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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취약한 대통령의 위태로운 ‘질주’ [아침햇발]

등록 2023-08-20 16:19수정 2023-08-21 02:41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린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린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최혜정  |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이 본인의 기존 발언과 모순된 행태를 보일 때, ‘윤적윤’(윤석열의 적은 윤석열)이라는 지적이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문재인 정부의 코로나19 대책을 겨냥해 “국민을 어떻게 보호하느냐에 정부의 존재 이유가 있다”(2021년 8월)더니 이태원 참사, 오송 참사에서 국민들이 ‘국가는 어디에 있었나’를 되묻게 했다. “참모 뒤에 숨지 않고 정부의 잘못은 솔직히 고백하겠다”(2022년 3월), “언론의 자유를 훼손시키려고 하는 시도에 강력히 반대한다”(2022년 2월)는 약속이 어떻게 변질됐는지는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어록이 만들어질 정도로 다양한 ‘윤적윤’ 가운데 가장 압도적인 것은 ‘제왕적 대통령제’ 언급인 것 같다. “그동안 대통령들이 보여준 제왕적 이미지를 탈피”(2022년 3월)하겠다며 대통령실 이전을 ‘제왕적’으로 강행한 이후, 그는 자신의 정치적 결단을 주요 의사결정의 우선 순위에 놓으며 자신을 ‘군주’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특히 올해 8·15 광복절 경축사와 특별사면 등은 윤 대통령이 그간 간헐적으로 내비친 ‘제왕적 세계관’의 종합판이라 할 만하다.

역대 대통령들은 8·15 경축사를 국정 전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국민에게 알리는 기회로 활용해왔다. 대일 메시지와 남북 화해, 국민 통합 등을 강조하며 미래를 향한 비전을 제시하는 자리다. 윤 대통령의 취임 후 두번째 8·15 경축사는 이런 통상적 관행을 뛰어넘었다. 과거사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을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파트너”로 추어올린 반면, 연설의 상당 부분을 야권 등 비판 세력을 향한 선전포고로 채웠다. 자신에게 동의하지 않는 이들을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 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 세력”으로 규정했고, 이들이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해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았다고 했다.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는 운동가와 그렇지 않은 이들을 감별한 방법도 궁금하거니와, ‘반국가세력’이 그토록 활개치고 있었다면 집권 1년이 넘도록 왜 방치했는지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저 말을 듣지 않는, 즉 ‘상명하복’하지 않는 비판 세력을 향한 적개심만 노골적으로 드러낼 뿐이다.

8·15를 앞두고 단행한 특별사면은 삼권분립 원칙마저 짓밟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불과 석달 전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을 ‘공익 신고자’라는 명분으로 사면·복권시켰다. 법원은 일관되게 그의 무차별 폭로에 공익성이 없다고 판단했지만 간단히 무시됐다. 세월호 유가족을 불법 사찰한 소강원 전 기무사령관 등 전 국군기무사령부 간부 6명도 모두 사면 대상에 올랐다. 정권 차원에서 세월호 유족 사찰에 대한 면죄부를 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면권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지만 ‘법 앞의 평등’ 원칙을 훼손하는 만큼 언제나 논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이번 사면은 통상적으로 내세우는 국민 통합의 명분도 찾아볼 수 없을뿐더러, 윤 대통령이 선택적으로 ‘죄를 사해주는’ 심판자를 자처한 모양새다. 8·15 사면 성격이 “봉건 군주의 시혜”(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윤 대통령은 취임 15개월 동안 ‘고독한 결단’을 주요 통치 수단으로 활용해왔다. 대통령 한마디에 국가 중대사가 결정되고 집행되는 방식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즉흥적 판단으로 정책 혼선이 빚어진 것이 여러 차례고, 거대 야당을 적으로 돌리는 바람에 입법을 통한 정책 추진은 불가능하다. 자신만의 의제를 설정해 성과를 낸 경험이 없고, 지지 기반도 뚜렷하지 않다. 객관적으로 ‘취약한’ 대통령이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역사 앞에 책임을 지겠다는 공허한 발언을 앞세워 입법·사법권까지 통제하려 들고, 국민 공감대가 필수적인 외교·안보 영역마저 결단의 영역에 끌어다놓았다. 신냉전의 첨병으로 나선 윤 대통령의 ‘원맨쇼’에 국가의 운명이 맡겨진 모양새다.

윤 대통령은 자신에게 비판적인 이들을 반국가세력으로 매도하고 초법적 ‘결단 정치’로 대한민국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8·15 경축사에서 ‘공산전체주의’라는 신조어를 내놓았지만, 국민은 되레 ‘2023 스카우트 잼버리’ 수습 과정을 보며 국가주의의 퇴행적 잔상을 목격했다. 집권 2년차 권력은 기세등등하나 시간은 흐르고 임기는 끝날 것이다. 그때 역사 앞에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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