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가리(사이안화칼륨)는 사람 몸 속에 들어가면 산소운반 기능을 마비시켜 사망에 이르게 하는 독극물의 대명사다. 치사량이 200mg이다. 그래도 도금업체 등에서 폐수를 버릴 때 1리터당 0.01㎎을 밑돌면 배출을 허용한다. 그런데 누군가 낚시꾼이 많이 오가는 호수에 청산가리를 푼 물을 버리려고 하면서 “배출 허용 기준치에 미달하니 괜찮다”고 하면, 어찌해야 할까?
그는 “담배 한개비에도 청산가스(사이안화수소)가 15.9∼23.8㎍(1000분의 1 밀리그램) 들어있는데 아느냐?”며 의기양양할지 모른다. 이런 짓을 보면 대부분의 사람이 “정신 차리라”고 호통칠 것이다. 만약 그가 폐수를 호수에 부어버린다면, 게다가 앞으로 몇십년간 그 폐수를 호수에 계속 붓겠다면, 그 호수에서 잡은 물고기를 맘놓고 먹기 어려울 것이다. 아무리 ‘과학에 따르면 안전’을 읊어대도 찜찜하고 불안한 게 사람의 마음이다. 평소 이미지가 나쁜 사람이 한 일이라면 더 그럴 것이다.
일본이 24일 후쿠시마원전 앞바다에 방사능 오염수 방류를 시작했다. 바로 옆 이바라키현의 오이가와 가즈히코 지사는 이날 “거래처에서 물량을 줄이고 가격을 낮추면 좋겠다는 뜻을 전달받은 수산업자가 여러 명 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이런 피해를 ‘바람처럼 떠도는 소문’에 의한 것이란 뜻으로 ‘풍평피해’라고 한다.
일본 정부는 800억엔(약 8천억원)의 기금을 조성해 안팔리는 수산물을 매입해 냉동보관하고, 새로운 어종·어장 개척에 필요한 어구 비용 등을 지원한다. 중국의 수산물 전면 수입 중단에 따른 수출 손실도 도쿄전력이 보상할 예정이다.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해서 그러는 게 결코 아니다. 풍평피해란 말엔 ‘뜬소문을 퍼트린 사람이 가해자’라는 시각이 담겨있다. 일본 총무성 소방청은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를 함부로 옮기지 말라”고 경고한다. 대장성 관료 출신의 경제평론가 다카하시 요이치처럼 “매스미디어가 가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일본은 중국의 수입 중단 조처도 풍평피해를 일으키는 가해 행위로 본다. 우리나라가 오염수 방류 이전부터 취하고 있던 8개현 수산물 수입 금지 조처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정부와 여당도 일본의 오염수 방류로 인한 어민 피해 지원을 위해 2천억원의 예산을 편성하기로 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가짜뉴스 피해자 지원금”이라고 24일 말했다. 일본 정부의 ‘풍평피해’ 관념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일본 정부가 ‘처리수’라고 하는 걸 윤석열 정부가 아직 ‘오염수’라고 하는 것만 빼고, 양국 정부의 오염수 관련 언행은 싱크로율(일치율) 99%다. 풍평피해라는 말의 속뜻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일본이 다음 조처로 우리나라에 수산물 수입규제 철폐를 요구할 것임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윤석열 정부는 거부할 명분까지 이미 내다버린 상태다.
정남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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