랑에서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부인과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김건희 여사의 쇼핑도 그런 작전이었을까? 그렇다면 굳이 ‘호객 행위에 따라 들어갔다’는 엉뚱한 변명은 왜 했던 것일까. 중요한 건 그 시점 그 도시에서 대통령 부인의 행동이 부적절하다고 얘기하는 참모가 하나도 없었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은 전후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전쟁지역을 방문하면서 기자들은 제외했어도 부인 김건희 여사는 동행했다. 언론보다는 부부 동반이 더 중요했던 셈이다. 참모들 누구도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지금 용산 대통령실의 적나라한 모습이다.

‘왜 일정을 취소하고 곧바로 귀국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에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지금 당장 대통령이 서울로 뛰어간다고 해도 상황을 크게 바꿀 수는 없다”고 대답했다. 이게 재난을 당한 국민에게 대통령 참모가 할 소리인가. 그에게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오직 대통령 부부만 바라볼 뿐이다.

“비가 너무 많이 와도 내 탓인 것 같다”는 마음가짐으로 국정에 임하는 대통령과 “대통령이 상황을 바꿀 수는 없다”며 마치 제3자처럼 행동하는 대통령실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지금 우리는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대통령 부부와 참모들을 보고 있다.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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