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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진핑의 길’ 따라가는 윤석열 대통령 [아침햇발]

등록 2023-08-29 13:07수정 2023-08-29 17:07

윤석열 대통령이 8월15일 서울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린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8월15일 서울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린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박민희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은 스스로를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위대한 투사’로 여기고 있다. 북한·중국·러시아의 권위주의 진영에 맞서 한·미·일 자유민주주의 ‘준동맹’의 최전선에 섰고, 국내에서는 “공산전체주의 세력”과 맞서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정치적 행보가 대척점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터인 ‘시진핑 노선’과 놀랄 만큼 비슷해지고 있다는 것은, 매우 역설적이다.

첫째, 2012년 집권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부패와의 전쟁’을 내세워 대중의 인기를 모으면서 동시에 당·정·군에서 반대 세력을 쉼 없이 숙청하면서 권력을 급속도로 강화했다. 이 과정에서 당내 검찰 역할을 하는 ‘기율검사위원회’와 공안기구를 총동원했다. 2015년 7월9일 인권변호사와 노동운동가 300여명을 한꺼번에 체포한 것을 시작으로 사회 조직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정치적 기반이 없던 윤석열 대통령도 검찰 조직과 감사원을 동원해 전임 정부 공직자와 야당 정치인들에 대한 수사를 집중하고 ‘카르텔과의 전쟁’을 벌이면서 권력을 강화하고 있다. 국정원을 내세워 간첩 사건들을 잇따라 발표하고,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화물연대 노동자, 건설노조 등을 탄압의 대상으로 삼았다.

둘째, 권력이 역사 해석을 독점하려 하고, 비판 세력을 적으로 삼는 ‘역사·이념 전쟁’이 거칠어진다. 시진핑 주석은 중국공산당에 대한 비판을 ‘서구 보편주의’ ‘역사 허무주의’로 규정해 공격하고 있다. ‘역사결의’를 통과시켜 공산당과 시진핑의 무오류를 주장하고 장기집권을 정당화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진보 진영 전체를 공산주의자·빨갱이로 낙인 찍으려는 이념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공산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8.15 경축사) “시대착오적인 투쟁과 혁명, 그런 사기적 이념”(국민통합위원회 2기 출범식) 등의 선전포고가 계속된다. 대통령의 이런 신호에 맞춰, 육군사관학교 독립운동가 흉상 철거를 비롯해 사회 곳곳이 역사 전쟁에 휘말리고 있다.

셋째, 언론 통제를 강화한다. 중국 당국이 언론인들의 사상을 검증해 기자 자격 여부를 심사하고, 관영언론에서는 ‘시진핑 사상’ 찬양이 가득하고, 비판적 언론인들과 학자들을 선동죄나 간첩법 등으로 처벌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도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언론을 “가짜뉴스” “공산당 신문과 방송”으로 몰며, 언론 자유의 목을 조르려 한다.

모든 연설에서 ‘자유’를 외치는 윤 대통령과 ‘21세기 마르크스’라고 자부하는 시진핑 주석이 우파와 좌파의 서로 다른 깃발을 들고 있지만, 그 길이 겹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진핑 시대 중국의 퇴행은 중국공산당 보수 세력의 불안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중국 경제의 급성장 과정에서 중국공산당은 국유기업과 자본과 엘리트 등 특권층의 당으로 변했다. 노동자, 농민 등은 주변으로 밀려났고, 빈부 격차는 급속도로 커져 공산당의 정체성을 무색하게 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수출과 투자에만 의존하는 성장모델은 더이상 지속가능하지 않고, 노동자·농민의 임금 인상과 연금·교육·보건 등 복지를 확대해 내수 중심 성장모델로 전환하는 개혁이 절실하다는 경고가 나왔다. 하지만 시진핑 주석과 중국공산당 기득권층은 이런 길을 거부했다. 시 주석은 대신 공산당과 국유기업에 권력과 자원을 집중시키고, 약자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다. 불만을 억누르기 위해 애국주의와 안보 논리를 강조하는 동안, 국제사회와 갈등이 커지고 경제와 사회는 활력을 잃고 위기는 깊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을 집권하게 한 한국 상황은 얼마나 다른가.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성장의 과실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지만, 특권계층의 기득권 지키기 저항은 강력하다. 보수와 극우세력은 권력을 되찾기 위해 윤석열 대통령을 영입했다. 한평생 검사였던 윤 대통령은 통치에 대한 고민도, 준비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외교는 미국의 설계도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내치는 익숙한 검사 공안통치에 극우 세력이 원하는 반공주의와 냉전 이념을 ‘자유’로 포장해 들고 왔다. 역사와 이념을 내세워 편을 갈라 상대편을 ‘공산전체주의’로 몰아붙이지만, 본질은 부자 감세, 재벌규제 완화, 노동 탄압, 전 정권에 대한 복수와 보수세력의 장기 집권 프로젝트다. 증오를 부추기는 ‘정치적 내전’에 몰두하는 동안 사회적 합의에 기초해 차근차근 진행해야 할 개혁은 방치되고 있고, 약자들의 절망은 깊어지고, 경제 위기의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중국 경제 침체 속에 시진핑 주석의 마오쩌둥 흉내와 ‘반미’·‘반간첩’ 공안 통치가 요란해지는 것처럼, 윤 대통령의 반공 냉전 구호가 거칠어지는 것은 정치·경제의 위기와 무능을 덮으려는 것 아닌가.

윤 대통령이 즐겨 거론하는 ‘자유민주주의’의 보편적 기준으로 진단하면, 대통령은 편가르기와 약자 억압의 포퓰리즘, 권위주의 정치로 빠르게 퇴행하고 있다. 민주화를 이뤄낸 한국 시민들은 대통령이 역사를 되돌리고 선을 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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